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테제 - 호소문
우선 5월 25일, 제12보병사단에서 살해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5등 시민이자 머저리(MZ) 세대로 핍박 받는 10대, 20대, 30대 동지들께 호소하고자 이렇게 호소문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저는 훈련병이 근육이 녹을 정도로 고문 당한 후 살해되었다는 비보를 접했을 때, 매우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가해 중대장에게 심리상담을 배정하여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하려는 군의 시도라든지, 경찰에 어떤 혐의를 특정하여 입건하였냐는 언론의 질의에도 원론적인 대답을 하며 회피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러한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은 울분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는 해당 사건을 주시하고 계신 우리 동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지 여러분, 제가 왜 여러분을 선뜻 동지라 부르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어찌보면 ‘동지’라 함은 구시대를 풍미했던, 현대사회에서는 잊혀져가는 단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편화되고 고립된 개인’의 시대인 오늘, 저는 여러분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정신은 바로 ‘동지의 정신’이며, 이렇게 도래할 시대는 ‘연대의 시대’라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새 시대의 장을 함께 열게 될 우리는 모두 ‘뜻을 함께하는’ 동지인 것입니다.
지난 세월, 파편화되고 고립된 개인은 체제 앞에서 무력하며 언제든지 불의와 부조리의 희생양이 되고, 더 나아가 공공의 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흔히들 냉소적으로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러한 각자도생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번 훈련병 살인사건은 ‘내가 죽지 않았으니 다행인 사건’일 뿐입니다.
삶의 의미가 정녕 오로지 ‘나의 생존과 이익’을 중점으로 성립한다면, 이번 사건에 대해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국가의 부름을 받고 복무하던 중 고문으로 사망한 대학생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안타깝지 않습니까?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비통하고 참담하지 않습니까? 책임자들이 책임지지 않고 정의란 잊혀진지 오래인 이 세태에 대해 울분이 터지지 않습니까?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 목표가 ‘나의 생존과 이익’뿐이고, 이러한 삶이 전부라면 왜 우리는 이 비보를 접하고 가슴 속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겠습니까?
함께 연대하여 강철같은 통일전선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은 끝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버려진 세대입니다.
이미 언론과 매체의 십자포화 선전으로 인해 우리는 순식간에 ‘폐급 세대, 대책 없는 세대, 버릇없는 세대, 욕심만 많은 세대’가 됐습니다.
우리는 중소기업의 이익을 위해 무차별로 수입되는 외국인 노동자와 임금 경쟁하며 미래란 생각도, 계획도 할 수 없는 도시빈민 하루살이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의 지배권력인 민주화를 이룩하신 위대한 ‘민주화 세대’이자 지혜로운 ‘선배 시민’의 결정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내전 상태에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정부를 비롯한 정계, 학계, 언론, 시민사회, 즉 ‘대한민국 체제’가 우리를 핍박하고 증오하는데 시위가 어떤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여유롭게 구호나 외치고 플랜카드나 흔들며 질서정연하게 길거리를 왔다 갔다 하며 산책하는 것이 시위라면, 어떻게 체제에 맞서 불의를 고발하고 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 정부는 귀를 막고 시위대가 자진 해산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시위의 전부라면 현 상황에서 시위는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실로 시위의 위력은 ‘언제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폭도로 돌변하여 정부기관을 점거하거나 도심을 불태울 수 있는 젊은 남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체제를 성토한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또 분노한 젊은 남성들이 한자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를 재확인하여 공통된 전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시위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평화시위만이 ‘좋은 시위’고, 폭력이 동원되는 순간 그 시위는 ‘나쁜 시위’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지 여러분,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굶주린 시민들이 평화롭게 길거리를 왔다 갔다 산보하며 구호나 외쳤습니까?
인류 역사상 핍박 받고 멸시 받던 자들이 스스로 권리와 존엄을 쟁취할 때는, 서로 연대하여 하나된 마음으로 피를 흘리며 싸웠기에 가능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앞으로 체제가 우리의 숨통을 쉼없이 조여옴에 따라 우리는 미래에 이번 훈련병 살인사건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기억하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불의에 맞서 투쟁하지 않고 침묵한다면, 살해된 훈련병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길거리로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든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을 겁니다.
지금도 ‘왜 아무도 시위를 하지 않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또 ‘시위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애초에 시위에 대해 논하는 이유도 사실 우리는 지금 길거리로 나가 투쟁을 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일 겁니다.
이번 훈련병 살인사건은 국가의 부름을 받은 한 대학생이 자격 미달, 함량 미달의 여군 중대장에게 고문 당해 유명을 달리한 사건입니다.
남성만 징병되는 군대에 여성은 장교로 복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함량 미달의 여군 중대장이 무고한 훈련병을 살해한 이번 사건은, 이러한 자가 장교로 임관되도록 방치한, 중대장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국군 체계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번 훈련병 사건은
1. ’업무상과실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야 하며,
2. 경찰은 혐의를 받는 여군 중대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여야 하고,
3. 사법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인지하여 청구된 구속영장을 인용하여 피의자가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4. 국군 체계의 문제이기에 사단의 최고책임자인 조우제 사단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할 것이며,
5. 사건이 발생한 12사단 을지신병교육대대의 문보승 신병교육대대장 역시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6.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앞으로도 남성만 징병되는 군대에 여성이 장교로 복무하며 평시든 전시든 명령하는 체제가 옳은지’에 대해 입장표명을 하고, 해당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여러분의 연대를 호소합니다. 한날 한시에 한자리에 모여 뜻을 모으고 한 목소리를 냅시다. 동지가 동지를 위하고 형제가 형제를 위하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합시다.
고인의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길거리로 나섭시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짐은 개의치 않으나
힘 다하지 않고 꺾이는 것은 거부한다.”
2024.05.30.
국 민 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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