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태산같은데 오늘도 어김없이 미루고 어영부던 인터넷으로 도피하던 와중

딸치고 홀애비냄새 뺄려고 창문 여니까 거미 한 마리가 보임.

작년 이맘때가 생각이 남 

그때도 거미가 한 마리가 방충망 틀에 몸을 뉘고 있었는데

내 엄지손톱 안에 다리까지 다 들어올 정도로 작은 애였음. 

어쩌다가 여기까지 들어온 지는 모르겠어서 휴지 한 칸으로 가볍게 잡고 그대로 포개서 집 밖으로 나감. 

애가 지 죽음을 직감한건지 앨리베이터 안에서도 가만히 있더라.

1층 도착해서 부슬비 조금씩 내리는걸 머금곤 집 앞 화단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음

휴지 펴서 아카시아 잎 위에 올려줬는데 애가 잘 안 가더라

그렇게 1분정도 있으니까 정신차린건지 호다닥 풀숲으로 사라짐.

지금 거미도 그때처럼 보내줄려고 했는데 한 마리가 더 튀어나옴. 

이건 예상밖이었을 뿐더러 오늘 밀린 일을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밤을 새야 할 것이 분명함.

에프킬라 칙

두 마리가 꿈틀 꿈틀거리는걸 십여초간 바라보며 작년 그 거미는 지금쯤 죽었을까 

죽더라도 생명을 잉태하여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을까 곱씹어봄

더 고통받기 전에 휴지로 감싸 관을 만들었음

오늘 밤은 내가 이유없이 죽인 생명만큼이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