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겨운 시대가 또 있단 말입니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반대로 흐릅니다
시간은 언제든지 녹아내려 시궁창으로 흘러흘러 더럽다못해 토악질나는 삼각지를 이루고
화양연화의 그 빛깔들은 어디로, 그저 회색조의 낡아빠진 산수화가 서로 제 색조를 다투고
활자, 특히 이 자는 어찌나 겸손을 모르던지, 가장 조용해야 할 도서관에서도 온갖 시체의 적막으로 귓청이 터져나갈 지경입니다

정말이지, 나는 시대에 질려버렸습니다

이 지나친 피로, 이 지나친 시련, 아아, 그 시인과의 교감이 이토록 안타까운 방식의 일환이 되어서야
절망을 더욱 가하는 것은 이 시대에 금잔화를 파는 곳도 없고, 살구나무도 없고, 하다 못해 늙은 의사도 없는 노릇에
아아, 절망입니다, 질려버렸습니다

동포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논리의 칼날로 어찌 해부당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흔해빠진 격언입니다
그러나 가증스런 反知識인, 혹은 半知識인으로서 덧붙이는 부록은,
상식, 그것은 못쓰게 된 부분을 도려 내시고, 이곳저곳을 칼질하다가, 단 한 티끌만 남는다해도, 갈갈 찢어 모닥불의 사료로나 쓰이게 하라는 말입니다
이 불안한 시대에 상식은 헛간의 성냥인 듯 싶고, 담배 태울 작은 불씨는 그 주인을 연료로 삼아 회광반조의 이르리니
동포들이여, 슬픈 마음에도 나는 떠날 것입니다,

부디 한 명의 몫을 나누어 져주십시오, 여러분들이 나누어 진다면,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토록, 정말이지, 이제 나는 다섯 글자밖에 쓸 힘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