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는 많이 달랐던 배트맨 영화였습니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처럼 숨 돌릴 틈 없는 밀도 높은 영화가 아닐지, 젊은 주인공을 통해 활기 넘치는 배트맨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예상보다 진득한 드라마가 있는 범죄 영화였고, 배트맨은 신출귀몰한 활약 대신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꼼꼼히 증거 수집하고 조사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슈퍼 히어로 영화팬들이 원했던 것보다는 배트맨의 코믹북 팬들이 원하던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 활약하는 필름 느와르로 만들어졌습니다. 더러운 세상 잊으려 술에 취하거나 담배 피우는 장면이 안 나온다는 게 의외다 싶을 정도네요.
기존 배트맨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브루스 웨인 저택의 고딕풍 인테리어는 팀 버튼 영화스럽고, 배트맨이 실제로 있을 법한 장비들을 사용하는 건 놀란 영화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브루스 웨인은 재력을 과시하는 플레이보이가 아니라 낮밤 바뀐 생활 패턴 탓인지 방구석 폐인 같고, 그의 또 다른 자아 배트맨은 아직 초짜여서 때린 만큼 맞기도 하는 등 안습한 상황에 종종 빠집니다. 배트맨을 상대하는 적들도 다른 영화에서처럼 가만히 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배트맨이 혼쭐나는 상황도 제법 나와요. 합을 잘 맞춘 액션 연출이지만 슈퍼 히어로로서 시원스레 적들을 압도하는 식의 쾌감은 많지 않습니다. 별나게 박쥐 코스튬만 입었다 뿐이지, 싸움 잘하는 사립탐정에 가깝더군요.
믿을 놈 하나 없이 부패에 찌든 고담시와 그곳을 뒤에서 조종하는 마피아들의 묘사는,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적 분위기의 <차이나타운>(1974)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대부>(1972)에 나왔던 노래도 집어넣어서 선배 느와르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배트맨과 캣우먼의 과거사도 암울하기 그지없어요.
한편으로 그런 고담시를 뒤흔드는 리들러는 <세븐>의 존 도우 같은 지능범으로서 공권력, 기득권, 배트맨까지도 농락을 하는데, SNS도 적절히 활용하는 그의 행동 방식, 목표 등은 고풍스러운 영화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게 21세기 현대적이네요.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은 짧지만 실력파 배우 폴 다노의 열연 덕에 주인공들보다 더 기억에 남습니다.
흡사 마굴 같은 고담시의 어둠이 영화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어서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적인 재미는 크지 않습니다. 어쨌든 ‘슈퍼 히어로물’이었던 놀란 영화보다는 방향성이 <조커>쪽에 더 가까운지라 가벼운 기분으로 볼 영화가 아니고요. 거기다가 러닝타임은 거의 3시간, 되도록 좋은 컨디션에서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추가.. 크레딧 다 올라간 뒤 짤막한 쿠키가 나오는데 속편 예고나 재밌는 장면 같은 뭐 그런 게 아니라서..꼭 안 봐도 됩니다.
그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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