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붕이에게.

안녕 만붕아. 나야, 김만순.

오랜만이야. 벌써 한해가 지났네....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아. 미룰수록 너에게 더 큰 상처가 될 테니까.

먼저, 내가 이렇게 글로 이별을 전하게 되는 걸 용서해줘. 너를 만나 행복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을 말하기가 정말 힘들어.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을 뒤로하고 솔직히 털어놓으려 해.

5년 전, 내가 해외로 떠난 이후로 우리 사이가 조금씩 멀어진 건 사실이야. 처음엔 네가 그리웠고, 다시 너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네가 없는 내 일상이 익숙해지더라.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알던 세계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됐어.

이 사람은 정말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야. 키도 208cm에 잘생겼고, 무엇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모습에 빠져들었어. 

너는 항상 내가 입는 옷, 먹는 음식 하나하나 지적했고 내가 하는 일과 스케줄은 배려하지도 않았어.

만나기만 하면 항상 청소도 안된 너네 집에서 들어가서 디시인사이드? 그런 음습하고 이상한 사이트 이야기나 하고... 어린 여자애가 비키니 입은 사진이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거나, 내 또래 여자애들이랑 잘나가는 남자애들 욕만 했잖아. 

그런 것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난 너랑 제대로 된, 커플이 나눌만한 이야기와 시간을 원했어. 

유행하는 음식을 먹고, 놀이공원과 카페에 가는 것. 그리고 공원에서 내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먹으면서 피크닉을 하거나 그런거 말이야.

근데 넌 그런건 '인싸'들이나 하는 멍청한 짓이라며 환기조차 안된 너의 자취방에 날 3시간 정도를 항상 가둬놨잖아.

하지만 그는 그런 적이 없었어. 비록 조금은 산만하고 엉뚱하긴 하지만 내가 힘들어하면 함께 울어주고, 기쁠 땐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 사람은 용병이야. 직업도 있고 건강하다고. 

만붕이 넌 간단한 알바조차 하지 않고 항상 나한테서만 얻어먹고 자기 관리는 커녕 항상 라면이랑 콜라만 마시고 간단한 산책도 잘 하지 않잖아.

이게 얼마나 잔인한 이야기인지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 마음은 이미 너를 떠나 그에게 가버렸고, 이 사람과 함께하면서 새로운 가족도 생겼어. 우리 사이에 있었던 5년이라는 시간만큼, 나는 그와 더 깊은 시간을 만들어왔어. 

나는 더 이상 너한테 만족할 수 없는 몸과 마음으로 변했어.

너를 만나던 시절 내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돌아보게 돼. 하지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네가 이런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건 당연해. 나도 내가 한 선택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알아.

그래도 한 가지는 꼭 말하고 싶어.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리고 네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던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

진심으로 미안해. 그리고 네 앞에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랄게.

안녕.

만순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