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이만수가 있다면, 몽골엔 이경필이 있다.
두산 베어스 우완 투수로 활약했던 이경필은 야구장 밖에서 ‘제2의 인생’을 개척 중이다. 사회로 나온 이경필은 ‘성공’이 아닌 ‘행복’을 꿈꾼다. 행복을 나누는 건 이경필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경필은 ‘몽골 야구 전도사’로 행복 나눔을 실천 중이다. 몽골에 ‘야구’란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이경필의 이야기를 엠스플뉴스가 들어봤다.
"선수 시절 돌이켜보면, '좀 더 건강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 남는다"
이경필은 현역 시절 자신을 “몸쪽 승부를 즐기던 투수“로 기억했다(사진=삼성)
올드 야구팬들 가운데 ‘투수 이경필’을 기억하는 이가 많습니다. '관리가 잘됐다면 더 좋은 투수로 기억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올드 야구팬이 적지 않습니다.
현역 시절을 돌아보면, 저도 아쉬움이 커요. 물론 기쁜 일도 많았죠. 음, 제가 다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팔꿈치 수술 받은 뒤 기량이 하락하면서 선수 생활을 일찍 마무리하게 됐죠.
스스로 되돌아봤을 때 ‘현역 이경필’은 어떤 투수였나요?
‘변화구를 잘 구사했고, 몸쪽 승부를 즐기던 투수’였습니다. 변화구를 즐겨 사용했던 까닭에 부상이 찾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조금만 더 건강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은 '관리 야구'가 KBO리그 트렌드입니다. 이 트렌드를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정말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제가 선수로 뛸 때만 해도 ‘프로야구 감독은 파리 목숨’이란 말이 있었어요(웃음). 좋은 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관리 야구'는 행동에 옮기기 어려운 이상과 같습니다. 팀 성적이 나쁜데 투수를 관리한다? 정말 꿈 같은 이야기였죠.
그렇군요.
제가 현역으로 뛰던 15년 전 ‘관리 야구’의 개념은 간단했어요. ‘성적 내고 쉬어라.’ 이거였죠(웃음). 엄밀히 따지면, 관리가 아니었던 셈이에요. 선수가 ‘완전한 회복’보다 ‘빠른 회복’을 욕심낼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확실히 변화가 눈에 보여요. 선수 입장에선 정말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좋은 자질을 갖췄음에도, 선수로 날개를 펼치 못한 야구인이 많습니다. 그 한을 지도자로 풀고자 하는 야구인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경필 씨는 ‘엘리트 야구’와는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새 삶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네.
평생 야구장에 있을 자신이 없었어요. 야구장에 있는 게 답답했습니다.
답답했다?
저는 야구장이 아닌 ‘사회’라는 더 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었어요. 넓은 세상을 향한 욕심이 컸죠. 그래서 은퇴하자마자 ‘천하무적 야구단’이란 예능 방송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야구장으로 돌아오는 문은 점점 더 좁아지더라고요(웃음).
여전히 야구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야구인’으로 남고 싶어요.
이경필의 꿈 "사회에서 행복하게 사는 야구인, 그 본보기가 되고 싶다"
이경필의 꿈은 '행복한 사회인'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야구인’이라… 평범한 듯 특별한 의미가 묻어있는 말입니다.
야구를 그만둔 뒤 사회에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야구인을 찾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야구인이 사회에 나오면, ‘자신이 번 돈을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그게 현실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성공하자’는 게 아니에요. 성공에 앞서 행복하게 살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야구인도 사회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저는 다른 야구인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인생 제2막’을 열어가고 싶습니다.
조금 다른 방법이요?
야구인들이 현장을 떠나면, 십중팔구 음식점을 차립니다(웃음). 운동 말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축구나 농구도 똑같아요. 선수 생활할 땐 ‘지금 영광이 영원하리란’ 생각을 하죠. 하지만, 아니에요. 영광의 시절은 잠깐이에요. 막상 사회에 나오면, 할 게 없는 사람이 되는 게 현실입니다.
사회인 이경필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 사진은 몽골 유소년 야구단에 물품을 기증하는 장면(사진=필코치 선교야구단)
‘한국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일까요?
넓게 보면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체감해본 결과 문제는 단순했습니다.
음.
‘운동선수들의 삶 자체가 단순하다’는 거였어요. 저 역시 27년간 야구만 하다가 사회에 나왔어요.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적응하는 데 정말 애를 많이 먹었죠(웃음).
'사회에서 겪었던 애로사항을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얘길 하려는 것 같군요.
맞아요. 미리 그 길을 가본 선배 입장으로, 사회로 나와야 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110년 전 몽골에 야구 전파한 사람이 바로 한국 선교사였다"
몽골 야구대표팀 감독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이경필(사진=필코치 선교야구단)
야구장 밖에서의 ‘제2의 인생’, 행복합니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조그마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어요(웃음).
‘몽골에서의 야구 선행’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선행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웃음). 가진 걸 나누는 것뿐입니다. 몽골 야구대표팀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야구를 가르쳐주고 있을 뿐이에요.
몽골에 야구를 전파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몽골에 선교하러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우연히 몽골 올림픽위원회 바다르오강 사무총장을 만났어요. 그분이 “몽골 야구 저변이 취약하니, 도움을 달라”고 직접 부탁했습니다.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했죠.
몽골 올림픽위원회 바다르오강 사무총장과 대화를 나누는 이경필(사진=필코치 선교야구단)
왜 제안을 수락한 겁니까.
제안 받고, 인터넷을 검색해봤어요. 그런데, 몽골에 야구를 처음 전파한 분이 한국 선교사였더라고요. 무려 110년 전 일이에요. 그 이야기를 접한 뒤 ‘몽골에 야구를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체감한 몽골 야구 열기, 어떻습니까.
아직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몽골 인구가 360만 명이에요. 그런데, 야구 인구는 160명에 불과합니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선수가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를 수조차 없는 환경이죠.
오기도 생길 듯합니다.
지난해에 처음으로 한국 사회인 야구팀을 데리고, 몽골에 갔어요. 몽골 친구들이 ‘경기할 상대가 생겼다’며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웃음). 몽골 선수들의 밝은 표정을 보니, 힘이 났습니다. 점점 발전하는 몽골 야구팀을 바라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이만수 선배의 라오스와 한 판 붙고싶다."
'라오스 야구 전도사'로 불리는 이만수 전 SK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큰 틀에서 보면,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의 ‘라오스 야구보급’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습니다.
아직 이만수 선배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웃음). 저는 몽골인들이 야구를 통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해요. 이 부분은 이만수 선배님과 저의 공통적인 지향점이라고 봅니다.
야구로 '가난 극복'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라.
야구를 통해 땀을 흘리다 보면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장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몽골에서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한다면 정말 '야구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거라고 봅니다.
'이경필의 몽골'과 '이만수의 라오스'가 친선 경기를 펼친다면, 정말 의미있는 광경이 되겠군요.
정말 바라는 바입니다. 승부욕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데…(웃음)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이만수 선배님께 친선 경기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한판 붙고 싶습니다. 상상만해도 설레는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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