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속 팔색조 연기 김민정(23)은 서울 깍쟁이 같은 이미지다. 실제 잠실이 고향인 전형적인 `강남 키드`다. 아역 출신의 똑똑한 신세대 배우가 주류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르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김민정의 톱스타로의 부상은 다소 예외적이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이재은이 누드를 찍어 정규 코스를 약간 비켜가고 있지만 김민정은 착실하게 정공법으로 이미지를 쌓아 나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김민정에게서 한 가지 전략이 발견된다. 드라마 `술의 나라` `라이벌`에 출연할 때만 해도 전략이 없었다. 새침하고 웬만한 질문에는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자신의 본래 이미지 그대로 연기했다. 그러다 자의식에 변화가 생겼다. 아무 역이나 맡아 이미지를 흐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지만 15년의 연기경력에서 나온 고민의 결과였다. 마구 들어오는 드라마나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 7개월여 휴식을 거치면서 내린 결정이 영화 `발레교습소`였다. 그리고 드라마 `아일랜드`(`아일랜드`가 먼저 방송됐지만 먼저 선택한 것은 `발레교습소`다). 이 두 역에 전략의 열쇠가 있다. 대중이 자신을 편한 상대로 여기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점을 파악한 김민정의 `대중에게 가까이 가기` 전략은 망가지기나 노출이 아니었다. 정교하면서도 복잡하지만 현실성을 부여받는 이미지로 눈을 돌렸다. 깍쟁이가 `안티` 없는 성인이 되는 첫 번째 비결은 변영주 감독과의 조우다. 변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주조하는 데 있어 남다른 재능을 가진 반면 남성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리는 데는 서투르다(그 반대는 정우성에게서 청춘 아이콘을 만들어낸 김성수 감독이다). 공부를 잘 하지만 이기적인 `수진`이라는 캐릭터는 자신만만함과 나약함이라는 양가적인 모습을 지녔다. 김민정은 이런 불안정하고 불명확한 `수진` 캐릭터를 통해 현실성을 부여받는다. 만약 귀엽고 예쁘기만 한 캐릭터를 맡았다면 `내 머리속의 지우개`의 손예진처럼 `안티`가 생길 수가 있었는데 김민정은 다중적이면서도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맡아 대중과의 거리도 줄이고 호감도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아일랜드`의 `시연`도 간단치 않은 캐릭터다.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에로배우의 길로 뛰어든 시연은 특이하다. 에로배우이면서도 궁상맞지 않는 이 캐릭터에 마니아급 대중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오죽하면 `에로천사`라는 엉뚱한 단어조합이 이뤄졌을까? 사실 그녀는 `버스정류장`에서도 원조교제를 하는 멍한 눈의 여고생을 연기한 전력이 있다. 김민정은 밝은 도시인의 우울한 정서를 그리는 배우의 색깔을 입혔다. 마치 왕가위가 그리는 연인들 이야기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과장되게 밝은 사람은 더 독한 어두움을 지니고 있는 법. 항시 도시인들은 주류 같지만 실상은 비주류이고, 중심 같지만 변방이다. 그녀가 대중과 소통하는 점은 이 지점이며 이는 그녀가 대중에게 서서히 가까이 가는 전략이기도 하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