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성, 2년전까지만해도 21세기 들어 가장 망한 디즈니 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가 2022년에 이 기록을 갱신했다) 그럼에도, 한번쯤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
지금부터 이 멋진 영화를 스토리, 영상미, 캐릭터의 3가지로 나누어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큰 이유는 없고 그냥 내가 영화를 볼 때 그 3가지를 중점적으로 봐서 그렇다
1. 스토리
제목과 포스터만 봐도 알겠지만, 이 영화는 소설 보물섬(Treasure Island)의 sf판이다. 그래서 제목이 보물성星에 원제는 Treasure Planet이다. 보물섬은 150년 가까이 된 소설이고 워낙 유명하니 내용은 뭐 다들 알겠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어머니와 단 둘이서 함께 여관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소년 짐은 어느 날 전직 해적이라고 주장하는 거친 손님을 맞게 되고, 그 손님이 죽으면서 남긴 보물지도를 손에 넣게 된다. 짐은 사실 그 보물지도가 이미 죽은 대해적 플린트 선장의 평생 모은 보물이 묻혀 있는 섬의 지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선원들을 모아 보물을 찾아 항해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선원들은 사실 조리장으로 위장한 해적 실버를 따르는 해적단이었는데...
"해적에 보물지도에... ㅅㅂ 그냥 클리셰 그 자체잖아" 라고 생각했다면 정확하다. 이 소설이 그 보물찾기 클리셰를 만들었으니까.
육지에서 보물찾기야 뭐 아라비안 나이트에 그리스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깊은 장르라서 150년 따리로는 명함도 못 내미니 넘어가고, 최소한 바다에서 보물찾기에서는 선조라고 꺼드럭거릴 수 있는 근본 작품이다.
클리셰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유는, 이런 시조격 근본 작품들이(나 그것들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영상화가 될 때 항상 맞닥뜨리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근본이니만큼 그 요소들이 다른 작품들에서 너무 많이 사용되고 변주되는 바람에 식상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게 그 작품 자체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 너무 잘 만들어서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게 어떻게 잘못이란 말인가. 그저 시대의 흐름의 따른 불행이라고 할 수 밖에.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시조격인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이 바로 이 문제점 때문에 처참히 박살났고, 사이버펑크 장르의 조상 중 하나인 뉴로맨서는 아직까지도 영상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어지간히 잘 만들지 않는 이상 나와봤자 아무도 안 볼 거다. 뉴로맨서에서 보여준 모든 걸 매트릭스에서 더 깔끔하고 멋지게 잘 보여줬는데 굳이? 그렇다고 근본 작품들을 확 틀어버렸다간 원작파괴라고 욕먹을 수 있을 뿐더러, 그럴 거면 굳이 원작을 안 만들고 그냥 내 작품 하나 만들고 만다는 식이 되어버린다.
보물성은 이 딜레마를 영상미와 재치있는 sf적 각색으로 해결했다. 스토리 자체는 원작과 거의 다를 게 없지만, 시각적 요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sf적인 방식으로 각색했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통해 원작을 아는 사람도 재미있게, 아니 아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했다. 근데 좆망했으니까 결국 해결은 못한 거 아님? 이라고 하면 뭐라고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구나...
2. 영상미
디즈니가 적극적으로 당시만해도 혁신기술이었던 카툰 렌더링과 cg를 적용했으며, 제작진들을 갈아넣어 cg에도 유화 느낌이 나도록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다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실 이런 제작 기술 같은 건 잘 몰라서... 이쯤만 하고 넘어가도 좀 봐주셈
우주 묘사 역시 참으로 독특하고 아름답다. 보물성의 우주는 우리가 아는 그 우주라기보다는 거대한 바다에 가깝고, 블랙홀과 초신성 폭발에도 마치 대항해시대의 선원들이 폭풍이나 파도를 만난듯 대응한다. 실제로 우주가 아니라 이더리움(Etherium)이라는 고유명사를 쓰기도 하니 작품만의 고유 설정이라고 봐주면 되겠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 같은 사실적인 우주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주인공 짐이 배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또 캐릭터들의 복장 역시 볼만한데, sf시대임에도 대항해시대의 옷차림을 보는 듯하며, 배도 우주선이 아니라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갤리온이라 그 시대의 모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게 해준다.
3. 캐릭터
캐릭터 하나하나도 정말 매력적이다. 사실 원작인 보물섬의 캐릭터들부터가 고전 소설치고는 대단히 입체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게 만드는 게 더 힘들긴 하겠지만.
그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키다리 존 실버는 오늘날 해적 캐릭터 클리셰의 절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나머지 절반은 후크선장)
외다리, 어깨에 올려놓은 앵무새, 해적 말투같은 외적인 모습부터, 해적다운 교활함과 냉혹함, 능글맞은 화술과 꼬마인 주인공 짐만은 은근히 아껴주는 성격까지... 그리고 이 미워할 수 없는 해적은 보물성에서도 시대를 뛰어넘어 그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원작에서는 외다리지만 sf라는 장르에 맞춰서 사이보그로 각색된 이 해적은, 보물성에서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교활함, 냉혹함, 능글맞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디즈니답달까, 원작의 실버에게서 냉혹함을 대부분 덜어내고 그 빈자리를 주인공 짐에 대한 애정이 채운다. 짐에게 무관심하던 죽은 아버지와는 달리, 실버는 밧줄 묶는 법, 항해하는 법, 남자답게 좌절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 주며 그의 또 다른 아버지가 되어준다.
잔혹한 해적 부하들과 짐 사이에서 갈등하는 실버의 모습도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요소다. 쓰다가 생각한 건데 욘두랑 비슷하네. 실제로 욘두마냥 해적들이 선장은 왜 저 애새끼만 편애하냐고 대드는 장면도 나온다.
실버 얘기만 잔뜩했지만 주인공 짐도 상당히 잘 만든 캐릭터다. 아버지 없이 자라서 부성애에 목말라 있으며, 불량하면서도 가끔씩 영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성은 실버와도 유사하며, 그의 (사실상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매력적이다.
보물성의 골드로저 포지션인 플린트 선장도 씬스틸러다. 살아있는 상태로는 30초 정도 나오는데 진짜 좆간지임. 성우도 무려 옵티머스 프라임 성우인 피터 컬런이라 목소리도 끝내주더라
그밖의 조연들도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상갤 특정 세력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것처럼 생긴 선장
그리고 엄청난 동안의 소유자인 주인공 엄마까지...
이 영화가 지금 나왔다면 이 둘에 대한 떡밥으로 온 아캄탭이 가득 채워졌을텐데... 이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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