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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너무 시대를 앞서간 소설이야..앱에서 작성

진극한알록달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12 15: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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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십니까, 아이언스 공작님? 빨리 패를 돌리시지요.”
사일런스 지니의 재촉에 난 어리둥절하였다. 하지만 일단 손에 든 화투를 섞어 담요 위에 뿌렸다. 한 사람 앞에 두 장씩.
대체 내가 왜 두 장씩 뿌렸을까? 고스톱이라면 7장을 뿌려야하는데. 그렇다면 섯다라는 건가? 각자 패를 들고 쪼아보기 시작했다. 나도 패를 들어 보았다.
<2, 8>
이게 뭐야? 왜 28 멍통이야? 이 패가지고 뭐하라고? 어떤 놈이 패를 이딴 식으로 나눠 줬어?
패 바꿔줘!
난 나쁜 패를 잡았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봤다.
이럴 수가! 어째서 노처녀가 여기에?
그렇다. 날카로운 눈길로 패를 쪼아보고 있는 그녀는 바로 샤이 사일런스 일루니아 백작. 일명 노처녀.
아아!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노처녀를 만나는 날은 언제나 재수가 없었는데.
난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우리가 있는 곳은 2평 남짓한 골방이었다. 가운데는 군용 담요가 깔려져 있고 그 주위를 노처녀, 지니, 나, 라이 순으로 앉아 있었다.
어라? 라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라이는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두 개의 화투장을 쥐고 있었다. 표정이 뚱한 것으로 봐서 나처럼 멍통을 잡았나 보다.
“배팅하죠.”
배팅은 무슨 배팅! 멍통 가지고 어떻게 배팅을 하냐? 아무리 배짱으로 나간다 해도 한 끗은 돼야 뭘 하던지 말든지 하지.
난 패를 덮었다.
“다이Die.”
니들끼리 열심히 가라.
지니부터 배팅을 하기 시작했다.
“받고 더.”
오오! 노처녀 세게 나오는데.
“저도 더요.”
라이마저.
“콜Call.”
지니 너는 왜 약한 모습이니?
“받고 더.”
“저도 더요.”
라이야. 너 너무 강하게 나가는 거 아니니.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갔다. 지니는 중간에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노처녀와 라이의 싸움. 둘은 한 동안 배팅을 계속했다. 군용 담요 위에는 어느새 1만 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한 5천만 원 되려나?
“콜.”
“콜.”
드디어 멈췄군.
노처녀가 먼저 패를 열었다. 국화 두장. 구땡이군. 그럼 노처녀가 딴 것이나 다름없잖아. 구땡보다 높은 패는 장땡과 광땡. 라이가 과연 그 둘 중 하나를 들고 있을까?
“넌 뭐니? 어서 까보렴.”
라이는 눈을 껌벅거리며 패를 내려놓았다.
<7, 3>
나와 같은 망통이다. 하지만……
“칠삼멍통. 땡잡이!”
그렇다. 7, 3 멍통이면 한 끗에도 지는 패지만 땡은 잡을 수 있다.
푸하하!
난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라이는 생긴 것도 귀여운데 어쩜 이렇게 화투도 잘 칠까? 라이야. 섯다는 어디서 배웠니?”
“저 이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그래. 모르니까 망통을 가지고 따라왔겠지.
노처녀는 땡잡이에게 땡이 잡힌 것에 화났는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저 주름살 좀 봐. 저래서 시집을 어떻게 가겠어? 그냥 아줌마들과 밤 새 고스톱이나 치시지.
이제 라이가 패를 섞기 시작했다. 카드와는 별 인연이 없는지 엉성한 손놀림으로 화투를 섞었다. 손 밑으로 패가 줄줄 흐르는 군. 겨우겨우 어찌어찌하여 패를 다 섞은 라이는 각자 두 장씩 나눠 주었다.
어디 한번 패를 볼까?
한 장을 쪼아 보니 솔광이었다. 왠지 예감이 좋은데. 다른 패가 이자면 알리(1, 2), 흑싸리면 독사(1, 4), 국화면 구삥(1, 9), 단풍이면 장삥(1, 10), 솔이면 삥땡(1, 1), 삼광이면 광땡(1광, 3광), 마지막으로 팔광이어도 역시 광땡(1광, 8광). 굳이 순서대로 정렬한다면 광땡, 삥땡, 알리, 독사, 구삥, 장삥. 이런 순이다. 삼광이나 팔광이 나와 일삼광땡이던 일팔광땡이던 둘 중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최악의 경우는 삼자가 나와 네끗이 되는 거겠지.
어디 한번 남은 한 장을 볼까?
난 두장 겹쳐 쥔 화투에서 앞에 있는 솔광을 밑으로 내렸다.
오옷! 삥땡이다.
나타난 화투는 솔. 결국은 삥땡으로 가게 되었다. 이 정도면 끝까지 가볼만 하군.
“라이야.”
“예.”
“배팅해라.”
라이가 먼저 배팅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돈 놓고 돈 먹기가 시작 되었다. 나? 나야 물론 레이즈지.
“받고 더!”
“받고 더.”
“받고 더.”
아아! 돈 굴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먼저 떨어져 나간 사람은 사일런스 지니 백작이었다. 자식이 끊기가 없어. 끝까지 따라 올 것이지.
어느새 돈은 억 단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지폐가 산을 이룬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겠지? 그런데 노처녀와 라이는 무슨 패를 들고 있을까?
라이는 입으로 엄지손가락을 쪽쪽 빠는 것이 자신도 무슨 패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고 노처녀는 집중해서 자신의 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간이 살짝 찡그려져 있는데. 대체 무슨 패지? 설마 땡을 잡았나?
노처녀는 고개를 약간 들었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 어쩌면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 장면을 포착하고야 말았다. 노처녀의 안경에 국화 두 장이 비치는 것을.
이럴 수가! 설마 또 구땡을 잡았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잘 못 본 거야. 분명히 잘 못 본거야. 어떻게 연속 두 번으로 구땡을 잡을 수 있어? 그런데 정말 구땡이면 어쩌지? 제길. 지금에 와서 발을 뺄 수도 없잖아. 아니야. 피해를 최소화 하려면 지금에라도 죽어야 돼. 괜히 오기부리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어.
죽을 때를 알고 죽는 사람이 진정한 도박사. 억울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죽어야지.
“담배나 한 대 피십시오.”
사일런스 지니가 말과 함께 담뱃갑을 나에게 건넸다. 나보고 빨리 죽고 담배나 피라는 거냐? 이제 보니 노처녀랑 지니랑 한편 아니야? 남매끼리 사기도박을 친다는 건가? 그럼 난 뭐야? 난 봉이야?
난 담배나 피자는 심정으로 지니가 건네준 담뱃갑을 받았다. 순간 나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담뱃갑에 겹쳐져 있는 팔광. 검은색 산 위로 떠오른 둥근 달이 나의 가슴을 울린다.
뭐야? 대체 왜 팔광을 나에게 건네 준 거지?
만약 내가 이 팔광을 합친다면 삥땡이 일팔광땡으로 올라간다. 일팔광땡은 섯다에 있어서 최고의 패. -실제 가장 높은 패는 삼팔광땡(3광, 8광)이다. 하지만 삼팔광땡, 일팔광땡, 일삼광땡은 동급이라 할 수 있다. 이유는 이 중 하나가 나오면 다른 하나는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만 있으면 나는 무적이 될 수 있어.
난 담배를 입에 무는 척하며 순식간에 팔광과 솔을 교환했다. 그리고 솔을 담뱃갑 밑에 끼워 자연스럽게 지니에게 건네주었다. 지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뱃갑은 주머니에 집어넣고 솔은 손에 쥐어 자신의 화투 패와 겹쳤다.
후후후. 이것으로 완전 범죄. 잘 했어, 사일런스 지니. 내가 이번에 따면 크게 한몫 떼어주지.
잠깐! 그런데 지니는 내가 솔광을 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설마?
난 손에 들고 있는 화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화투 가장 자리에 누군가가 손톱으로 긁은 듯한 표시가 나 있었다.
그렇다면 사일런스 지니와 노처녀가 한 패여서 일부러 나에게 삥땡을 쥐어주고 자신은 구땡을 잡았다는 건가? 그런데 사일런스 지니는 언제나 위대한 아이언스 공작님의 인품을 존경해 온 나머지 사기도박을 칠 수 없어 몰래 나에게 팔광을 건네준 거고. 아마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1억 정도를 배팅한 이유는 판을 키우기 위해서겠지. 판 키워서 나눠 먹자고.
만약 광이 아닌 다른 패를 건네주었다면 그것도 작전 중에 하나 일 수 있다. 뭐 삥땡을 들고 있었으니 광이 아닌 다른 패는 건네줄 필요가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광땡은 최고의 패. 감히 어떠한 패로도 이길 수가 없다. 노처녀가 들고 있는 구땡이야 가볍게 박살난다.
그래. 남자라면 고. 못 먹어도 고. 끝까지 가보는 거야.
“받고 더!”
난 계속해 ‘받고 얼마 더’ 를 외쳤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쌓인 돈은 7억. 난 전 재산 2억을 전부 밀어 넣었다.
“1억 더.”
노처녀가 자신 있게 라면 박스 안에 들어있는 지폐를 바닥에 우수수 쏟았다. 몇 억이나 되는 돈이 1만 원권 지폐로 있다보니 담요 위에 놓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마치 돈지랄이라도 하듯 바닥에 돈을 쫙 깔아놓았다. 지금 내 발바닥에 차이는 지폐만 몇 천은 될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돈이 있어야 1억을 받을 거 아냐?
누군가 그랬다. 도박에 미치면 집도 걸고, 땅도 걸고, 아내도 걸고, 자식도 걸고, 자기 목숨까지 건다고. 하지만 나는 이 정도로 도박에 미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때를 대비해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라이코스를 걸 뿐이다.
“이 세상에 몇 마리 남지 않은 희귀종. 맛도 좋고 정력에도 좋은 그 이름도 유명한 청안백우조. 이 정도면 1억은 되겠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보셨죠? 말도 할 줄 압니다.”
“우리 이코한테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이코를 놓아 주세요.”
놓긴 내가 뭐 하러 놔? 내 도박 밑천인데.
“5천 쳐드리지요.”
“뭐? 아니 라이코스가 5천 밖에 안 돼?”
“5천도 많이 쳐드리는 겁니다. 싫으면 마세요.”
으윽, 노처녀.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다니.
하지만 치사하기로 따지면 아이언스 공작을 따라 올 자가 없다. 난 라이코스의 목을 대롱대롱 붙잡고 라이에게 말했다.
“라이야. 라이코스를 구하고 싶지 않니?”
끄덕끄덕.
“좋아. 그럼 내가 딱 1억에 라이코스를 너에게 넘겨줄게. 겨우 1억으로 넌 라이코스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좋아요.”
라이는 뒤에 있는 라면 박스에서 1억원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 걸. 이럴 줄 알았으면 한 2억 부를 거 그랬나?
난 라이에게 받은 1억을 던져 넣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라이가 문제였다.
“1억 받고, 1억 더요.”
너까지 왜 이러니? 설마 나를 물 먹일 생각이니?
노처녀는 가볍게 1억을 던져 놓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돈이 없었다. 라이코스 판매 금액까지 합친 3억을 몽땅 털어 넣었는데 더 이상 무슨 돈이 있겠는 가?
이렇게 된 이상 걸 건 하나 밖에 없군.
“저를 걸겠습니다.”
광땡을 잡은 이상 난 나까지 걸 각오가 되어있다. 왜냐? 반드시 이기는 패니까.
노처녀는 잠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천 쳐드리겠습니다.”
“뭐? 내가 1천만 원 밖에 안 돼? 내 장기를 떼다가 팔아도 그거 보단 많이 나오겠다.”
“1천만 원이 아니라 1천원입니다.”
“1천원? 그럼 나라는 인간이 김밥 한 줄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겁니까?”
“김밥은 먹을 수라도 있지 아이언스 공작님을 데려다가 어디다 씁니까? 1천원도 많이 쳐드리는 겁니다. 원래 시가로 계산하면 300원도 안 나옵니다.”
나보고 김밥 한 줄이라고 한 것도 모자라서 껌 한 통이란다. 내가 이걸 참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동귀어진하자고 달려들어야 하는 걸까?
“지금 아이언스 공작님이 차고 계신 시계 정도라면 9천 9백 9십 9만 9천원 쳐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결론은 나까지 포함해서 1억 걸라는 거다.
“좋습니다. 기꺼이 걸지요.”
내 몸까지 걸고 나서야 배팅이 멈췄다. 걸린 돈 13억에 내 시계, 그리고 나. 만약 이번 판을 노처녀가 먹는다면 난 평생 노처녀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 노처녀 성격이면 분명 매일 같이 나를 못살게 굴 것이다. 어쩌면 신발을 핥는 등의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당할 지도 모른다. 라이가 판을 먹어도 마찬가지다. 라이는 분명 같이 놀자고 나를 괴롭힐 것이다. 난 노예니까 어쩔 수 없이 같이 놀아줘야 하고 한달 정도만 유치하게 놀다보면 분명 정신 퇴행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쯤이면 유인원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왜냐? 나는 광땡을 잡았으니까.
노처녀가 먼저 패를 공개했다.
<9, 9>
“구땡입니다.”
노처녀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 마치 ‘니가 감히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노처녀의 손이 지폐 위에 닿았다. 난 노처녀의 손을 탁 쳤다. 일루니아는 안경 너머로 나를 찢어 죽을 듯 쳐다보았다.
후후후.
그런 눈빛으로 봐도 소용없어. 이번 판은 내가 먹는다.
난 당당하게 패를 노처녀 앞에 집어 던졌다. 순간 노처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일팔광땡!”
“그렇습니다. 일팔광땡입니다. 푸하하! 광땡이에요, 광땡! 어디서 감히 구땡을 가지고 깝쳐요? 우헤헤헤.”
노처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도 그렇겠지. 내가 삥땡을 들고 있는 줄 알았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겠냐? 원망하려면 그대의 동생을 원망하시지요.
“자, 그럼 이 돈들은 전부 제 차지군요.”
난 쌓여있는 지폐를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아! 행복해. 이 돈이면 루시아와의 결혼 자금으로 충분하겠지?
“아직 라이미안님의 패를 보지 않았습니다.”
“굳이 볼 필요가 있나요? 광땡인데.”
“그래도 볼 건 봐야지요.”
노처녀의 주장에 난 라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뭘 잡았니, 라이야?”
“으음, 잘 모르겠어요.”
하긴 니가 아는 게 뭐가 있겠니?
“한번 펴 보렴.”
라이는 패를 내려놓았다.
<10, 4>
단풍과 흑싸리. 일명 장사. 족보의 끝 쪽에 위치한 패다. 별 거 아니구만.
“장사네요.”
“장사군요.”
노처녀와 지니가 한 마디씩 했다. 라이는 손가락을 빨고 있을 뿐이었다.
“장사 맞네요.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죠?”
지니가 안경알을 고쳐 쓰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라이미안님께서 이기신 게 되는 겁니다.”
“예!?”
장사는 기껏해야 가보와 육사보다 높은 패지만 광땡을 잡을 수 있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상갓집에서 화투칠 때. 장사(10, 4)는 장사(葬事)와 발음이 같기에 상갓집에서는 최고의 패로 친다. 광땡이고 구땡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잡는다.
“그렇다면 설마 여기가 상갓집이라는 것은 아니겠죠?”
“왜 아니겠습니까, 아이언스 공작님. 상갓집 맞습니다.”
“뭐!?”
이건 말도 안 돼. 분명 이 건 모함이야.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기 하우스 아니었어요? 아니, 무슨 상갓집에서 수십억 대의 도박을 합니까?”
“모이신 분들이 전부 다 한 재산 하시는 분들이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라이는 방긋 웃었다.
“그럼 이게 다 라이 돈이에요?”
“그렇습니다.”
라이는 지폐를 손으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노처녀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4억이나 잃었는데 웃는다는 것은…… 설마…… 나 사기 당한 거야?
“이럴 순 없어!”
난 머리를 부여잡고 절규했다.
[식은땀이 이불 위로 뚝뚝 떨어진다. 온 몸이 축축했다.
꿈인가?
그래. 꿈이군. 꿈이지. 꿈이 아니면 안 돼지. 으윽, 아무리 꿈이라 해도 내가 사기를 당하다니. 사기를 당해 오링(사실 이건 콩글리시다. 정확한 표기로는 올인All In이다. 해석은 전부 꼴아 박았다는 뜻이다) 당하다니.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그것도 노처녀 앞에서 라이한테.
아아! 죽고 싶다. 더 살아서 무엇을 하리. 라이한테도 깨진 몸. 이젠 삶의 낙이 없구나. 나 같은 놈은 죽어야 돼. 나 죽으면 루시아가 슬퍼할까? 노처녀는 기뻐하겠지. 사일런스 지니? 이 놈도 노처녀와 똑 같은 놈이야. 가재는 게 편이라고 지니는 노처녀 편. 사일런스 지니를 믿었던 내가 바보지.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
드르륵-
다시 닫는 소리.
아장아장-
라이의 발걸음 소리.
라이는 걸음도 가볍게 귀엽고 깜찍한 동작으로 나에게 걸어왔다. 손에는 라이코스를 꼭 쥔 채. 라이는 나를 발견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곳에서 뭐하세요?”
저 맑고 순수한 표정. 하지만 저 것은 위선과 가식을 뿐이야. 분명 속에는 거대한 구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겠지. 가증스러운 것 같으니라고.
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라이에게 다가갔다. 난 라이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라이의 뒤쪽으로 갔다. 그러자 라이는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세요?”
“시선은 정면에 위치한 침대를 향하도록.”
라이는 눈을 크게 뜨고 껌뻑거렸지만 일단은 내가 시킨 데로 따랐다. 내 시야에 라이의 동글동글한 뒤통수가 잡힌다. 그 동안 얼마나 이 곳을 때리고 싶었는가? 그 동안 얼마나 참아왔던가? 이젠 참지 않으리.
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쫙 펴 45도 각도로 라이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빠악-!
이 경쾌한 소리. 이 얼마나 맑고 청아한 소리인가? 아! 온 몸의 세포가 찌릿찌릿 반응한다.
라이는 몸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기대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에에엥!”
“왜 때려? 니가 뭔데 때려? 니가 뭔데 우리 착한 라이를 때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라이코스의 발악도 함께 터져 나왔다. 난 라이코스를 옆으로 치우고 라이에게 외쳤다.
“내 그 동안 너를 얼마나 귀여워 해줬는데 니가 감히 날 배신을 해? 감히 니가 노처녀와 짜고 나를 오링시켜?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니가 바로 그 격이구나. 넌 지금 내가 꼴아 박은 현금 2억 때문에 이러는 줄 알겠지만, 그건 아주 작은 이유에 불과해. 내가 열 받은 진짜 이유는 니가 노처녀와 짜고 나를 물 먹였다는 것 때문이야!”
“흑흑, 라이는 물 먹인 적 없어요. 라이는 주스를 더 좋아하는 걸요.”
“시끄러! 너 지금 나랑 말장난 해? 이게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2억이 어느 집 곗돈 이름인 줄 알아? 백날 라이코스 갖다 팔아봐야 2억은 꿈도 못 꿔. 물론 내가 2억이 아까워서 이러는 것은 절대 아니야. 하지만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있지. 어떻게 노처녀와 짜고 내 돈을 싹쓸이 할 수가 있니?”
“흑흑, 라이는 엘프에요.”
“이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너 더 맞고 싶어? 내가 오늘 진단서 끊게 해줄까?”
“우에에에엥!”
라이는 대답 대신 자리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엔 가소롭게 비칠 뿐이었다.
내 돈을 다 따먹은 주제에 울음으로 해결하려 해?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 '아이리스', 박성호 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정도 개그센스 있는 작품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별로 없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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