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gory Elich 칼럼] 정치적 갈림길에 선 한국
한국이 과연 미국에 맞설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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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대노총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27판문점 선언 3주년 기념 노동자 민족자주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관계 파탄과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2021.04.27 ⓒ김철수 기자
3월 9일이면 대한민국이 두 달 후에 취임할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해 선거를 치른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중국에 맞설 공격적인 연합을 꾸리고 있는 지금, 그 결과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
현재 두 후보가 선두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서로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집권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미국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과는 달리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끌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년 말 외신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이어 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중재자, 해결사로 역할 해야 한다”라고 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반가운 방향 전환이 될 것이다. 이 후보는 반중연합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을 거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후보는 군사동맹인 미국과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매우 비실용적 태도라고 강조한다.
이 후보가 진정 정책 변화를 꾀한다면 강한 역풍을 맞을 것이다. 우선 한국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양극화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또 이 후보가 보다 독립적인 정책을 채택하려면 민주당이 국회에서 상당한 과반수를 확보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의 안보 및 군 당국이 미국과의 관계 변화를 용납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또한 친미국가가 다른 길로 가지 못하게 할 경제적, 외교적 무기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이 후보가 이런 장애물을 뛰어넘을 의지와 결단력이 있는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보수 야당 (적절하지 못한 당명을 가진)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는 선제공격도 논의할 수 있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공식 명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윤 후보는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최우선시하며 중국에 맞서는 미국의 ‘글로벌 동맹’에 합류하자고 주장한다. 윤 후보는 “한미는 동맹이고 한중은 협력관계다. 협력관계라는 것은 상호존중에 기반한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의 주요 동맹국이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 아닌가. 주적과 동맹관계인 국가와 동맹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정부가 어떤 후보를 더 좋아하는지는 누구든 알 것이다. 윤 후보의 주장은 미국의 정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이 후보는 36%, 윤 후보는 37%를 얻었다. ⓒ한국갤럽
문 대통령은 미국을 계속 따르느라 남북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잃었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의 긴장완화와 관련해 종전협정을 지지한다. 한국전쟁은 1953년 종전협정이 아닌 휴전협정으로 중단됐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한반도는 아직 전시상태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북한과 평화협정을 논의한지는 꽤 됐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의 적대적 정책 철회 여부를 봐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원칙적으로 모두가 동의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한국이 아직 미국과 그 표현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 제안을 명확히 거절한 당사국은 지금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일정한 조치를 취할 경우에 오랜 북미 간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겠다는 하나의 정치선언으로 종전선언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문 대통령은 한쪽에게만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을 눈 여겨 봐야 한다. 그가 미국에게 요구하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을 논의할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봤을 때 평화협정은 불가능하다. 평화협정은 상원에서 2/3 동의와 바이든의 비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의 문구를 두고 실랑이가 계속 벌어지는 걸 보면 미국이 윤 후보의 지지율을 보면서 시간만 끌면 더 구미에 맞는 사람과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혹 그게 아니더라도 그것은 바이든 정부가 종전선언의 최종안에 뭔가 변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어떠한 문구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밀히 봤을 때 전시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안정을 해친다고 하는 건 좀 성급한 결론이다. 일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일본은 평화협정을 맺은 적이 없다. 하지만 양국은 잠정조치로 1956년에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엄밀히 말해 러시아와 일본이 아직 전시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가 지금 진행 중이고, 양국 간에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이번 유엔 총회 기조연설은 사전녹화 영상으로 이뤄졌다. ⓒ청와대
역으로 공식적으로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해서 적대적인 두 국가의 관계가 저절로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미국과 공식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무자비한 제재, 경제봉쇄 및 불안정화 캠페인에 시달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비핵화를 조건으로 북한에게 뭔가를 내어줄 필요는 없다는 이미 확고한 미국의 견해가 의도치 않게 강화될 수도 있다. 1953년에 교전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서 한 장이 문 대통령이 말하는 ‘완전한 평화의 시대’를 어떻게 가져온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감은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목표로 인한 것인데 그것이 문서 한 장으로 바뀔 리도 없다.
순전히 상징적인 조치로 생각하면 종전선언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치가 있으려면 미국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변화가 없다면 상징과 행동 의 괴리로 인해 종전선언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경제적 몰락과 고난, 그리고 기아를 목표로 제재를 통한 대북 포위전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시아 전문가 팀 빌은 “미국이 제재와 군사훈련, 침공훈련 등으로 아직 북한과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 중 그 어떤 것도 실제로 멈추려고 한다는 기미가 없다는 점”이 종전선언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했다.
종전선언에 들인 노력을 문 대통령이 평화를 가져올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엘리트들이 북한에 상징적인 외교적 부스러기라도 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상기해야 한다. 워싱턴 엘리트들의 머리 속에는 북한이 아무런 대가없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북한과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믿음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집착한 이유도 미국에게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북한과 종전선언을 논의했다고는 하나 이를 추진하는 것은 분명 한국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에만 매달리면서 북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철저히 무시한다. 북한은 포위당했다. 그 결과 북한 관리들은 미국으로부터 더 구체적인 것을 원하고 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6주년을 맞아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을 11일 3대혁명전시관에서 개막했으며 김정은 당 총비서가 기념연설을 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2일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이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 당시 북미 실무협상의 북한 대표였던 김명길은 “미국이 우리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정세 변화에 따라 순간에 휴지장으로 변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를 협상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타산한다면 문제 해결은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또 지난 9월에는 리태성 북한 외무부 부상도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며 담화를 통해 “종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남아 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대해 갖은 비난을 퍼붓고 경제적으로 목을 조르면서도 북한을 적대시할 의도는 없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발표한다. 미 국무부 대변인 네드 프라이스는 북한에 ‘구체적인 제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성격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북한의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미국이 일방적인 군축을 요구하는 대가로 하찮은 외교적 부스러기들을 주겠다고 하는 관례적인 접근 방식을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은 회담 재개를 위해 보다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현 상황에서 교착상태를 깨고 대화를 재개하는 열쇠는 북한의 정당한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은 공허한 구호를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호소력 있는 대화 방안을 제시하며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을 철회하고 관련 제재, 특히 인도적 및 생계 관련 조항과 관련된 제재를 조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10월 북한이 핵미사일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한 자발적 모라토리엄을 준수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했다. 예상대로 미국 측은 분노했고 미 유엔대사 린다 토머스-그린필드는 역으로 대북제재의 엄격한 실행을 촉구했다.
미국은 더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작년 12월 10일에 북한의 몇몇 인사와 애니메이션 회사 SEK스튜디오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SEK스튜디오와 일을 했다는 이유로 중국 애니메이션 회사 하나도 제재 대상이 됐다. 아산정책연구원의 고명현 선임연구위원 말대로 북한이 외부세계와의 거래로 단 1센트도 벌 수 없게 백방으로 손을 쓰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바이든이 북한과 세계에 보낸 것이다.
주한 미대사로 임명된 제재 전문가 필립 골드버그 ⓒ사진=뉴시스
바이든은 이어 주한대사로 필립 골드버그를 임명해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것임을 재차 보여줬다. 골드버그는 오바마 정부 시절 대북제재 조정관을 지내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북한과의 거래를 막기 위해 정치인들과 금융권 인사들을 만났다. 골드버그의 개인 철학도 대북강경책과 잘 맞는다. 골드버그는 콜롬비아 대사 시절 우익 야권과 만나 추방당했고, 콜롬비아 대사로 임명된 후 인사청문회에서 베네수엘라의 정부를 전복하고 ‘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해 콜롬비아와 협력할 것이라며 “미국이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과 자유를 추구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을 돕기 위해 모든 외교적, 경제적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골드버그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고정관념에 도전할 인사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듯 최근 무기 실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철거하고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자발적으로 중단했지만 미국은 일시적으로 북한을 침공, 폭격하고 고위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특공대를 침투시키는 훈련의 규모만 축소했을 뿐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편 한국군은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 아래 매년 군사비를 평균 7.4%씩 인상했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군사 주둔을 확대하고 있고, 지난해의 두 차례를 포함해 정기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도 미국과 한국의 무기 개발에 대응해 군비 현대화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 결과 표적이 된 편의 노력이 ‘도발’로 매도되는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이 땅에서 동족끼리 무장을 사용하는 끔찍한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전쟁 자체를 방지하고 북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과 미국에 상응하게 군사력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우려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은 작은 나라 하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체가 미국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나쁜 선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방 정부와 언론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습관적으로 ‘위협’이나 ‘도발’로 규정하면서 유사한 실험을 하는 다른 국가들은 비난하지 않는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비회원국인 인도는 지난해 10월 27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아무도 이를 신경쓰지 않았다. 인도타임스가 이를 ‘중국을 향한 엄중한 경고’라고 표현했듯, 미국은 오히려 이를 반겼을 것이다. NPT 회원국이 아닌 나머지 두 핵보유국은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인데 이 두 국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또한 미국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않는다.
지난 1월 18일 미사일 실험을 한 이스라엘 ⓒ사진=이스라엘 국방부
이것은 이중잣대다. 유엔으로부터 미사일 실험이 금지된 국가는 북한이 유일하며 이를 어겼다는 이유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에 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이 했다고 하면 순항미사일이나 극초음속 미사일의 발사처럼 금지되지도 않은 실험도 규탄된다. 토머스-그린필드는 최근 북한의 실험을 ‘공격’이라 묘사하며 ‘북한 사람들에 대한 압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선동하기도 했다. 또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북한이 1월 30일 발사한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그것이 “2018년 북한이 선언한 모라토리엄 위반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규탄했으나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북한의 자발적 모라토리엄은 장거리탄도미사일에 관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서방이 왜 유일하게 북한만 처벌하는 걸까? 토머스-그린필드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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