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공화당 전당대회 도중, 트럼프의 선거 캠프에서 일한 적이 있던 CNN 진행자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믿지 못한 채 옆자리에 앉은 오바마 캠프 출신 동료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했다. "우리 지금 공화당 전당대회에 온거 맞지?"
그럴 만도 했다. 13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미국 최대 노동 조합 중 하나인 팀스터즈의 회장 션 오브라이언이 조합의 121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한 것이다. 그리고 오브라이언은 그 자리에서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지지해오던 반-노동조합 법안들과 대기업들의 탐욕을 비난하고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을 쏟아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로 간택된 J. D. 밴스 상원의원은 자신들이 더이상 월가가 아니라 평범한 미국인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고 말하며 거대 자본에 비판적인 논조를 전개했다. 끝으로, 도널드 트럼프 본인 역시나 후보직 수락 연설 도중 자신이 관세를 대폭 인상할 것이라고 밝히는 한편, 첫 번째 임기에서 (개혁이 시급한) 연금과 의료보험 체계를 개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 공화당은 자유시장과 대기업의 정당이었다. 공화당은, 비록 시기별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민주당에 비해서 적은 세금과 작은 정부, 방임주의와 대기업 친화 정책을 지지했고, 그 대가로 자본가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원칙이 흔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화당이 자유시장 원칙을 비난하고 노동 계급의 정당을 자처하며, 대기업들이 민주당을 후원하고 좌파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시대 말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광경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45년 전, 로널드 레이건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장: 로널드 레이건 시대
대공황과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임기 이후, 서구 국민들과 정치권은 대체로 큰 정부와 개입주의를 선호하였다. 대공황 시점까지 자유방임주의 경제를 선호하던 공화당도 상대적으로 중도화 되었다. 공화당 소속이던 아이젠하워는 노조 가입률 증가를 자랑스럽게 홍보했고, 또다른 공화당 소속 대통령 닉슨 역시나 가격 통제 정책을 사용하는 등 필요할 경우 정부 개입을 꺼리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 상황이 달라졌다. 팽창 재정과 지나친 정부의 시장 개입,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 차례의 오일 쇼크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모두 상승하는 경기 침체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그러자 다시 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유행했다.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은 그 신자유주의를 지지했다. 레이건은 상류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 각종 규제 완화, 작은 정부와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레이거노믹스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대공황 이후 정부 개입을 강조하던 기조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뜻했다. 결과적으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는 당시 불황에 빠져있던 미국 경제를 부흥시키며 재계를 적극적이고 절대적인 공화당 지지층으로 만들었다.
미국 정가는 신자유주의를 환영했다. 공화당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민주당도 제3의 길을 천명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수용했다. 자유 무역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들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과 세계 무역 기구 (WTO) 창설, 그리고 중국의 WTO 가입은 모두 민주당 소속 대통령인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물론 공화당과 미국 정계의 모두가 이 신자유주의 열차에 탑승한 것은 아니었다. 1992년 재선을 노리던 조지 H. W. 부시는 당 내에서 예상치 못한 반란을 맞이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고보수주의자이자 팻 뷰캐넌이 경선에서 일종의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뷰캐넌은 부시보다 더욱 보수적인 사회문화 성향을 가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도 주요 가치로 강조했다. 뷰캐넌은 경선 초기에 무려 38%의 표를 얻으며 부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그가 최종적으로 득표한 23%는 재선을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상당한 득표율이었다.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저항은 1992년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도 표출되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 모두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간의 자유무역 협정인 NAFTA를 지지하고 나섰을 때, 억만장자인 로스 페로는 '일자리를 뺏어가는 남쪽의 거대한 진공 청소기'에 대해 경고하며 자유 무역과 NAFTA에 반대하는데 집중하는 플랫폼을 들고 나왔다. 한 때 지지율 1위까지 기록한 그는 결국 전체 표의 18.9%를 받으며 3위로 마감했으나, 이는 1912년 이후 양당 출신이 아닌 후보가 얻은 최고의 득표율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러한 반란들은 결국 정치권의 가장자리에서 심장부로 진입하는데 실패했다.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말까지 미국의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이런 반란들은 점차 잊혀졌다. 신자유주의 질서는 미국을 영원한 번영으로 이끌 것만 같았고, 그 부작용들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한동안 별로 나오지 않았고, 특히 공화당에서는 더더욱 희박했다.
그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수많는 사건들은 결국 버락 오바마의 당선을 불러왔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당선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 운동, 흔히 말하는 PC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주로 대도시의 고소득층 전문직들과 청년층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 대학들이 매우 좌경화 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며, 오늘날 미국 대학 교수들의 절대 다수는 진보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경제적 성공으로 생긴 여유를 사회 문제에 돌리는 사람들,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도 많아졌다.
미국의 여러 대기업들은 이런 사회적 흐름을 따라가며 정치적 올바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에서였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기업'들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정치적 올바름이 확산되기 이전부터 호의적이었다. 고학력-고소득자인 전문직들은 소득은 물론이오, 접근성 덕분에 어마어마한 구매력을 자랑해 기업들의 든든한 고객층이 될 수 있었다. 청년층은 신기술과 신제품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얼리 어답터들이었으며 젊은 이미지를 통해 윗세대가 그들이 구매하는 제품을 똑같이 구입하게 촉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보다 자신들이 구매하는 상품의 '정치성'에 더 큰 신경을 썼다.
또다른 큰 이유는 바로 회사 내부적 이데올로기였다. 앞서 멀한 고학력-고소득 전문직들은 당연하게도 기업 내부의 리더들이기도 했다. 적지 않은 기업 경영진들은 그들의 PC 마케팅 내용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마케팅의 일환인 동시에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사내 일반 직원들 역시 진보적 성향을 가진 것 또한 기업가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중요한 사건은 바로 실리콘 밸리의 탄생이었다. 실리콘 밸리의 혁신가들은 당연히 대학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진보적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이 창조한 혁신적인 기술 기업들, 즉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과 넷플릭스 등은 정치적으로 강한 진보 성향을 띄고 있다. 이런 기술 기업들은 재계의 정치적 올바름 지지 운동을 지금도 이끌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실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사내 노동 조합의 결성을 막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규제를 회피하거나 무력화하는 대신 사회문화적으로 진보적인 운동들을 후원하여 대중의 관심을 돌리며 실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 대기업들은 어떤 식으로던 정치적 올바름을 통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는 이미 여러 롤 챔피언들을 성소수자로 만들었고, 넷플릭스와 디즈니 같은 콘텐츠 괴물들은 자체적 컨텐츠에 정치적 올바름을 주입하고 있다. 자사 노동 조합 결성을 집요하게 탄압하던 아마존은 인종차별 반대 단체들에 천만 달러를 후원했고, 대규모 아동 노동 착취에 연루된 코카콜라는 퀴어축제를 후원한다. 자신들의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해, 기업들은 앞다퉈서 진보적 활동들을 지원하고 이를 홍보에 써먹는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날 동안, 또다른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분명 경제 성장과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 부작용도 거대했다. 레이거노믹스는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들로 만들어버렸고, 빈부 격차도 심해지게 만들었다. 히스패닉계 이민자들과 불법체류자들의 대규모 유입은 노동 시장을 치열하게 만들어 임금 상승을 억제했다. 사회 전반에서 노동 생산성은 크게 증가했으나,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40년간 사실상 정체되었다.
NAFTA와 WTO의 창설, 그리고 중공의 WTO 가입은 모두 자유무역 질서를 강화시켰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멕시코는 미국에게서 16년간 80만개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중국인들은 18년간 380만개를 빼앗아갔다. 이들은 대부분 중산층이 고용된 제조업 일자리였다. 해외에서 생산된 물품들은 싼값에 들어와 더 많은 국내 제조업 일자리들이 사라지게 만드는 악순환을 창조했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대부분 학력 수준이 낮아 전문직이나 사무직으로의 직종 전환이 어려웠고, 트럭 기사 같은 저임금-중노동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최악의 경우 정부 복지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미국의 경제 성장과 번영은 계속 지속되었지만, 그것을 떠받치던 중산층은 서서히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한때 번영을 누리던 미국의 수많은 소도시들과 농촌 공동체들은 세계화의 물결과 그로 인한 미국 공업과 광업의 쇠락으로 서서히 활력을 잃어갔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중 일부는 절망 속에 타지로 떠났고,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빈곤과 범죄, 약물에 취약해졌다. 이렇게 피해를 본 사람들의 대다수는 학력과 소득이 낮은 백인 노동자들이었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는 결정타였다. 거품이 터지면서 미국이 쓰고 있던 번영의 가면은 박살났다. 미국의 모순은 위기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치며 백악관에 입성한 버락 오바마 정권 역시나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은 소도시와 농촌 사람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도중, 오바마는 아예 해외로 이전된 일자리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신자유주의 질서로 무너져가던 공동체들은 한계점에 도달했다. 레이건과 공화당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한 다음 그대로 버렸고, 한 때 노동자의 정당을 자처하던 민주당도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로비스트들의 감언이설에 그들을 방치했다. 변화를 약속한 오바마도 이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모두에게 버려진 미국인들은 절망에 빠졌고, 절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들은 현재의 경제 질서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사회문화적으로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대기업들을 바라보고 분노에 빠졌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그 분노를 정치적으로 표출할 방법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2장: 도널드 트럼프의 혁명
도널드 트럼프가 인종주의적 막말만 했다고 생각하면 큰 착오다. 그는 미국의 부자들과 엘리트들에 희생되는 소외되고 불만에 찬 이들의 이익에 대해서도 말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당을 모두 거부하던 수많은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포퓰리즘에 중독되었고, 이들은 순식간에 공화당의 다수가 되었다. 트럼프는 공화당을 그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트럼프는 경제에 있어서 여타 공화당 후보들처럼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을 얘기했지만, 차이점도 많았다. 그는 공공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주문했고 연금과 의료보험 삭감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월가의 도덕성을 비난하며 자신이 '큰 손'들의 후원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들의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를 경계하며 자신은 이런 독점 기업들을 해체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는 이민 축소와 불법체류자 추방을 외쳤으며 자유무역 체제를 끝장내겠다고 공언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행보와 후보 개인의 숱한 논란들 때문에 그가 공화당의 후보가 되리라 예상한 전문가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들과 현 미국 체제에 대한 불만은 상상 그 이상으로 컸고, 결국 그는 다른 후보들을 전부 격파하며 공화당 대선 후보에 등극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러 대기업들은 본선에서 민주당으로 옮겨갔다.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누르고 민주당 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은 사회문화적으로 진보적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도파였다. 그녀의 남편 빌 클린턴은 재임 기간 동안 친-기업 정책을 펼치며 미국의 경제 호황을 이끌었다. 그녀가 미국의 경제 엘리트 인사들과 강한 친분이 있으며, 이길 확률이 높아보인다는 사실도 그녀에게 줄을 댈 이유가 되었다.
힐러리는 선거 내내 월가의 거대 은행들과 주요 대기업들, 여러 언론사들과 대형 헤지 펀드들의 주요 인사들에게서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반면 미국 100대 대기업 CEO들 중 트럼프를 후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는 결국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가 승리한 주된 원인은 상술한 버려진 노동자들이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트럼프가 여러 주요 경합주들, 특히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우는 미국 오대호의 주들에서 승리를 거머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그들에 대한 답례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의 잊혀진 모든 남성과 여성들은 더이상 잊혀진 채로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기성 경제 정책에 대한 반감과 단절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재계와 기성 우파들의 초기 우려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기득권과 좋게 시작했다. 그의 내각은 재계 출신 인사들로 가득했고, 포퓰리스트들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치워졌다. 기업가들은 경제와 관련된 각종 자문위원회들에 초청되었다. 법인세는 35%에서 21%로 대폭 감면되었고, 고소득자들의 세금 부담도 낮아졌다. 기업과 은행을 겨냥한 각종 규제들은 먼지가루로 변했다. 주가 그래프는 꾸준히 우상향 추이를 그려냈다. 트럼프는 여러 면에서 기성 공화당 대통령들과 비슷한 정책을 폈다.
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자문 위원회들의 조언은 상당수가 무시당했다. 이데올로기적 차이는 꾸준히 정부 인사들과 자문단의 갈등을 유발했다. 샬롯츠빌 폭동에서 트럼프가 자신을 지지하던 극우파 시위대를 비판하기를 꺼리자, 여러 기업가들이 그를 비판하며 자문단에서 사퇴했다. 분노한 트럼프는 자문 위원회를 모조리 해산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트럼프 본인의 보호무역주의와 예측불허성 역시 기업가들의 악몽이었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은 신자유주의 질서가 다져놓은 공급망 체계를 흔들었고, 무역은 물론 경제와 관련된 그의 돌발적, 때때로 충동적인 행동들은 재계를 종종 패닉에 빠뜨렸다. 주요 사업 파트너 선정 과정에서 대통령의 개인적인 선호에 따른 의사 결정이 일어났고, 포드나 할리데이비슨 같은 일부 기업들은 트럼프에게 트위터로 직접 저격당하기도 했다.
재계와 트럼프 정부의 관계는 2020년에는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 있어서 방역보다는 경제를 중요시해 코로나 관련 규제를 심하게 두지 않았고, 초대형 경기부양책에도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분명 기업들에게 이로운 조치였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 위험성 축소와 미숙하고 혼란스러운 대처는 기업 활동에 악영향을 줬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인해 전국적인 시위와 폭동이 일어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시위대와 대치했다. 이는 BLM 지지를 선언한 여러 기업들과는 척을 지는 행위였다. 여기에 트럼프 지지자들 또한 맞불 집회들을 열면서, 결과적으로 트럼프 본인이 강조한 법과 질서와 거리가 먼 상황도 포틀랜드 같은 지역들에서 연출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국면에 도달하자, 재계는 또다시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에 쏠렸다. 조 바이든은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서 더 확고하게 좌파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대기업들과 재계 인사들은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나 보수주의에 대한 반감 말고도 단순히 바이든의 승률이 높았기 때문에 미리 줄을 서는 경우도 있었다. 재계는 바이든에게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주었다. 트위터는 심지어 내부에서 바이든에 유리하게 여론을 조작해 그가 승리하는데 일조했다.
트럼프가 단순하게 개인적인,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재계와 사이가 안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비록 대통령 당선 이전의 언행에 비해서는 기성 공화당과 가깝게 통치했지만, 경제 정책 자체에 있어서 전임자들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트럼프는 기성 공화당 정치인들과 다르게 재정보수주의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부 예산을 삭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공지출과 재정적자를 소폭 늘렸다. 또한 트럼프는 국민 개개인에게 800달러의 코로나 지원금을 추가로 주기도 했는데, 이는 재정보수주의와 거리가 많이 먼 정책이었다.
대통령 선거 한참 이전부터 보호무역을 옹호하던 트럼프는 관세를 통해서 무역 적자를 줄이고 일자리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무역 정책 총괄자로 임명했고, 라이트하이저는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수입되는 물품들에 막대한 관세를 매겼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들로 이득을 본 사업자들도 있었다. 특히 알루미늄과 철강 산업 종사자들은 막대한 이익을 봤고, 해당 분야의 일자리와 생산량도 늘어났다. 하지만 해외에서 값싼 자재들을 수입하던 수많은 기업들은 무역 전쟁으로 기존 공급망이 흔들려서 타격을 입었다.
이런 보호무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협정들을 재검토하고 수정하거나 아예 탈퇴했다. 그 말 많고 탈 많던 NAFTA는 노동조합들의 지지 하에 USMCA로 개편되었다. 한미 FTA 등의 일부 무역 협정들은 개정되었고, TPP는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탈퇴해버렸으며, WTO조차 반쯤 식물기관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밖에도 트럼프 정부는 임기 말기에 구글을 비롯한 독점 빅테크 대기업들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걸면서 이들의 몸집 불리기와 영향력 행사를 견제했다. 거대 제약 회사들의 폭리 취득을 막고 미국 서민들의 지갑을 지키기 위한 제약업계 규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취한 마지막 조치 중 하나였다.
트럼프 본인과 그의 행정부 뿐만 아니라,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도 역시 조금씩 자유시장주의와 대기업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그의 보호무역 정책에 장단을 맞춰줬다. 대기업들이 진보화 되면서 자신들의 상품에 그런 진보 사상을 집어넣는다는 점이 점점 비판 받기 시작했다. 일부 젊은 의원들은 한층 더 나아가 대기업의 탐욕과 만행을 비난하며 노동 계급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트럼프 정부와 새로운 공화당이 재계와 충돌하고 자유시장주의에서 조금씩 이탈할 동안, 미국 보수 사회의 풀뿌리 조직들과 일반 지지자들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자유 시장 원리와 대기업들에 비판적인 주장과 이론가들이 인기를 끌었고, 대중의 여론도 바뀌었다. 현재 미국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신우파라고 불린다. 베스트셀러 서적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로 유명해진 패트릭 드닌 교수, 개입주의적 경제 정책을 부르짖는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컴패스의 창설자 오렌 캐스, 한때 미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TV쇼 진행자였던 터커 칼슨이 그 대표적인 주자들이다.
신우파는 과거 좌익이 그랬듯이 거대 자본과 자유무역, 세계화가 좋은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면서 빈부격차를 커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이러한 거대자본의 탐욕으로 일어난 일들이 가정과 지역 사회라는 기본적인 공동체 역시나 해체시키고 파괴했다고 분개한다.
노동 환경의 악화로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더이상 혼인과 출산을 원치 않았다. 일자리의 해외 이전으로 지역 경제가 붕괴되면서 일부는 자신들의 고향을 떠났고, 남은 구성원들은 절망에 빠지면서 도박과 약물에 손을 대게 되었다. 세계화의 거친 바람 속에서 노동조합들 뿐만 아니라 마을을 오랫동안 지켜온 교회들도 하나둘씩 스러져갔다.
심지어 이런 변화의 주범인 대기업들이 그러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설파하기까지 한다니, 신우파 세력에게 현재의 대기업들이란 보수를 이용해먹으면서 동시에 파괴하는 위선적인 배신자들로 밖에 안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그 배신자들을 단죄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찬성한다. 보호무역 기조 강화, 대기업에 대한 규제, 독점자본 해체, 노동권 증진 등등, 미국의 진보 좌파가 외쳐오던 의제들이 이제는 대형 우파 스피커들한테서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파괴한 사회'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결혼 지원과 아동 세액 공제 같은 개입주의, 큰 정부 정책에도 찬성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신 우파' 성향 인물들은 좌익에게 호응을 얻거나 역으로 그들을 칭찬하기도 한다. 드닌 교수의 저서는 무려 현대 민주당의 아이콘인 버락 오바마에게 샤라웃을 받았다. 오렌 캐스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반독점 운동가 맷 스톨러와 친구 사이다. 터커 칼슨은 유명 사회민주주의자 정치인 엘리자베스 워렌의 기본적인 경제관을 호평하며 무려 '그 트럼프보다도 낫다'라고 평한 적이 있으며, 꾸준한 반-대기업 메세지로 일부 좌파 칼럼니스트들에게 두둔받은 적이 있다.
이런 반-대기업, 경제적 개입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점점 인기를 얻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기업들과 은행들에 대한 여론도 믿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다. 2019년만 해도 공화당 지지자들은 금융 기관과 대기업, 대형 기술 기업들에 대해 대체로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우호적이었으나, 몇 년 만에 오히려 더 적대적으로 변했다. 공화당원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정당이 기업가들의 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장: 공화당의 재건축
재계와 공화당의 마찰, 공화당과 미국 우익의 경제적 좌경화는 트럼프 대통령 퇴임 이후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트럼프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그의 열성적인 추종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트럼프의 계정을 차단시켰다. 수많은 기업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에 대한 후원을 끊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 문제에서도 양측은 갈등을 빚었다. 재계는 바이든이 밀어붙이던 대기업 직원 백신 의무화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코로나 관련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백신 의무화 정책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이에 반발, 재계를 당황시켰다.
투표 절차 문제에서도 재계는 공화당과 대치했다. 공화당은 자신들이 장악한 일부 주에서 투표에 필요한 신분 인증 절차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수많은 기업들이 민주당, 진보 단체들과 함께 손을 잡고 이것은 유색인종의 투표권을 제한한다며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오늘날 재계의 후원이 공화당의 선거 자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반대로 소액 후원, 즉 일반 지지자들의 비중은 훨씬 늘어났다.
공화당도 강대강으로 나왔다.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이 반-대기업 정책을 펼치자, 공화당 정치인들은 과거와 달리 이에 대한 언급도 안하면서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진보적 가치관을 퍼뜨리는 '좌파 자본'에 대한 비판은 거의 모든 공화당 정치인이 동의하는 지점이다. 진정한 노동 계급의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들과 적대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플로리다의 론 드산티스 주지사는 디즈니가 자신의 아동 대상 LGBT 교육을 제한하는 법안을 비판하자 디즈니월드의 특권을 빼앗으려고 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 주 정부는 블랙록과 JP모건, 골드만삭스가 주의 경제를 지탱하는 석유화학 업계를 경시한다며 이들과의 거래를 끊었다. ESG 경영과 기업 내부의 여성•소수인종•성소수자 우대 프로젝트,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컨텐츠 등은 꾸준하게 비판받고 있다.
신우파 세력은 한층 더 나가 바이든과 민주당의 반독점, 반-대기업, 개입주의 정책을 환영하며 지지와 협조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으로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트럼프와 경선에서 격돌했다 오늘날 측근으로 변한 마르코 루비오는 대기업을 규제하고 중소기업들을 보호하는 독일식 시장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자본주의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지, 월 가와 베이징을 위한 것이 되어선 안된다고 말한다.
젊은 트럼프주의자인 조시 홀리 상원의원은 특정 분야를 독점하는 기업들, 특히 대형 기술 기업들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이들의 독점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노동조합 강화 법안에 찬성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한다. 심지어 자신의 정당이 그동안 미국 노동자들을 저버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텍사스의 테드 크루즈, 아칸소의 톰 코튼, 인디애나의 토드 영, 캔자스의 로저 마샬 등등, 공화당 상원의 신세대 정치인들은 생산자보다는 소비자에게,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에, 자본가보다는 노동자에게 유리한 보수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기성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일부 사안에서 설득당해 이들과 의견을 같이 한다. 공화당 하원에서도 20% 정도의 의원들이 바이든 정부의 독점 자본 해체 지원 정책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공화당의 변화는 이미 유럽의 여러 우파 포퓰리스트들 사이에서 있던 현상이다. 1990년대 무렵, 유럽의 여러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은 기존의 자유시장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에 소외된 사람들의 표를 긁어모으기 위해서였다.
단순한 인종주의에서 벗어난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현재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은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언어를 쓰고 있으며, 대부분은 더 나아가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정책들을 내걸고 있다. 반이민 정책은 노동 계급을 위한 경제 정책으로 포장되었다.
미국에서도 이런 바람이 뒤늦게 불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은 미국 특유의 극단적인 양당제와 로비 시스템에 의해 계속해서 억눌러진 경제적 개입주의와 포퓰리즘의 지니가 마침내 램프에서 풀려난 것이다. 그리고 이 지니는 램프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계와 공화당이 완전히 결별할 것, 공화당이 자유시장 논리를 완전히 버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건 매우 섣부르다. 미국은 세계에서 양당제가 가장 심한 국가고, 정책만 놓고 본다면 여전히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반-대기업, 개입주의적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제조업과 유통업, 석유화학 기업들은 진보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여전히 공화당에 로비를 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공화당 정치인들 역시 가능하면 일정 수준의 유착은 유지하고 싶어한다. 미국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것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하고, 기업들의 후원은 이 자금을 모으는데 필수적이다.
또한, 역설적으로 대기업에 적대적인 이 새로운 공화당의 방향을 오히려 열렬히 지지하는 자본가들도 있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페이팔 마피아'와 코인 사업가들, 핀테크 창업가들과 스타트업 투자자들로 대변되는 자들이다. 이들은 반독점 소송 같은 대기업 규제 포퓰리스트 정책이 오히려 극소수 플랫폼 기업들과 거대 은행사들의 독점 체제를 뒤흔들어 자신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펼칠 공간을 마련해준다고 보며 환영한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자본가들은 순전하게 기성 대기업들을 싫어하는 것일 뿐, 경제적으로 그들과 원하는 것이 비슷하다. 최근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막강한 입지를 얻은 일론 머스크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고 있고, 벤처 투자자들은 규제 완화를, 코인 사업가들은 코인업계에 대한 인정을 바란다. 이들은 노동 조합 강화 같은 친-노동 조치들에 대해서 기성 대기업들처럼 여전히 부정적이다. 일부 포퓰리스트 운동가들은 이미 머스크와 그 친구들이 자신들의 아젠다를 방해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트럼프 본인 역시 2016년과 다르게 더이상 대기업들의 행패나 위험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지 않다. 정확히는, 그들에 대해 언급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의 선거 운동 테마는 주로 자기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이 살기 좋았다는 말의 반복이다. 물론 임기 말의 제약업계 규제 정책이나 연금 & 의료보험 보호를 주요 치적으로 언급하고, 막대한 관세 부과를 공약하고 있지만, 기존에 비하면 확실히 덜 포퓰리스트 적이다.
이렇게 혼탁해보이는 그림 속에서 중요해지는 인물이 있다.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로 간택된 사나이 J.D.밴스다.
밴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끔찍한 부통령 후보다. 그는 과거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하는 등 좌파 성향이었으나 이후 트럼프 충성파로 전향한 인물이다. 밴스는 과거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막말을 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와 똑같은 백인 남자에다가 사회문화/외교적 성향 역시 트럼프보다 더 논란이 있으면 있지, 전통적인 부통령 후보의 역할, 즉 약점을 보완해주거나 중도층을 끌어올 역할을 하지 못한다. 역대 미국 부통령 후보들 중 밴스만큼 인기 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 글에서 선거 얘기를 하려는건 아니다.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밴스의 상징성과 경제관이다. 밴스는 미국 동부 러스트 벨트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자라났다.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자수성가한 밴스는 이후 벤처 투자자로 엄청나게 성공했으며, 자신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를 집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J.D.밴스는 백인 노동 계급의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밴스는 자신의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았다. 2022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상원의원으로 뽑힌 밴스는 상술된 젊은 동료들과 함께 신우파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한다. 신우파 운동가들과 자주 교류하는 밴스는 아동 수당 확대를 밀어붙였고,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정책 담당자를 칭찬했고, 파업하는 자동차 노동자들을 찾아가 함께 피켓 라인에 섰으며,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지지한다.
밴스의 이런 특수함은 향후 신흥 자본가들과 포퓰리스트들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잠재력이 있다. 밴스의 성장 환경과 그의 경제관은 노동 계급에게 호소력이 있다. 동시에 그는 벤처 투자자들과 친분이 있는 것을 넘어 그들의 일부다. 그는 필요에 따라 오하이오의 가난한 소년이나 성공한 벤처 사업가, 두 정체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당분간 이 서로 상충하는 이익 집단들의 관계를 유지하는 작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핀테크 사업을 하는 캘리포니아의 벤처 투자자와 자기 일자리를 되찾기 바라는 펜실베이니아의 트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지금 당장 공감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부분은 둘 다 골드만삭스와 조 바이든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만약 트럼프가 이긴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어떻게 굴러갈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트럼프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포퓰리스트 진영과 기업가 진영이 서로 파워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밴스, 성공한 벤처 투자자인 동시에 노동 계급의 대변자인 독특한 위치에 속한 밴스는 두 진영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트럼프 1기때의 권력 다툼은 친기업 진영에게 우세했다. 2기때는 전개가 다를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11월에 진다고 해도, 향후 공화당의 방향성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공화당원들과 우익 운동가들, 소속 정치인들은 갈수록 대기업, 자유무역, 시장원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것은 명백하고 확실한 기류다. 주요 대기업들의 진보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은 이미 일상이고, 아예 경제 정책 자체를 수정하자는 신우파 계열 인물들도 꾸준히 힘을 얻을 것이다. 과거로의 귀환은 없을 것이다.
1988년 11월 26일, 현대 공화당과 미국 보수주의의 아이콘이자 지난 40년간 미국의 정치를 지배해온 이념의 전도사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는 미국 국기를 냉소적으로 흔들면서 경제, 국가 안보, 자유 세계 전체를 약화시키는 등 친구들에 대한 무역 전쟁을 선포할 준비가 된 선동가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레이건의 연설로부터 40년이 지난 현재, 미국 공화당은 레이건이 그토록 경고해온 그 '미국 국기를 냉소적으로 흔들면서 친구들에게 무역 전쟁을 선포할 준비가 된 선동가'들의 정당이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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