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허가할 때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후폭풍이 예상된다.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5일 오후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에 따르면 녹지 측이 이번 소송을 제기한 건 2019년 2월14일이다. 제주도가 2018년 12월5일 녹지 측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내주면서 진료 대상자를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제한하는,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단 데 따른 반발이었다.

그동안 녹지 측은 해당 허가조건이 법률상 근거가 없는 데다 내국인 진료 거부를 금지하는 의료법에도 위배되고, 제주특별법상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제의 목적과 효력을 해하는 것으로서 비례의 원칙에도 반해 위법하다고 주장해 왔다.

녹지 측은 또 해당 허가조건이 제주도가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시 내국인 진료도 허용하겠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과 달라 신뢰보호의 원칙에도 위반돼 위법하다고 주장했었다.

이에 제주도는 Δ허가조건은 행정소송 대상이 될 수 없는 점 Δ이미 2019년 4월17일에 개설 허가를 취소한 점 Δ녹지 측이 녹지국제병원 부지와 건물을 제3자에게 매도해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친 점을 들어 소송 각하를 주장해 왔다.

허가조건이 취소되더라도 녹지 측이 얻을 '법률상 이익'이 없기 때문에 녹지 측은 행정소송법상 원고 부적격자라는 취지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부적법한 것으로 보고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3년2개월에 걸친 심리 끝에 "피고가 원고에 대해 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중 허가조건 부분을 취소한다"며 녹지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먼저 제주도의 주장과 관련해 "이 사건 허가조건은 개설허가에 부수해 원고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부담에 해당하므로 그 자체로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가 병원 운영을 포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현재까지 개설허가가 취소되지 않은 이상 개설허가는 유효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원고로서는 소송을 제기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녹지 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허가조건은 부관을 붙일 수 없는 기속재량행위인 개설허가에 붙인 것이거나 또는 피고가 아무런 법령상 근거 없이 붙인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제주특별법은 내국인 진료 허용을 전제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며 "이 사건 허가조건은 제주특별법상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제도의 입법취지에 부합한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제주도는 선고 직후 취재진에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판결문 내용이 확인되면 전담 법률팀과 향후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선고 직후 제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모든 영리병원이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매우 심각하게 우려스럽다"며 향후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한편 녹지 측은 이번 소송과 별개로 2020년 11월16일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도 지난 1월13일 최종 승소했다.

의료법상 개원 시한인 허가일로부터 3개월 안에 개원하지는 않았지만 허가 조건 변경과 인력 상황 변동으로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업무를 시작하지 않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취지다.

해당 판결로 기존에 취소됐던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가 되살아나자 녹지 측은 지난 2월14일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 재개원 의사를 밝혔고, 이에 제주도는 다음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여는 등 사실상 재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