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있던 사실이다.
흑도의 영역에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체
생쥐처럼 몸을 숨기며 음식물 쓰레기를 퍼먹으며 살아가던 나는 많은 소문을 주워들을수 있었고
'왜협'(倭俠)이라 불린 스승은 나름 천하에서 통하는 협객으로 유명했다.
왜(倭)와 협(俠)이 어찌 공존할수 있냐며 스승을 그냥 왜구라 부르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대표적인 스승의 별호는 왜협이었다.
왜구로 피해를 입은 지방을 떠돌며 수많은 왜구와 마인들을 도살하던 스승은
혼란스럽고 차가운 흑도의 길바닥에서 나를 만났다.
왜도를 제련할 장인이 흑도 영역에만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 고철이라도 주워서 팔아먹을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는 나를 만나게 된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스승은 나를 강제로 질질 끌고 데려갔다
씻고 먹이고 재우고
어린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몇달을 그렇게 지내게 되었을까
스승은 문파 하나를 세웠다.
왜검문(倭劍門)
참으로 단순하고 중원인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었다.
스승은 상관하지 않았었다.
스승은 나에게 글자와 기초적인 학문, 검술을 가르쳐줬다.
일반적 중원인들이 쓰는 한손으로 쓰는 양날검과 달리
양손으로 쓰는 외날에 길뚝한 장검, 왜도(倭刀)를 들려줬다.
스승이 든 왜검에 정파 무림인들은 극도의 살법(殺法)이라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스승은 무시했다.
이 편이 확실하게 빠르고 강하다는 이유였다.
천자문을 익힐때 스승은 팔방 베기와 일곱가지의 찌르기를 알려줬고
사람의 어디를 공격하면 죽는지, 어떤 공격을 흘리고 어떤 공격을 쳐내야 하는지 알려줬다.
심법을 알려줄때, 스승은 혈자리의 위치와 기를 운용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유학의 여덟가지의 덕목을 가르쳐줬다.
유술과 박투를 가르쳐줬을때에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세술을 같이 가르쳐줬다.
스승은 무공(武功)을 시작으로 나에게 사람으로 사는법을 가르쳐줬다.
그때부터 나는 처음으로 웃기 시작했던것 같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스승의 이름을 알고자 했으나
스승은 이름이 없다고 했다.
몇년이 지났을까
본래도 키가 작던 스승의 신장을 넘게 자랐을무렵
스승은 하얀 새치와 몇개 안남은 이빨을 가진 노인이 되어있었다.
나는 다시 웃음을 잃어갔다, 이유는 예전과 다르게
첫눈이 내리던날, 스승은 나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내려주겠다 말했다.
나는 '스승님, 스승님. 제발 저는 떠날수 없습니다. 적어도 스승님의 마지막까지 있고 싶습니다.'
이렇게 애걸복걸 하였더랬다.
그때부터 나는 스승을
왜구, 왜인, 무림인, 스승을 넘어
나의 하나뿐인 가족, 아버지라 여긴것 같다.
스승은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눈이 쌓인 마당을 걸어가 왜도 하나를 들고 문파를 나가셨다.
나는 그저 멍하니,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한채 스승의 기세에 짓눌려있었다.
며칠뒤, 스승님이 오실때를 위해 평소 좋아하시던 청어 한마리를 말릴 때였다.
스승은 복부에 칼 하나를 꽂은채 돌아왔다.
강제로 암시장에서 인육이 될뻔한 어린아이들을 구하느라 사파 무인들의 협공을 받았다고 한다.
상대는 40명 가량 고수였지만, 스승의 칼에 모두가 명을 달리했다고 주변의 상인들이 전했다.
스승이 침대위에 누웠을때,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갈정도로 울고있었더랬다.
상처는 깊었고, 의원조차 오지 않았다.
스승이 왜인이라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승님이 마지막 숨결을 내뱉기전
나에게 침상에 숨겨진 작은 목함을 살펴보라 명하셨다.
그것이 마지막 유언이었고, 스승은 눈을 감으셨다.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하고 빠른 이별이었다
나는 눈이 뿌애진 상태로 침상 밑에 숨겨진 작은 목함을 꺼내들었고, 이내 그것이 스승님의 일기장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일기장은 초라한듯, 그러면서 먼지가 쌓이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사람의 손에 있던 것처럼
더듬더듬 왜어를 읽어나가며, 스승의 일생을 알게되었다.
스승은 왜구였다. 정확히는 왜구로 위장한 정벌군
수십년전의 왜란. 스승은 그들중 하나였다.
스승은 무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한평생 무공에만 심취하며 살았다.
그래서 왜란이 일어났을때, 스승은 사람을 직접 베어봄으로써 경지를 높일수 있을거라고 판단했다.
중원(中原)의 무림인과 동영(東瀛)의 무림인의 한판승부
스승은 무사도의 환상에 빠져, 참혹한 전쟁에 몸을 들이밀었고
그 끝은 무간지옥(無間地獄)이었다.
스승의 동료들은 악귀가 되어갔다, 무림인, 남자, 여자, 노인, 아이, 가축
가리지 않고 죽였다.
스승은 이런건 무사의 도리가 아니라고 했지만
동료들과 지휘관은 검술만 좀 하던 촌구석 샌님이 하는 헛소리를 웃어넘겼다.
스승은 가문에서와 같이, 군에서도 별종이었다.
그들은 그게 끝이 아니라, 오히려 스승도 같이 행동하기를 원했다.
회유로, 명령으로, 겁박으로
스승은 이겨내지 못했다.
스승도 악귀가 되었다.
떨리던 손은 거칠어졌고, 사람의 목을 얼마나 빠르게 베는지 내기도 했다.
스승은 공포에서 희열로, 희열에서 무감정으로 변해갔다.
악의 소용돌이에 혼이 나가기를 몇년
기습적인 중원인들의 공격으로 대패를 당한 왜군은 뿔뿔히 흩어졌다.
스승은 허벅지에 단검 하나가 꽂힌채로, 정신없이 산길을 오르고 달려나가고, 종국에는 기어갔다
이제껏 외면하던 무고한 영혼들의 원망이 귀에서 들려오고, 몸의 피는 줄줄 새고 있었다.
스승은 절규했다.
어느 강가에 도착하고 스승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떳을때, 한 오두막 집이었다.
그곳에는 자기를 무심히 바라보던 한 중년인이 있었는데, 기세가 매서운듯 순했다. 모순적이었다.
중년인은 물끄럼히 스승을 바라보다가, 식사를 대접했다.
스승은 표독하게 거절하며 먹지 않았다.
중년인은 신경쓰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고, 중년인은 다시 식사를 가져왔다.
이번에는 중년인이 죽 한입을 먹고 스승에게 건넸다.
스승은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받아, 죽을 마시듯이 먹어치웠다.
중년인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몇달동안 치료가 이어졌고, 서로가 통성명을 할수 있을정도로 언어가 통하기 시작했다.
중년인은 스스로를 '장삼'이라 칭했다.
스승도 이름을 밝혔더랬다.
스승은 자신을 왜 구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저기 걸려있는 갑옷과 무기를 보면 알수있지 않느냐고 도저히 묻지못했다.
스승은 그저 두려웠다. 그 순간도 들려오는 원령들의 목소리 때문에
중년인은 항상 논어를 들고 다녔다, 스승은 글을 아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기묘한 중년인 장삼
간악한 왜구 출신 스승
둘은 친해질수 없는 사이같았지만, 그렇게 친구가 되어갔다.
글을 아는 스승이 논어를 가르쳐주고, 중년인은 중원의 율법과 사람들을 가르쳐주고
서로가 낚시 내기를 하며, 하루를 지새운적도 많다.
원령들의 목소리도 작아져갔다, 스승은 기뻣지만 왠지 죄책감이 들었더랬다.
그래서 어느날, 스승은 갑옷을 두고 왜도 하나만 챙긴채 오두막을 나섰다고 한다.
잠시만이라도 혼자서 참회할 시간을 얻기 위해
어느 동굴에 들어가 지난날의 자신의 과오와 잘못된 신념을 돌아보았지만, 스승은 답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3일뒤,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스승은 주린 배를 붙잡고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오두막을 불타고 장삼은 다리가 하나 잘린채 자갈
바닥에 누워있었다.
산적들은 박도 하나씩을 든채 낄낄 거리고 있었고
이내 달려온 스승의 참격에 인지도 못하고 일제히 마지막 웃음을 유언으로 내뱉었다.
스승은 칼의 피를 닦으며 중년인을 들어옮기려 했지만, 장삼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거절했다.
떨리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장삼은 스승을 바라보며, 답은 얻었냐고 물었다.
스승은 대답하지 못했다.
스승은 역으로 질문했다.
'왜 나를 도운것이오? 나는...'
'이유 없는 악인들이 있다면, 반대도 있지 않을까....'
'......'
'그냥...이유가 없소..그래도... 그걸로 충분...'
장삼은 그렇게 죽었다.
어디서 온건지, 왜 혼자 오두막을 짓고 살았는지, 왜 산적들이 찾아온것인지, 왜 읽지도 못하는 논어를 그토록 소중하게 가지고 다녔는지
스승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오직 한가지만 제외하고
스승은 장삼의 무덤을 만들어줬다.
오두막은 잔재까지 완전하 불태워없앴다.
스승 자신의 갑옷은 강가에 던져버렸다.
스승은 그렇게 도시로 올라와, 왜협이 되었고
나를 만났다.
'......'
스승님은 내가 자기를 경멸하기를 바랬던걸까
그래서 이 일기장을 유언으로 남긴걸까
'.....'
눈을 들어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눈물자국이 있었다.
....
스승의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난 문파의 부지를 헐값에 넘겼고
스승의 왜도를 들고 말 한필을 구해 고향을 떠났다.
"......어디로 갈까."
허리춤에 찬 왜도를 쓸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어디든 상관없겠지."
나는 스승을 아버지라 여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
"그 아이는 마두의 자식이오. 도귀(刀鬼)!"
근사한 흰 도포에 장발의 남자, 검룡(劍龍)은 검을 내게 겨누며 그렇게 외쳤다.
"그래서?"
"뭐라?!"
나는 뒤에 놓인 벌벌떠는 남자아이 하나를 가린채 천천히 칼을 뽑아 들었다.
"난 연좌(連坐)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도호룡은 그렇게 물었다, 진심으로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
마두의 남긴 자식은 당연히 뿌리를 뽑아야 안전하다는
그런 당연한 말을 왜 묻냐는, 논리 자체가 다른 사람
이것이 무림인들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알려줄 생각 없다, 덤비기나 해."
"...이놈! 가왜(假倭)답게 버릇이 없구나!"
검룡은 한손에는 검결지 쥐고 뒤로 뻗으며
한손에는 머리위로 들어올린 칼을 내리쳤다.
나도 똑같이 양손으로 단단하게 잡은 왜도를 들어 정중앙으로 베어들어간다.
큰 철소리와 함께 쓰러지는건, 검룡이었다.
한똑 얼굴과 목, 가슴에 깊은 자상을 입은 그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찌...동시에 베었는데 도귀 당신은.."
"베어떨구기(切り落とし)"
마지막으로 스승이 나에게 가르쳐준 일기장의 마지막장의 그려진 초식
도호룡은 그저 두려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주변에서 신진고수 검룡이 죽었다는 사실에 동요하며 큰 소리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슬며시 남자아이를 객잔 밖으로 인도했다.
내가 은잔 조각 몇개와 지름길을 알려주자
남자아이는 이해가 안간다는듯 나를 보며 물었다.
"왜...."
"왜냐고?...."
이유는 없어.
...
스승이 가르쳐준 마지막 초식 베어떨구기에는 이런 말이 덧붙여있었다.
'끝없는 열정으로 중심을 지켜, 들소처럼 마주베어나가라.'
그러면 절대로 너의 협의(俠義), 꺾이지 않을것이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