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가 한개뿐이라 불편해서 큰맘먹고 어제 집에 오는길에 냄비를 삼
이런거 전혀 볼줄 모르니 마트 여직원분께 여쭈니
모 메이커를 보여주며 요새 잘나가는 제품인데 무슨 천연 글라스 세라믹 재질에 어쩌고저쩌고...
여튼 뭐 재질 자체가 좋대서 샀다

오늘 사무실 여직원이 피자를 만들어왔다
정확히는 식빵에 피자토핑을 해서 만든건데...
신기해서 어떻게 만들었냐하니 설명해주는데 되게 간단했다
소스도 피자소스 따로 마트에 판단다
그냥 피자소스 바르고 토핑 올리고싶은거 올리고 오븐에 구으면 땡이란다
오븐이 없다 하니 후라이팬에 해도 된다고 했다
타지 않냐 했더니 물을 좀 뿌려주고 뚜껑을 덮으면 수증기때문에 치즈가 녹는다 했다

우리집 후라이팬은 뚜껑이 없는데...하다가 문득 어제 산 새 냄비가 생각났다
원리는 똑같으니 냄비로도 되겠다 싶었다
마트가서 재료를 샀다
앞으로 혼자 피자 한번 시키면 그날 하루종일 피자만 먹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설레였다
게다가 요리법도 굉장히 간단하고...

여직원 말대로 식빵위에 치즈와 이것저것 올리고, 약불로 냄비에 올렸다
숫가락으로 식빵주위에 물을 뿌려주었다
뚜껑을 덮었다
"별거 아니네, 나도 좀 늘었나보다" 하면서 흐뭇해 했다.

30초후에 뚜껑을 열어보니 치즈가 아직 안녹았다 물을 조금 뿌려주었다
 1분후에 뚜껑을 열어보니 치즈가 아직 안녹았다  물을 조금 뿌려주었다
 2분후에 뚜껑을 열어보니 치즈가 아직 안녹았다  물을 조금 뿌려주었다
혹시나 싶어 숫가락으로 식빵을 들춰보았다

다 탔다
냄비 바닥이 새까맣게 탔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까지의 기대가 한순간에 뻘짓거리가 되자 초조해졌다
윗부분은 멀쩡하니 얘라도 살리자 싶었다
숫가락으로 아직 타지않은 윗부분만 긁어냈다
냄비에 물을 부어놓고 쪼그려앉아 먹어봤다

근데 맛있긴 되게 맛있다
치즈가 동네 피자랑 다른것 같다. 마구 늘어난다
성공만 했으면 되게 맛있었겠다 싶었다.

탄냄비는 처참했다
숫가락으로 탄부분을 벅벅 긁어보다가 안닦여서
쇠수세미로 벅벅 긁었다. 다행히 닦였다
그래도 쓸수는 있겟다 싶었다. 물론 이미 새냄비 꼬락서니는 아니었다.
대충 정리해두고 나니 문득 \'이게 뭐하는 짓거린가\' 싶었다
처량하다 못해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다 못해 그냥 병신 같았다

내일부터 사무실 식구들 전부 붙잡고 소개팅 부탁해야겠다...
이건 사람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끊은 담배 생각만 간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