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량과 문추를 베어 백마 싸움에서의 어려움을 풀어드렸으니 받은 은혜는 이미 보답한 셈이외다. 더구나 오늘의 일은 군명에 따른 것인데, 어찌 사사로운 정으로 공사를 그르칠 수 있겠소이까?”
처음부터 제갈공명에게 다짐을 받고 온 일이라 관우는 여전히 엄한 기색을 지은 채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눈길에는 조조는 물론 한때는 그와 다정하게 지냈던 서황을 비롯한 몇몇 장수의 지치고 초라한 모습에 동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조조가 다시 그런 관우의 무른 마음에 매달리듯 말했다.
“하지만 나의 다섯 관(關)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죽인 일은 잊지는 않으셨을 게요.
그래도 나는 장군을 뒤쫓지 않았는데 그 일은 어쩌시겠소?
무릇 대장부는 신의를 가장 무겁게 여겨야 하는 법이외다. 장군은 『춘추』를 깊이 읽어 밝게 아시면서 어찌 유공지사(庾公之斯)가 자탁유자(子濯孺子)를 쫓던 일은 모르시오?”
자탁유자는 정(鄭)나라의 대부로 활을 매우 잘 쏘았다. 어느 해 군명을 받고 위나라를 치게 되었는데, 위(衛)에서는 대부 유공지사를 보내 막아내게 하였다.
싸움이 불리하게 되어 쫓기면서 자탁유자가 탄식했다.
‘오늘은 내가 병이 나서 활을 들지 못하니 죽는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그를 따르는 종에게 물었다.
‘나를 뒤쫓는 자가 누구냐?’
그 종이 대답했다. ‘유공지사란 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자탁유자는 안심한 듯 말했다. ‘이제 나는 살게 되었다.’
그 종이 이상히 여겨 물었다.
‘유공지사는 위나라에서 활을 가장 잘 쏜다는 사람인데 부자(夫子,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오히려 이제 살게 되었다 하십니까?’
그러자 자탁유자가 대답했다.
‘유공지사는 활쏘기를 윤공지타(尹公之侘)에게서 배웠고, 윤공지타는 나에게서 활쏘기를 배웠다. 그런데 윤공지타는 마음이 바른 사람이니 그가 가까이한 사람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어찌 나를 쏠 수 있겠느냐?’
그때 유공지사가 뒤쫓아와서 자탁유자에게 물었다.
‘부자께서는 왜 활을 들어 맞서지 않으시오?’
‘나는 오늘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가 없소.’
자탁유자가 그렇게 대답하자 유공지사가 말했다.
‘저는 활쏘기를 윤공지타에게서 배웠고 윤공지타는 활쏘기를 부자께 배웠으니 결국 제 활 솜씨도 부자께로부터 온 셈입니다. 차마 그 솜씨로 부자를 도리어 해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일은 임군의 명을 받들고 하는 일이라 또한 감히 어길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화살을 뽑아 쇠테를 풀고 화살촉을 빼낸 뒤 활을 몇 대 쏘고 돌아갔다.
이문열 삼국지 6 , 불타는 적벽, 화용도를 끊기엔 옛 은의 무거워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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