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조는 당나라의 설화를 바탕으로 서해 바다 용왕의 후손을 자처했다.

우왕이 이성계의 명령을 받고 자신을 죽이러온 병사들에게 겨드랑이에 있는 비늘을 보여줘 왕씨의 혈통을 증명했다는 야사가 유명하다.

이는 고려의 왕실인 개성 왕씨가 왕위를 독점하기 위해 채택한 전략으로 임페리얼 컬트(Imperial cult)의 성향을 지닌다.

고려 왕가는 후고구려의 궁예왕을 몰아내 건립되었으며, 고대 중국 한나라로부터 전파된 유교적인 천명론(天命論)으로 즉위의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한편으로는 초월적 권위에 기대어 왕권의 절대권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성인군주론(聖入君主論)과 신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지상의 절대자로 군림하려고 한 신성군주론(神聖君主論)을 병행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후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개성 왕씨는 용손(龍孫)'이라는 혈통적 정당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왕가는 몽골의 등장 이후 몽골 황실과의 밀착을 이룸으로써 왕권 강화와 권위 회복을 동시에 이루면서도 용손 의식은 타격을 받기 시작한다. 대원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황제에서 제후로 격하당함으로써 왕권이 상대화되고 말았으며, 이는 권위 하락과 용손 의식 쇠퇴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고려 영내에서 개성 왕가에게 있던 왕위 독점권이 서서히 부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공민왕이 공인된 후계자, 즉 세자를 세우지 못한채 사망하면서 혈통의 진위성에 의심을 꾸준히 받아온 우왕이 즉위함으로써 고려왕가에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몽골 왕조에 굴복해 일개 제후로 격하당한 왕권의 상대화와 우왕의 즉위로 인한 용손의식의 붕괴가 고려 후기 고려 왕가에게 왕권의 정통성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던 원나라의 쇠락과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고려왕이 정통성을 기댈 근거가 희박하게 된 것이다.

결국 왕권의 정당성을 입증할 이데올로기가 고려 왕가에 없게 된 것이었는데, 이런 와중에 정몽주, 이성계에 의해 우왕과 창왕이 왕씨의 후손이 아니라는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이 제기됨으로써 고려는 멸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