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은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끈임없이 돌고 돈다(재귀한다, 반복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아무 생각이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바람에 다시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 않았기에, 다시 아무 생각이 없어지도록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은 사실 생각이 없다는 말로 개념화하는 순간 다시 그 말이 아무 생각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아무 생각이 없으려면 아무 생각을 하려는 생각을 부정해야 한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부정은 아무 생각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없다는 말은 있다는 말과 상보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있지 않음은 곧 없음이 되지만, 없음(무無)을 그 자체로 개념화해서 어떤 관념(예를 들면 무소유 따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다시 아무 생각이 없지 않게 되어버리므로 이러한 개념화는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논리적으로 모순된 존재는 실재할 수 없는 상상(허상)이다. 사실 '의식'이 있는 인간이 완전히 아무 생각이 없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만약 가능하다면 그걸 소위 '열반'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러니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은 그 말(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하면 안 된다.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은 실재하지 않는 어떠한 것을 지금 계속 상상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또 다시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그 실재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 위해서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고 실재를 배제하려고 하지만, 사실 어쩌면 그 실재와 허상의 구분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지금 내가 아무 생각이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그게 다 누군가의 꿈속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다고 하는데, 그 꿈에서 깼을 때 자신이 나비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곳에서 나비가 날아다니고 다시 아무 생각이 있는 세계로 돌아와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과연 나비인가 사람인가. 아무 생각이 없든 아무 생각이 있든 어쩌면 그건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과 생각이 있는 것은 상대적인 차이가 아닐까? 예를 들면 내가 아무 생각이 없이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사실 나는 정지해있고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이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 두 가지 상황은 같다. 내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건지 세계가 왼쪽으로 움직이는 건지 그 두 가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 다만 어느 한 가지를 임의로 기준 삼아서, 그 기준을 바탕으로 다른 것들을 임의로 규정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도 사실 아무 생각이 있을 때를 기준으로 그 반대 방향의 사고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아무 생각이 없을 때를 기준으로 아무 생각이 있는 경우를 규정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말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