스물다섯, 별 하나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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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신월동의 한 정신요양원에서 처음 만났다. 매미 우는 소리가 찌르 하고 울리던 여름날이었고, 태양이 몹시 무던한 8월의 오후였다. 햇살이 활엽수잎 사이사이로 비쳐드는 숲길을 지나면 황토색의 직육면체 건물이 나왔다. 벽면에는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고, 그 아래서 나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연주황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나를 맞이했는데, 머리를 짧게 쳐올린 그는 경상도 악센트가 진하게 묻어나는 표준어로 길안내를 했다.
음악치료를 위해서 강사로 초빙되었지만 그때까지는 그 일에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았다. 나는 경쟁에서 탈락한 재능 없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이제는 기껏해야 정신증 환자들이나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 절망감은 내 내면을 비집고 나와 정신요양원 건물을 향해 그대로 투사되었다. 그 황토색 직육면체가 내 인생의 패배에 대한 표징인 것만 같아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4층 프로그램실에는 열댓명의 여성환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팔이 비쩍 마르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나이든 여자들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고, 그들을 초라하다고 평가하는 내 마음씨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계적으로 수업의 일정과 커리큘럼을 설명했지만 제대로 힘이 나지는 않았다. 그야 아무렇게나 현을 긁어댈 뿐인 조현병 환자들이 이해하진 못할 거라 믿었으니까.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얼마나 깊은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지.
일정 이야기를 마칠 때쯤 작은 소란이 일었다. 환자들 중 하나가 말하기를 자기네 가운데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있으며, 그 사람이 바이올린도 썩 잘 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코웃음을 치면서도 그 대단한 피아니스트란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들었다. 그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빨간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나가서 그녀를 데려왔다.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이 여자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녀는 배가 불룩 튀어나오지도 않았고 팔이 비쩍 마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뭔가 모자라보인다거나 볼품없어 보인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옷차림은 환자들처럼 후줄근한 일상복이었지만, 얼굴은 엣되고 예뻤으며 부드럽고도 우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연한 갈색빛이 감도는 두 눈동자는 유순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해, 서글서글한 눈매에도 불구하고 위태롭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수줍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희미한 음성으로 말했다. 실례합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바이올린을 내밀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거 같다는 의무감이 들어서.
그녀는 A음을 한 번 짚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스크롤을 쥔 채 펙을 돌렸다. 나는 바이올린의 조율 상태에서 전혀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기에 그녀에 대한 의구심을 느꼈다. 소리를 듣는 법도 모르면서 괜히 폼만 잡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다시 A음을 짚어본 그녀는 뭐가 불만스러운 듯 아예 f홀 안쪽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래도 사운드포스트가 망가진 거 같지는 않았다. 환자들은 그녀가 조율하는 모습이 뭐가 좋다고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연주를 시작했다. 하인리히 비버의 바이올린 독주곡 <파사칼리아 G단조>. 그 아련하고도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자 나는 비로소 그녀가 조율에 공들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A음을 짚었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던 음색은 어딘가 날카롭게 어긋났고, 음정의 진행이 덧난 페인트칠처럼 꺼끌거렸다는 말이다. 말끔하던 악기의 소리가 그토록 불안하게 들린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나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연주를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다.
십 분 남짓한 연주가 끝나자 환자들이 박수를 쳤지만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처럼 젊은 연주자가 왜 이런 외진 요양시설에 입원해 있는지, 어째서 그녀의 연주는 그토록 기이한 위화감을 품고 있는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끝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지 '오랜만에 들떠서 무리했네요'하고 말하는 그녀가 너무나 외로워 보였고, 순간 그녀를 와락 안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나는 수업시간 내내 그녀의 음악에 홀려 있었고, 그날 수업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환자들에게 무슨 말을 했으며 또 그녀와 어떤 식으로 헤어졌는지, 그런 것들은 이제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녀가 대단한 피아니스트인지는 몰라도 바이올린 연주는 확실히 프로의 솜씨였고, 무엇보다도 젊고 미인이었으며 생김새가 내 취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도 질 떨어지는 속물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사람의 내면보다는 외면을 더 사랑했고 그녀처럼 예쁜 여자라면 추종하는 수준까지 이르곤 했다. 떳떳하지 못한 동기와 별개로 그녀에게 표현한 호감만큼은 진심이었고, 처음에는 벽을 세우던 그녀도 조금씩 마음을 허물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마침내 언니라는 호칭으로 불렸을 때, 마음 속에서 솟아올랐던 은은하고도 뚜렷한 충족감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알고보니 그녀는 이곳 요양원에서 제법 유명인사였는데,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탓에 그녀의 과거에 대한 온갖 추측들이 난무한다고 했다. 그런 수근거림들 중에는 이걸 누가 믿겠나 싶을 만큼 어처구니 없는 것도 있었고, 제법 그럴듯하게 살이 붙어 실감 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무엇하나 진실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비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다가도 황당한 일일연속극의 악역이 되고는 했는데, 내게는 어디까지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이라는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다. 때때로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옛날 어느 극시에서 읽은 '영원한 여성'이라는 구절을 떠올리고는 했다. 그녀가 입을 가리고 다소곳하니 웃을 때면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소녀처럼 보였고, 눈을 반짝거리며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진지하고 열정적인 학생처럼 보였다. 성격은 내성적이었지만 일단 친해지고 나면 애정을 쏟는데 거리낌이 없는 점도 좋았다.
하루는 외출 허가를 받은 그녀와 밥을 먹으러 나갔다. 적운이 뭉실뭉실하니 하늘이 파란 날에,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공기를 우리는 함께 호흡했다. 그녀는 하얀색 원피스에 가벼운 회색 가디건을 걸쳤는데 날씨에 비해서 조금 더워 보였다. 여름이 지나가는 철이었고 뉴스에서는 앞으로 일주일 간 무난한 기온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북상 중이던 태풍이 남해상에서 소멸했다는 것을 알렸다. 나는 그녀를 태우고 차를 몰아 평소에 가끔 찾던 스시집으로 갔다. 점심 오마카세는 양이 부족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여자 둘이서 끼니를 때울 정도는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어쩐 일로 그녀는 옛날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옛날이라면 그곳에 입원하기 전 말씀인가요. 나는 물었고 그녀는 답했다. 네, 옛날이라고는 해도 두 해 전이지만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지은 미소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부드럽고도 우울해서, 나는 그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기, 실례인 건 알지만 물어도 될까요."
"뭘요?"
"요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사연이요."
"별로 재미 없을 걸요. 우울하기만 한 얘기고."
"아, 미안해요. 괜한 걸 물어서......."
"그래도 말씀드릴게요. 줄여 말하면 무서워서 그랬어요."
"무엇이요?"
"저 자신이. 자살시도를 세 번 했고 세 번 다 아슬아슬하게 실패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덜컥 겁이나더라고요.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죽어버리려고 하는 스스로가."
"그래서......."
"네. 그래서."
그 전까지 나는 알기는커녕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손쉽게 죽어버리려는 자기 자신이 두려워 스스로를 감금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람과 평온한 분위기에서 담소를 나누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유감이네요, 사과하면은 그녀는 싱긋 웃었다.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인 걸.
그녀가 정신적인 고난을 겪었다는 사실이 그녀에 대한 호감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걸 알기 전보다도 더 그녀가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 나는 집착이랄지 아니면 소유욕이랄지, 연민과 애정이 뒤섞인 미묘하고도 끈적거리는 감정에 사로잡힌 채, 그녀의 가장 내밀한 구석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게 되었다는 기쁨을 만끽했다. 쉬이 듣기 어려운 그녀의 과거사를 편린이나마 엿본 것으로, 그녀의 세계 일부를 소유했다는 착각에 빠져서.
그녀는 좀 걷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식당가 근처의 근린공원을 산책했다. 갈대가 훈풍에 흔들리는 호수변이 잔잔하니 아름다웠고, 흙길을 따라 걷는 그녀 뒤로 물새 한 마리의 날개짓이 뒤따랐다. 나는 아이같은 기분으로 조약돌 하나를 집어 물수제비를 던졌는데, 호수 위로 세 개의 파문이 떠올랐다가 수면으로 흐트러졌다. 그녀는 대단한 구경이라도 한 사람마냥 박수를 짝짝짝 치더니 가디건의 소맷자락을 추슬렀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애들처럼 시시한 장난을 치면서 시시때때로 꺄르륵 웃었다.
그날 호숫가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는 공허하지만 매혹적이었고, 연주자로서의 모든 깊이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지만 그 사랑은 단지 성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이라서 당신에게 상처를 안겨줄 거라고, 그렇게 고백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정말로 속을 털어놓지는 못했고, 나는 그녀를 요양원까지 바래다주고는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쓸쓸하게 건물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말하자면 어떤 불안한 예감을,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소진된 사람에 대한 애정은 불같이 타올라서는 들불처럼 꺼지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그녀와 친구가 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잘 맞았고, 음악 취향도 비슷했으며 독서가 취미인 것도 비슷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우리가 그렇게까지 빨리 친해진 까닭은 조금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나 그녀에게나 정말 필요했던 것은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는데, 경쟁에서 물러난 다음 순수하게 사귄 사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친해질 수 있었다. 아마도 한창 커리어를 밟을 때 어딘가에서 마주쳤다면, 나와 그녀는 서로를 친구로 여기기보다는 사무적인 상대로 여겼으리라.
내가 그녀에게서 느낀 매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에는 어떤 실감 같은 걸 느꼈다 해야 할까. 빛무리가 환하게 쏟아지는 도서실의 창가에서 그녀가 흥얼거리는 가곡의 허밍을 들으면, 나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여자조차도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 거 같아서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우리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시월의 셋째주가 지나갈 즈음에 그녀는 외박을 신청했다. 평년보다 유난히 추운 날씨에 그녀는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우리는 신월동의 대로변을 이십여 분 간 드라이브했고, 도심지의 선술집에서 함께 칵테일을 마셨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술을 마시는 거라고 말했다. 원래라면 약물 치료 때문에 술에 입을 대서는 안 되지만, 이런 날을 그냥 넘기는 것은 더더욱 용납이 안 된다고. 선술집 다음에는 횟집이었는데 광어 회에서는 빛깔처럼 투명한 맛이 났다. 우리는 소주 잔을 주고받았고 술에 진탕 취한 채 대리운전을 불러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취기 탓인지 열이 오른 그녀는 소파 위에 눕듯이 앉았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낯간지러운 말을 태연히 꺼냈다.
"언니. 언니는 참 좋은 사람이네요."
"에이. 소민 씨가 좋은 사람이죠. 나는 그냥 좋은 사람인 척하려 애를 쓰는 거고."
그녀는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무언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을 옹알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무언가 자기변호랄까 아니면 자기고백이랄까, 그런 것을 늘어놓아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피상적으로 스쳐가는 관계라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일단 깊이 얽혀버리고 나면 더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주변 사람들을 자주 아프게 하고 나서야 그걸 알았죠."
"뭘요?"
"나는 천성적으로 남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인간이란 걸. 남을 사랑하는 척하는 나 자신을 사랑했을 뿐이란 걸."
"그러면 안 되는 걸까요?"
"네?"
"남을 사랑하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걸로는 부족한 걸까요?"
그녀의 질문이 끝났을 때 내 고개는 가볍게 수그러졌다. 연주자로서의 커리어에서 벗어난 그 당시 나는 실의의 늪에 빠져 있었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의 내가 생각하기로 사람이란 각자의 두개골 안에 갇힌 안쓰러운 신경세포의 다발이었고,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애무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랬던 내게 그녀의 말은 뭐랄까, 부정하고 싶기에 더 진실 같은 말로만 들렸다.
우리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눈을 감은 채 재잘재잘 떠들었다.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깊이 담아둔 속마음이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각자가 살아온 삶의 기록을 상대 앞에서 추억했다. 주고받는 대화와 함께 밤이 무르익던 무렵, 귀뚜라미 울음이 잠깐의 침묵을 길게 파고들었고, 곧 얼굴이 발그레해진 그녀는 속삭이듯 스물다섯이 되던 해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2-
세브란스 암병원의 1307호실에서 그녀는 비쩍 말라버린 희경의 몸을 보았다. 희경에게서는 죽어가는 사람 특유의 안타까운 냄새가 났고, 그것은 화학적인 냄새라기보다는 차라리 영혼으로부터 풍기는 체념의 냄새 같았다. 욕창이 생겨 진물이 배어나는 쪼그라든 몸을, 희끗해지다 못해 반쯤은 아예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염분기라고는 없는 식사를 고통스럽게 삼키는 희경을 보면서, 그녀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씹어야만 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은희경 교수는 누구보다도 세련되고 우아한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깔끔한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랬는데 삼 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뒤로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 의사가 주저하는 목소리로 악성 종양의 발견을 알렸을 때, 그때 그녀도 희경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희경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유방암은 암도 아니라던데, 하고 말했지만 그녀는 읽어낼 수 있었다. 어떤 회한이랄지 아니면 슬픔이랄지, 그런 미묘한 감정이 희경의 눈가를 스쳐가는 것을. 그 눈빛은 부정과 수용 사이의 울타리에 애매하게 걸쳐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진지한 위로를 건네야 할지 아니면 마찬가지로 가볍게 맞받아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다만 무엇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희경의 어깨를 단단히 껴안았는데, 희경은 그녀의 등을 두드리면서 왜 네가 나보다 더 슬퍼하냐고, 그러면은 내가 무안해지지 않느냐고 농을 했다.
암도 아니라던 유방암은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희경의 삶을 무너뜨렸다. 예후가 호전되는 것처럼보였던 것도 잠시, 재발한 종양이 폐로 전이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개시되었다. 암투병은 희경에게뿐만 아니라 수발을 드는 그녀에게도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 병세가 나빠지면서 희경은 끊임없이 그녀를 힘들게 했고, 네가 내 고통을 이해하진 못하리란 말로 상처입혔다. 그들은 암환자와 암환자의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난을, 다시 말해 세상 어디에나 있는 흔한 고통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가장 무겁기도 한 고난을 함께 겪었다.
희경을 돌보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아예 내려놓았다. 가족들과 의절하다시피 한 희경이었기에, 그녀 혼자서 온 시간을 희경에게 쏟아야 했고 병수발은 연주자의 삶과 병행할 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엔가 희경은 보호자석에 앉은 그녀에게 씁쓸한 목소리로 넋두리했다.
"그렇게 독일로 가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무슨 낙을 보겠다고 죽을 병을 앓고도 이날까지 사는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희경은 그녀가 곁에 남는 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독일 유학을 마다하고,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멈추면서까지 암투병 수발을 들겠다는 제자에게, 희경은 죄책감과 뿌듯함을 동시에 내비쳤다. 그런 희경을 내버려두고 외국으로 떠나버릴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스승에게 냉정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희경에게 냉정해지려는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했다 해야 할지. 적어도 희경에게만큼은 끝까지 훌륭한 제자로, 착실하고 뛰어난 학생 천소민으로 남고 싶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희경은 그녀의 연주가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는 정확히 희경의 죽음으로부터 63일을 앞둔 날의 밤이었고, 그 다음날부터 매일 한 곡을 녹음해서 들려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걸 기억했다. 선곡은 <사랑의 꿈>이나 <야상곡>처럼 감상적으로 아름다운 곡들 위주였고, 그건 현대음악을 선호하는 희경의 평소 취향과는 크게 동떨어진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희경에게 밝고 아름다운 곡들만을 들려줘야 한다고, 암투병이 고통스러운 만큼 음악의 선율은 행복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녀가 선택하는 악곡은 점점 더 감각적이고 희망차졌으며, 심지어 그녀가 음악을 해석하는 방식마저 얕고 경쾌한 쪽으로 변화했지만, 그럴수록 희경의 몸은 더 야위고 앙상해져 갔다. 죽음을 코앞에 둔 날에 희경은 그녀를 불러두고서 말했다.
"나는 음악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예술이라고 생각했지. 소리가 시간 속에서 울리고는 곧 꺼져버리는 것처럼, 음악이라는 예술 자체가 죽음을 향해 열려 있다고 믿었던 거야. 그래서 삶을 돌보지도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도 않았어."
"선생님."
"하지만 내가 오만했던 거였지. 정말로 죽음이 다가오니까 알겠더구나. 내가 바랐던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걸.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이라는 걸. 소민아. 내 인생에 기쁨도 있었고 괴로움도 있었지만 이제 나는 행복하다. 지금 소민이 네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너는 모를 거야. 사랑하는 제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죽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모를 거야."
"그런 말씀 마시고 떨쳐 일어나셔야죠."
"됐다. 이제 틀렸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냥 소민이 네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음악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마지막에 나를 행복하게 한 건 결국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고. 이제와서라도 그런 뜻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치고서 희경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그 고갯짓이 마치 죽고 사는 것은 이미 결정되었다는 표현 같아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울음을 꾹 참아야만 했다.
희경을 안치했던 날, 그날 밤은 몹시 무더웠다. 장례식장 안은 시원했지만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면 텁텁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도회지의 밤하늘은 그날도 보랏빛이었고, 하늘 어디에도 별은 보이지 않았다. 상복 아래로 땀이 나서 촉촉해지면 그녀는 미끈거리는 팔을 한 번 쓸었다. 어째선지 아무리 울어보려 해도 눈물이 흐르지 않아서, 스스로의 냉담함에 놀랐던 것을 그녀는 기억한다.
그건 물론 가혹한 감정이었지만, 글쎄. 일어나야만 할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 말았다는 감정 이상이 들지 않았다. 오랜 암투병 끝에 지친 것은 희경만이 아니었고, 피로가 눈물보다 더 강하다고 하는 것이 그녀는 못 견디게 슬펐다. 왜 울면 안 될 때는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하고, 울어야 할 때는 울지 못하게 되어버렸는지. 그녀는 푹 하고 끓어오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희경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희경의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지도 못할 만큼 지친 스스로가 슬퍼서.
그날 그녀는 희경에게 절을 두 번 올렸고, 희경의 딸인 다정과 맞절을 했다. 희경의 전 남편은 상주 자리를 맡길 거부했고, 어찌어찌 연락이 닿은 외동딸 다정이 그를 대신했다. 젊은 여자가 무슨 상주냐는 뒷말이 오갔지만 다정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다정과 그녀 사이에는 역시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고, 그 기류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그녀는 알았다. 아직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 희경은 결혼을 했지만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위해 독일로 유학해야 했다. 그리고 희경의 남편은 훌쩍 독일로 떠나버린 아내를 기다려줄만큼 인내심이 깊진 못했다. 그는 5000마일의 장거리 부부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이혼을 하는 편을 택했으며, 그 결정을 누구도 비난하진 못하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딱 한 명, 그들의 아이인 다정을 제외하고는.
그랬다. 다른 누구도 그들의 이혼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었지만, 다정만큼은 그들을 마음껏 비난해도 좋을 입장이었다. 음악을 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가차없이 이혼을 선언한 아빠. 그런 그들이 여섯 살의 다정에게는 과연 어떻게 비치었을지. 다정을 떠올리면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 그녀의 가슴 한 켠을 짓눌렀고, 그녀는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평생 동안 부채감을 품고 살아야만 했다.
조문객들이 돌아가고 식장이 어슥해질 무렵에, 상복 위로 두 줄짜리 완장을 찬 다정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 그녀는 설마 다정이 말을 걸어 올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해서, 적당한 대답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네. 설마 이런 식으로 뵙게 될 거라곤....... 그렇게 말하고서야 실언을 했나 싶어 아차했다. 이런 식이라니 꼭 질책하는 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과는 다르게 다정은 그녀를 힐난하지 않았고 상처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언제부턴가 소민 씨를 한 번 뵙고 싶었어요."
"저를요?"
"네. 사실은 궁금했거든요. 엄마가 친자식처럼 길렀다고 하는 피아니스트가 누군지."
"아, 저...... 뭐라 말씀을 드려야......."
"아뇨. 따지려는 말이 아니에요. 그저...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던 거예요. 친딸도 버려두고 독일로 떠난 엄마가 피 하나 이어지지 않은 제자를 어째서 손수 기르셨는지."
"...선생님을 원망하시겠죠?"
"네. 정말 많은 원망의 말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 한 번 보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여기 와서 엄마 얼굴을 보니까, 그냥 모든 걸 용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엄마의 모든 걸."
"..."
"미안해요."
"네?"
"암에 걸린 엄마를 홀로 돌본 게 소민 씨라고 들었어요. 원래라면 제가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인데."
"제게도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이셨으니까요."
그러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어머니라는 말에서 뭐가 걸린 것처럼 목이 먹먹해졌고, 그녀는 이를테면 그런 말을, 어머니에게 버림받는 경험을 한 것은 다정만이 아니라는 말을, 그들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사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먹먹해진 목 때문이었을까 그녀 자신의 사정만이 대신해서 흘러나왔다.
"저희 아빠는 의사였고, 엄마는 평범한 공무원이었어요. 속된 말로 급이 다른 결혼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수근거림에 시달렸죠. 아빠가 의사랑 결혼했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 하는."
"그래서 소민 씨에게?"
"네. 엄마는 늘 그랬어요. 제가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엄마와 달리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공부보다 음악을 더 좋아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진로 문제로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간 뒤,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 죽 선생님 댁에서 살았죠."
그건 물론 과도한 요약이었다. 그녀는 자기 유년의 삶이, 그리고 희경과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게 정리될 수는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모든 복잡하고 세부적인 삶의 순간들이 타인에게는 다 덧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다정 앞에서 밝힐 만한 사연은 구질구질하고 진부한 것들이 전부였다.
다정은 그녀에게 물었다.
"엄마는 소민 씨에게 어떤 사람이었나요? 모르는 아이를 친딸처럼 키우면서도, 엄마는 행복했나요?"
그녀는 예컨대 그런 식으로 대답하고 싶었다. 사람은 본디 모르는 사람을 낳으며, 피와 피로 이어진 사이라는 것은 실은 인연과 인연으로 이어진 사이와 다르지 않다고. 우리들은 서로의 내면에 닿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원히 서로에게 남인 법이라고. 그렇지만 그것은 다정에게 건네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한 말이었고, 그때 향불이 발갛게 타면서 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 자그마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것이 마치 죽음이 내는 배음(倍音)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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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완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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