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게시물 : 싱글벙글 해외 대기업들은 정말 상속을 안할까?
실베에 올라온 글 보고 쓴다. 많은 해외 대기업들도 원 글에서처럼 가족 상속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니 첨언하고자 한다.
우선 이들 기업은 대부분 지분은 가족 상속을 하지만,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는다.
사진에는 '회장'이라고 나와있지만 이들의 정확한 직함은 대부분 '이사회 의장'이다. 이사회는 매우 축약하여 말하자면, 기업의 '국회' 같은 것이다. 일상적인 경영활동을 하지 않고 경영진(CEO와 그 밑의 COO, CFO 등)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또 중요결정에 대하여 합의에 의거해 승인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이사회 의장은 따라서 대통령보다는, 국회의장이나 다수당 대표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들이 이사회 의장 직에 있다고 해서 경영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큰 비약이다. 애플의 CEO가 팀 쿡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아서 레빈슨'이라는 이사회 의장의 이름을 들어본 이는 드물 것이다. 구글의 CEO가 순다르 피차이라는 인도인이라는 사실은 꽤 유명하지만, 구글의 이사회 의장이 누구인지는 경제에 꽤나 관심이 많은 사람도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정답은 존 헤네시라는 컴퓨터 공학자이다.) CEO는 이사회에 정기적으로 회사의 경영 상황을 보고하고 자사주 매입이나 대규모 투자 등을 승인받기 위해 그들을 설득하지만, 그들을 윗사람으로 모시거나 그들의 지시사항을 이해하는 부하직원은 결코 아니다.
참고로 그렇다면 한국 재벌들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의 '회장'이라는 직함은 법적인 직함이 아니다. 법적으로는 이사회의 의장도, 법인의 대표이사도 아니지만 그냥 내부적으로 대표보다 높은 '회장'이라는 직함을 만들어 회사의 '짱'으로 추대하고 있는 것이다.
https://m.moneys.co.kr/article/2021062309578077126
물론 일부 재벌의 경우 그나마 양심적이라 법적인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이사회 의장, 대표이사를 모두 겸임하고 있다) 대개 한국 재벌기업에서는 '회장'이라는 비법률적 직함을 대표이사 위에 만들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형적인 상왕정치식 관습이 일반화되어 있다.(이것이 외국인들이 재벌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CEO가 아닌 이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근데 해외 대기업들도 결국 일가족이 지분을 다 들고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지네 아들내미 딸내미 CEO에 앉혀버리면 되잖아? 그러면 결국 똑같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물론 법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며, 실제로 가족들이 CEO를 하는 회사도 일부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특히 대기업과 주식회사라면 CEO직을 세습하는 사례는 드물다.
원 글에 언급된 포드사는 45년 창업자 헨리 포드가 그의 아들 포드 주니어에게 경영권을 세습했지만 포드 주니어가 79년 퇴임한 이후로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겨왔다. 그러던 중 2001년,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가 CEO직에 올랐다. 당시 포드사는 전임 CEO인 잭 내서의 삽질과 시장의 변화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으며 누구들 말마따나 '책임감 있는 오너경영'을 할 수 있는 빌 포드는 구세주처럼 보였다. 그는 이미 1998년부터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으며 거대한 자동차 회사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취임 이후 1~2년간 포드사의 실적은 개선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책임감'과 '능력'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2003년부터 포드사는 다시 휘청이기 시작했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영난 타파를 위해 여러 조치를 감행했으나 상황을 전혀 개선하지 못했으며, 주주들과 언론은 그의 리더십에 연일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그는 2006년 9월 물러났으며, 그가 물러난 2006년 포드사는 역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06090607661
이사회는 그의 뒤를 이을 새 CEO로 보잉에서 민항기 부문 사장을 지내며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는 앨런 멀럴리를 영입했다. 물론 포드도 주주총회를 열어 이사회를 우호세력으로 싹 갈아치우는 방법을 썼으면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물론 미국에서 이런 짓을 했다간 주주소송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포드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빌 포드도 포드의 '구원 투수'를 찾기 위한 이사회 일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멀럴리가 얼마만큼의 책임감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능력은 확실했다. 보잉에서의 구조조정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포드의 실적을 매우 획기적으로 개선했으며, 금융위기로 다른 기업들이 휘청이던 2009년에 포드사는 적자에서 탈출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언론에서 '올해의 CEO'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말년 즈음에는 당시 위기에 빠져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차기 CEO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돌기도 했다.
https://www.latimes.com/business/la-xpm-2012-apr-15-la-fi-books-20120415-story.html
포드는 또 주주환원도 매우 훌륭하다. 포드는 자동차업계의 대표적인 배당주로 꼽힌다. 정상화에 성공한 2011년부터 현재까지 매우 준수한 배당성향을 보이고 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092808675
비슷하게 미국 기업 중 가족 소유로 원글에 언급된 월마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쪽 역시 월튼 가문이 이사회에는 참여하지만 경영을 세습하지는 않으며, 훌륭한 주주환원을 자랑한다. 기사에 따르면 월마트는 2008~2017년 10년 동안 당기순이익 1474억달러 중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에 678억7천만달러, 주주배당에 537억7천만달러억달러 등 1216억4천만달러를 사용했다.
https://www.mk.co.kr/news/stock/10606179
한국 재벌들처럼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 알짜사업부 분할상장 등으로 경영권 가진 대주주만 웃고 개미들은 병신 만드는 수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 가문은 여타 개미들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잘 나가면 벌고, 못 나가면 잃는다'는 주식회사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다.
https://www.mk.co.kr/news/stock/10198554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1911111204001
+참고로 포드사는 미국 경제사에서 주식회사의 경영권과 관련하여 많은 암시를 남긴 Dodge V. Ford 판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https://en.wikipedia.org/wiki/Dodge_v._Ford_Motor_Co.
포드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모두 알다시피 T형 포드를 만들어 어마어마한 갑부가 되었다. 포드자동차는 매우 잘 나갔고, 회사에는 이익이 넘쳐흐를 지경이라 그는 정기배당 외에도 특별배당을 실시했다.
그러던 그에게 매우 기분 나쁜 소문이 들려왔다. 바로 자사에 부품을 공급하던 '닷지 형제'(참고로 차에 관심이 많은 게이들은 알고 있을 닷지 챌린저, 차저를 만든 그 회사가 맞다.)가 완성차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이를 듣고 포드는 고심하다가 부랄을 탁 칠 만한 아이디어를 낸다.
그는 '앞으로 포드자동차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합니다~ 직원들 임금은 올려주고 제품 가격은 낮출 겁니다^^'라고 선언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바로 닷지 형제가 포드의 지분 10% 정도를 가진 주주였기 때문이다.(참고로 이는 사업 초기 그들에게서 납품을 받기 위해 현금 대신 지분을 주기로 한 포드의 계약 때문이었다) 포드는 이 선언을 통해 사내 유보금을 낮추고 배당을 확 줄여버렸다. 사업 초기 많은 현금이 필요했던 닷지 형제는 갑자기 자금줄이 막혀버렸지만, 절대적인 지분을 가진 헨리 포드가 이미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결국 닷지 형제는 울며 겨자먹기로 포드자동차에 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상고심까지 간 끝에 미시간 주 대법원은 '포드자동차는 자선 계획을 철회하고 배당을 재개하라'며 닷지 형제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은 주식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므로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경영권 행사는 용인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여기서 '주주'란, 헨리 포드나 닷지 형제와 같은 개별 주주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공유하는 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말한다. '꼬우면 니가 대주주하던가ㅋㅋ'라는 논리는 천조국 머법관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1. 해외 대기업들도 지분을 상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2. 그러나 대개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한다.
3. 주주환원도 훌륭하기 때문에 개미들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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