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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지만 이 감동도 곧 끝이로군요.앱에서 작성

진극한알록달록(211.234) 2024.11.10 06: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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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서랍에서 작은 앰풀 하나를 꺼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 심하게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저 앰풀은 ‘그녀’를 떠오르게 한다.

 그녀는 피를 똑 닮은 물약이 들어 있는 앰풀을 따며 씁쓸하기 그지없는 미소와 함께 읊조리는 것이었다.

 “당신은 모를 거예요, 이 약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알아요.”


 나는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그녀가 그 약을 입속에 털어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잠깐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나는 그런 텔레레이디를 바라보며 내 10대를 함께했던 그녀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의 몸이 엷게 떨리며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저 약을 먹으면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녀가 손가락으로 계속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것으로 텔레마코싱이 끝났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했다. 그 약이 무엇인지 궁금한가?

 그녀가 말했다.

 “몇백 번을 해 봐도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끔찍해. 아, 죄송합니다. 혼잣말이에요.”

 그건 지금까지의 통화 내역을 모조리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약이었다. 

사람들은 텔레마코스를 통해 아주 비밀스러운 통화를 할 때가 많고 그 때문에, 그것을 연결해 주는 텔레레이디들은 기밀 유지를 위해 통화가 끝난 후, 약을 마셔 통화 기억을 머리에서 지워야 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이자벨 님을 봤다는 것도, 내가 동료를 구하기 위해 곧 마키시온 제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모두 망각했으리라. 그때 그녀가 말했다.

 “저어, 저는 지금 기억이 지워져서 당신이 땀투성이로 이곳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까지만 기억하지만요. 당신 참 멋진 사람이네요.”

 “예? 그걸 어떻게 알죠?”

 “이것 보세요, 이 손가락.”

 눈물로 얼룩진 그녀가 왼손을 보여 주며 방긋 웃었다. 그녀는 새끼손가락부터 세 개의 손가락을 굽히고 있었다.

 “그게 무슨 의미죠?”

 “비밀이지만, 저는 기억을 지우는 약을 마시기 전에 이렇게 표시를 해 둬요. 제가 텔레마코싱해 드린 분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면 하나를 굽혀 놓고, 제법 멋진 사람이라면 두 개를 굽혀 놓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면 세 개를 굽혀 놓거든요. 그래서 기억을 잃은 뒤 제 손가락을 보고…… 아아, 내 손가락이 두 개 굽혀 있으니까 이 사람은 멋진 사람이었구나 하고 짐작하는 거예요. 무슨 통화를 했고 이름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제가 통화를 연결해 준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는지는 알고 싶은 거예요. 보세요, 이렇게 당신은 세 개나 굽혀 있으니까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그녀가 약의 후유증으로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왕궁 마구간이 있는 곳을 향해 줄기차게 내달리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예의 텔레레이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녀 역시 텔레레이디였다.

 그녀가 했던 말이 있다.

 “기억을 지우는 약 따위는 없어.”

 그녀 역시 그 약을 몇천 번은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그건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가 아니라, 기억 위에 새카맣게 덧칠을 해서 볼 수 없게 하는 검은 물감이라는 것을.

텔레레이디는 보통 20대에 그만두게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약의 부작용 때문에 그 이상 텔레마코싱을 계속하면 정신이 돌이킬 수 없을 부서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불행하게도 너무 일찍 정신이 붕괴했다. 

아직도 내 몸 구석구석에 그녀의 눈물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아아, 이제 기억이 났다. 그 약의 이름은 므네모시아(Mnemosia), 어원은 ‘소중한 기억’이라고 한다.

S.K.T. 1권 | 김철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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