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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군의 전설적 항공모함 vs 일본해군 조종사..gif
https://www.youtube.com/watch?v=49aUP8xzJq0The Big E 라고 불렸던 《《USS 엔터프라이즈》》는 다른 어떤 미국 함선보다 태평양 전쟁에서 더 많은 주요 전투에 참여했는데 미드웨이 해전 , 동 솔로몬 해전 , 산타크루즈 제도 전투 , 과달카날 전역 중의 다양한 다른 공해 교전 , 필리핀 해 전투 , 레이테 만 전투 , 오키나와 전투까지 활약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많은 훈장(20개)을 받은 미국 함선이자 "미해군의 상징"이었다. 수많은 공격을 받고도 활약을해 "회색 유령"으로도 불렸다. 전쟁이 끝날 무렵, 엔터프라이즈는 911대의 일본군 비행기를 격추하고 71척의 함선을 침몰시켰으며 192척 이상을 손상시켰다. 하지만 이 전설적인 항공모함은 1945년 5월 14일 오키나와 전투에서 한 일본 조종사에 의해 대파 당하고 전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토미야스 슌스케》 1943년 3월, 토미야스는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남만주 철도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43년 9월 18일, 선전에 힘입어 일본 전역을 휩쓸었던 애국심의 물결에 자극을 받아 그는 13기 학생 예비군으로 제국 해군에 입대했다. 기초훈련을 마친 후 이바라키현 츠쿠바 항공군단에 배치됐다. 1945년 3월 28일, 츠쿠바 항공대는 제케 특공대(가미카제)를 조직했고, 토미야스 중위는 특공에 자원한다. 1945년 5월 14일 오전 5시 30분, 중위 토미야스는 250kg 폭탄을 탑재한 제로 전투기 14대로 구성된 가미카제 특수 공격대 제6츠쿠바 비행단의 지휘관으로서 가노야 공군 기지에서 출격했다. 레이더에 가미카제 편대가 포착되자 미해군 태스크 포스 58은 요격을 위한 함재기들을 출격시켜 제로기 8대를 격추시킨다. 미군의 초계기를 통과해 살아남은 6대는 규슈 남동쪽으로 수백마일 떨어진곳에서 모여있는 함대를 발견하고 미해군 대공화망 돌파를 시도한다. 5대가 격추되고 마지막 남은 토미야스의 제로기는 구름속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구름을 이용한게 인상깊었는지 당시 태스크 포스 58 행동 보고서에도 기록된다.) 엔터프라이즈가 선회하는 순간 토미야스의 제로기는 급강하를 시작한다. 당시 해군 중위가 목격한 제로기는 약 200피트 상공에서 좌현 밖으로 날아갔고, 살아남기 힘든 불길의 벽을 뚫고 배면비행으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향해 치명적인 충돌을 감행한다. (충돌 직전 촬영된 토미야스의 제로기와 근처 USS 워싱턴에서 촬영한 폭발 모습) 1945년 5월 14일 오전 6시 57분 그는 맹렬한 대공포화를 피하고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CV-6)의 전방 엘리베이터에 충돌했다. 대폭발을 일으켰고 엔터프라이즈의 앞쪽 엘리베이터가 400피트 높이로 치솟았다. 이 공격으로 장교와 병사 14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당했으며 함재기 8대가 함께 파괴당했다. 대파된 엔터프라이즈는 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머지 전쟁에서 제외되었다. 지난 3년간 일본해군 전체가 엔터프라이즈를 몰아내는데 실패했지만 기초훈련만 받은 초보 조종사 혼자서 해낸것이다. USS Enterprise CV-6 협회의 회장이자 당시 2급 조선공이었던 노먼 L.자프트의 증언과 전쟁일지에 따르면 1945년 5월 14일 오후 2시 10분 승무원들은 죽은 가미카제 조종사를 바다에서 단순하지만 예의를 갖춰 장례를 치뤄주었다. (토미야스의 신원파악에 도움을 준 노먼이 가족들에게 돌려준 비행기 잔해들) 노먼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일본 국민에 대해 적대적이고 편견이 있었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용서할 때가 되었다고 썼다. -토미야스 슌스케의 마지막 편지-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자매님, 저는 출격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지금 출발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훌륭한 전투 결과를 달성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운명과 존재가 눈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의 수호자로서 떠납니다. 제가 없을 때 그리워하실 수도 있지만, 큰 열정과 쾌활함으로 살아주세요. 걱정은 모든 사람을 낙담하게 만들 것입니다. 해군에 입대했을 때, 저는 당연히 죽음에 대비했기 때문에, 여러분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히데오에게 편지를 보낼 계획이지만, 집에서도 인사를 전해 주세요. 중위 콘도가 방문할 예정이므로, 그를 만나 주십시오. 저는 최선을 다할 테니, 안심하십시오. 슌스케 - dc official App
작성자 : leeloo고정닉
싱글벙글 122세까지 산 어느 할머니
Jeanne Louise Calment(잔 루이즈 칼망)1875.02.21~1997.08.04(122세)프랑스 출신평범한 사람이지만 기네스북에 정식 인증된 사람인만큼 수많은 일화가 있다.1. 잔 칼망에게는 상속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유일한 자녀는 마흔도 안된 나이에 요절하고, 외손자도 196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그래서 1965년(90살)에 당시 47세였던 변호사에게 자신이 살이잇는 동안 매달 50만원씩 지급받고 사후에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주기로 했다.변호사는 당연히 개이득이라 생각하고 계약을 했으나, 문제는 잔 칼망이 그 후로 32년을 더 살았다. 반면 변호사는 1995년 77세의 나이로 2년 먼저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잔 칼망은 죽기 전까지 변호사들의 가족들이 매달 50만원씩 지급을 했다 한다.참고로 잔 칼망이 죽기 전까지 받은 돈의 액수는 아파트 부동산 가격의 두배였다 한다.2. 살아생전 빈센트 반 고흐를 직접 만나본 사람.1888~1889년 사이, 잔 칼망의 삼촌이 운영하는 옷감 가게에 캔버스를 사러 오면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고흐는 그런 잔 칼망을 보며 구애를 했다 하지만, 당시 고흐는 35살이고 잔 칼망은 13살이었다. 거기다 고흐는 미친 놈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당연하게도) 받지 않았다 한다.그리고 나중에 초상화를 그려주겠단 제안도 받았으나 역시 눈길이 있어서 거절했다 한다. 아주 나중의 이야기지만, 본인은 고흐가 이렇게 유명해질줄 알았다면 초상화를 하나 남길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한다. 또한 잔 칼망은 고흐를 지저분한 옷차림에 불쾌한 인상(Dirty, badly dressed and disagreeable), 이처럼 못생긴(ugly like a louse), 불손한(ungracious), 무례한(impolite), 병든(sick) 같은 말로 표현했다.이 이야기는 119세 때 회고한 내용이므로, 구애 건에 대해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다3. 1889년 완공된 에펠탑을 공사 중일때 봤으며, 1900 파리 올림픽의 관중이기도 했다.전자의 경우 잔 칼망이 10대 중반일 시절, 파리 올림픽은 25세였을 시절이다.4. 1896년(21세)~1992년(117세), 즉 96년 동안 담배를 폈다. 여기에 디저트도 튀긴 음식과 맵고 짠 음식을 선호했다.5. 2차대전 당시 독일군 병사 몇 명이 자신의 아파트에 무단으로 들어와서 잠을 자고 갔다 한다. 딱히 망가뜨리거나 가져가거나 해를 끼친 건 없다고.이 때 잔 칼망은 60대 중후반이었다.6. 1960년 85세의 나이에 펜싱을 처음 배웠고, 110세까지 자전거를 탔다.7. 110세 즈음 치매 판정을 받았지만, 뒤늦게 치매가 아니라 희귀한 프랑스 사투리를 쓰고 있었단 사실이 밝혀졌다.8. 잔 칼망 가족은 대체로 장수한 편이라고 한다.오빠인 프랑수아도 97세까지 장수했고, 부친인 니콜라도 92세, 모친인 마르그리트도 86세까지 살았다.그리고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지라 잔 칼망은 돈을 위해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으며.테니스, 사이클링, 수영, 롤러스케이트, 피아노, 오페라 같은 고급 취미 생활을 자주 즐겼다고 한다.애초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던 생애였던 것...그리고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감이 안올 사람을 위해 말하자면운요호 사건이 벌어진 당해에 태어난 사람이 기아그룹 부도유예협약 체결 20일 후에 사망(IMF)했다 생각하면 된다.마지막으로 이 사진은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 출생신고서로 첫줄의 mil huit cent septante-cinq가 출생년도인 1875를 뜻한다.
작성자 : 수인갤러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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