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요네즈켄시 인터뷰 (메모용글 클릭ㄴ)앱에서 작성

만갤러(119.71) 2024.04.29 15:43:30
조회 169 추천 0 댓글 1

일본어 - 영어- 한국어로 재차 번역된 것이므로 내용이나 느낌이 원본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애매 모호한 것은 재량껏 의역 하였습니다. 괄호 안의 글들은 저의 의역/주석.
요네즈 켄시 / 하치 - 브레멘 락킹 온 재팬, 2015년 11월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자폐증과 함께한 성장과정, 밴드활동 좌절, 보카로이드 시절, 그리고 기나긴 좌절의 터널 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 까지
아마도 요네즈 켄시가 이 1만자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해주기로 동의한 것은 최신 앨범 브레멘 을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아슬아슬 암울한 인생을 살아오다가 비로서야 어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 하여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엄청안 재능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게 때문에 요네즈 켄시는 그 재능을 분출할 방도를 찾기 위해 오랜기간 방황해 왔다. 물론 그가 아직 24살 밖에 되지 않긴 했지만 말이다. 브레멘은 넘쳐나는 자신 감으로 그가 내딛은 첫번째 발걸음이다.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웃자”고 전력질주하는 느낌으로 노래하는 첫번째 곡 “언빌리버즈” 부터, “너를 언제나 사랑할 것을 확신해” 라고 노래하는 마지막 곡 이자 러브송인 “블루 자스민”의 강력한 마지막 소절까지, 이 앨범은 삷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와 대중에게 널 리 퍼질 팝 어필이 충만하다. 예술가 요네즈 켄시의 거대한 탤런트, 인간 요네즈 켄시의 심장과 영혼은 서로 정 확하게 맞아 떨어져 (이 앨범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기가 막히도록 훌륭한 앨범이다.
지금 이러한 위치에 서있기 때문에, 요네즈 켄시는 이 인터뷰에서 그의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좀 더 명확히 말 하자면, 이것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의 1만자 인터뷰이되, 그가 해주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요네 즈 켄시는 왜 요네즈 켄시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은 명확해 질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기나긴 터널을 통 해, 브레멘에서 부르는 노래와 함께 그가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분명해 질 것이다. 우리는 그 가우리에게 털어놓아준과거와함께,언제나요네즈켄시가향해나가는미래를함께주시할것이다.
-우선, 언제 어디서 태어 났나요? -1991년 도쿠시마 현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쿠시마 현 어디요?
-도쿠시마 시. 그냥 도쿠시마라고 하지만, 도쿠시마 시를 말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나요? 그리고 어떤 가정이었나요?
-지금 이 시점에서 되돌아 보면, 정서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열악한 가정환경이었어요. 아버지와는 거의 대화 를 하지 않았어요. 쉽게 이렇게 생각해 보실 수 있겠네요. 24년 인생을 통털어 아버지와 대화한 시간을 쥐어 짜 내면 아마 한시간 정도 될걸요.
-저런.

 -아버지가 어디서 일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거기서 무얼 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몰 았어요. 지금도 몰라요.
-아버지는 집에 거의 없었나요?
-아니요, 있었어요. 그런데 그냥 나이 많은 친척이나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같았어요. 아버지도 저에게 말을 걸 지 않았고, 저도 마찬가지 였어요. 그래서 서로 교류가 없었어요. 정말 이상했지요. 그래서 말을 걸기가 힘들었 어요.
-이상한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정상적인 아버지였나요?
-물론 정상이긴 했을테죠. 하지만 정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정상이었는지 이상한 사람이었는지도 딱히 말 못하겠어요.
-어머니는 어땠나요?
-아버지에 비하면 친절한 편이었어요. 아마 제가 그림을 좋아했던 것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어머니도 한때 미술 학교를 다녔고, 미술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는 허가증도 가지고 있었어요. 정 말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요. 자세한건 모르지만 집에 있을 때 부업으로 전단지제작 같은걸 했어요. 그 모습을 뒤에서부터 바라보던 장면이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리고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을 아주 좋아했어요. 자주 가곤 했죠. 그래서 아버지 쪽 보다는 어머니 쪽 가족을 더 잘 알게 됬던것 같아요.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누나하고 항상 싸웠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부터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하찮은 일들로 싸웠죠. 누나가 “도 시락 박스가 남들것과 다르잖아” 라면서 불평을 시작한다던지 해서... 매일 매일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어요. 저 로서는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도대체 이 집은 뭐가 잘못된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일이년이 지난 후부 터는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또, 어머니와 누나가 사이좋게 지낼 때는 무지 사이가 좋았어요. 그만큼 가까우니까 많이 싸웠던 거겠죠. 아버지하 고도 마찮가지 였어요. 엄마 아빠 누나 셋이서는 꽤 잘 어우러졌어요.
-앗 진짜요?
-네, 어쩐지 저만 항상 따로였어요. 밥은 함께 먹었지만 무슨 이야기든 항상 저를 피해 진행 되었어요. (일부러 그 자리가 싫어서) 이야기를 피한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과 싸운 적도 없어요. 왜냐하면 아예 얘기를 안했으니까요. 저는 그냥 (있는듯 마는듯한) 공기같은 존재였어요. 그래서 가끔 내 자신이 여기 있든 없든 상관이나 있을까 싶었죠. 내 자신이 속한 곳이 과 연 어디일까 곧잘 생각해보곤 했어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다른이들과 교류하지 않았나요? 어땠나요?
-친구들이랑 노는 건 정말 좋아했어요. 그게 (제가 부족하게 느끼는) 다른 많은 것들을 대체해 주었어요. 심지어 친구들과는 말도 많이 했어요. 별거 아닌 일로도 많이 웃었어요. 하지만 집에 오면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거 의 그랬어요.

 -어떤 친구들이 었나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냥 조용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었어요. 오랫동안 저는 제 외모를 싫 어했는데 거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유치원 다닐 때 술레잡기 같은걸 하는데 앞을 안보고 술 레로 부터 도망 치다가 앞을 돌아보는 순간 누군가에게 부딪혔어요. 그로인해 입술이 다쳤죠. 지금도 그 부분이 좀 부어 보여요.

-그렇네요.
-손으로 입술을 감싸안은 다음 손을 봤을 때 온통 피로 덮여 있었어요. “아, 뭔가 완전 잘못됬다” 라고 생각했 죠. 그리고 사람들이 저를 병원으로 급히 데리고 가서 응급조치를 했어요. 당일 유치원으로 돌아와서 다른 아이 들 앞에 섰을 때 모두 저를 이상한 눈으로 경계하듯 쳐다봤어요. 마치 무언가 더러운 것을 대하듯이. 그 장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그리고 생각했죠. 앞으로 나는 정상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되었다. 무 언가 끔직한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등등의 생각을 했어요. 대수롭지 않은 상처였는데, 심각한 문제로 받았들였 던 것 같아요. 나는 이제 괴물이다.. 라는 따위의 생각.
-그당시부터 예외적으로 민감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군요. 그래서 그 순간,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에서 떨어져나 왔다고 그낀건가요?
-네, 그리고 제 이름도요. 요네즈 켄시는 드문 이름이잖아요.
-하지만 멋진 이름이잖아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이들이 “그거 멋진 이름이네”라고 하기 보단 “이름이 뭐 그래?”라고 했어요. 놀림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제 이름을 정말 싫어하게 됬어요.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몸도 너무 컸어요. 위아래로 늘려 놓은 것처럼. 보통 애기들은 태어날 때 3키로 아닌가요? 저는 4.5키로 였어요.
-우와
-그리고 몸의 형태도 실제로 이상했어요. 사람들은 “쟤, 엘리펀트맨 아니야?” 라는 따위의 말을 했어요. 무슨 장애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하면서요. (사람들이 그런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태어났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른거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어요.
-남들과 다른 아이라는 의식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가면서도 더욱 커져갔나요? -네
그럼 그런 의식이 굳혀진 후 요네즈 켄시는 어떤 아이이었나요?
-어디보자.. 5학년 때 처음으로 제 컴퓨터를 갖게 되었어요.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연결이 되어있었는데 엄청 빠져 들었죠. Kirby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어요. 팬 싸이트에 멧세지도 많이 남겼어요. 인터넷에는 제가 좋아하 는 것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가 비로소 내가 속할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 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후반 부터는 학교생활이 심하게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스스로가 바보같다고 느껴졌어요. 다른 아이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마치 외국인들 사이에 혼자 일본인인 것처럼 느껴졌 어요. 반 아이들이 평범한 일상 얘기를 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어요. 그냥 막연히 “어, 그래”라는 따

 위의 말만 하고 미소 짓곤 했죠. 그러면서 저는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 질 수 없다는 것을 점차 깨닳았어요. 그리 고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는 의식은 더욱 깊어져갔어요.
-그래도 학교에서 뭐 재밌는 일이 전혀 없었나요?
-학교 가는 걸 정말 싫어 했어요. 공부하는 것도 싫었어요. 친구들도 별로 없었구요. 정말 싫었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게 되었나요? 그당시 무슨 생 각을 했는지 기억하나요?
-남들과 관계를 갖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학우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머리 속에서 대 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아직도 거기에 있어요. 제 안의 가상 공간 안에, 말하자면 마을..이랄까. 그들에게 습관처럼 얘기하곤 했어요. 그 가상인물들이 저에게는 친구 였어 요. 의지할 수 있는 일종의 근본을 제공해 주었다고 할까요.
-그 (가상의) 세계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행동 했나요?
-가만 보자.. 그냥 평범함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저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 요. 평범하지 않음으로 인해 고통이 따른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가상의 인물들과 함께 평범하게 얘기 나누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또 별것도 아닌것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관계 (를 가짐으로 해서 어려움 을 극복했어요) 저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공유하고 함께 즐거워 하며 자연스레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열망 했 으니까요. 그냥 평범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곳은 그저 제 머리 속 뿐이었어요.
-그래서 그 (가상의) 곳에서는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군요. -네, 그랬어요.
-그래도 중고등학교 부터는 사회의 일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되지 않았나요? -네
-그때부터 생활이 더 힘들어졌겠네요.
-네, 점점 힘들어 졌어요, 외국인들 사이에 혼자 일본인이라는 느낌은 그 이후 오랫동안 계속 됬어요. 감당하고 해결할 방법을 잘 찾지 못했죠. 누군가 “요네즈는 항상 어.. 라고 똑같은 말밖에 않해” 라는 말을 했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요.
-그게 당신에게는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극복하는 수단이었을텐데 (그런 지적을 받았으니 난감 했겠네요)
-네,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냥 “어, 정말?”하는 정 도로만 받아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싶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좀 심하다 싶을 수 있겠지만, 상당히 비참한 상황이었네요. [웃음]
-네, 심각했어요. 남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또 어떻게 반응해야 상대방이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저에게는 없었어요. 특히 일상생활에서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가 건네져 오면 정말 단 한마디도 하 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반응하기 위해 무언가 말을 내뱉어내야 했죠.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어요.

 저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봤을 때 저는 제 자신이 정말 엄청난 바보임이 틀림 없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스무살이 갓 넘었을 때 고기능 자폐라는 진단을 받았어 요. 그래서 차차 (제 자신의 상황을) 납득하기 시작 했죠.
-그때까지는 스스로를 묘사할 수 없는 괴물정도로만 느꼈을 텐데, 그것에 대해 이름(진단)을 부여 받았군요. -(제가 겪었던) 모든 것에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해 주었어요.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며 고독한 (현실과 가상의?) 이중생활을 해오다가 현실세 계에 적응하기 위해 방향을 바꾼 계기가 있었나요?
-현실세계요?
-수동적으로 그냥 버텨오다가 스스로(의지로) 한걸음 (현실세계로) 내딛은 것은 좀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 아닌가요?

-“사회 적응”이라는 의미에서 말씀하시는거라면 잘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했어요. 아마 그게 (그당시) 저에게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처음이자 가장 큰 시도였던 것 같아요. 제가 옳다고 느 끼는 것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왜 밴드활동을 하게 됬나요? 어떤 상황이었나요?
-그 당시 인기있는 정통 일본밴드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범프 오브 치킨, 에이시언 쿵푸 제너레이션, 스피츠 같 은..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이 아마도 밴드를 시작하게 한 동기였던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과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에 마사무네, 후지와라처럼 단어들을 한번에 내 뱉을 수 있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할거라생각한건가요?
-그렇다고 봐야겠네요. 어떤 말로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이 노래 좋 네, 저사람 노래 멋지네, 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됬고 그게 결국 기타를 사도록 만들었어요. 2만 엔 정도하는 싼걸로. 그리고 같은 클럽에 있는 아이에게.. 같이 밴드 할래?.. 하고 물어봤어요. [웃음] 그게 제가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해 본 첫번째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잘 됐나요?
-절내 아니요. [웃음] 처음에는 친한 사람들만 데리고 왔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게, 기타 플레이어한테 “밴 드 하자” 했더니 “돈 벌수 있어?” 하길래, “성공하면 응, 돈 벌수 있지”라고 대답했죠. [웃음]
-[읏음] 순수했네요.
-그 다음엔 여기 저기 아는 사람들한테 “너는 드럼 치게 생겼으니까 드럼 하자” [웃음] 라고 하면서 돌아다녔어 요. 결국에는 잘 안됬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그 때를 떠올리면서 “ 만약 잘 됬으면 어떻게 됬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뜬금없이 한밤중에요.

 -그때가 재밌었던거군요. -정말 좋을 때였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나요? 좀 뻔하고 단순한 중학교 밴드였나요?
-바로 그거네요. [웃음] 일주일에 세네번 만나서 연습한답시고 그냥 놀았어요. 학교 끝나고도 만나서 장난치고 놀았어요. 그 전형적인 장난 있잖아요. 누가 문 열고 들어오면 위에서 양동이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따위의.. 그 런거 고안하고 그랬어요. [웃음]
-[웃음] 그거는 밴드 활동이 아니잖아요! -하하, 그래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네요. “밴드를 하자”라는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남들과 친하게 지내고 재 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거라는.
-그랬다고도 할 수 있네요. 원래 밴드를 시작하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만든 곡을 연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요.
-정말요? 그냥 에이시언 쿵푸나 범프 오브 치킨 카피하는 밴드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요?
-카피도 했어요. 근제 제일 먼저 하려고 했던거는 직접 만든 곡들이었어요. 코드 두세게 알면 노래를 만들 수 있 잖아요. 중학교 축제에서 저희가 오리지널 송 연주한 첫번째 밴드였어요.
-어떤 노래였나요?
-어떤 노래라.. 그게 정말 엄밀히 노래였다고 부르기도 뭐하네요. 그래도 좋은 노래였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목이 뭐였나요?
-“그림의 노래”라고 제목을 지었어요. 우리 연주 실력은 형편 없었어요. 그래도 멜로디나 가사를 들으면 “어, 괜 찮네”라고 생각하게끔 했죠. 그래서 밴드 자체는 잘 안됬지만, 그런 노래들을 만들고 밴드로서 함께 연주하고 그런 경험을 남길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재미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꿈을 많이 꾸어 요. 꿈에서 깨면 그때처럼 재미있게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라는 생각과 함 께 우울해 져요. [웃음]
-[웃음] (나이가 들면 그런 생각 하는거) 어쩔 수 없죠. 그 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모두 다른 고등학교로 갈라졌어요. 그래서 밴드에 대한 정렬도 흐지부지 되었죠. 일년에 두세번 콘서트 했는 데.. 뭐 의무감으로 했던 건 아니었지만 다들 딱히 밴드 활동에 마음이 없었어요.
-밴드 이름이 뭐였나요?
-꼭 말해야 하나요? [웃음] Ofrogue였어요. 그당시 빠져 있던 온라인 게임 중에 무지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있 었는데 그걸 무기에다 적용하면 파워가 올라갔어요. 근제 정말 구하기 힘들어서 어떤 적을 물리쳤을 때 0.02% 확률로만 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카드 수집가가 되었군요.
-맞아요. 그 카드 이름이 “Rogue의 어쩌구’였어요. (아마 이름이 생각 않났던 모양) 어떻게든 그 이름을 원했기 때문에 그런 싸구려 이름으로 결론 내린거예요. [웃음]
-감사합니다. [웃음]
-[웃음] 이렇게 까지 얘기했어야 했나요?
-아니예요. 훌륭해요 (이름이 훌륭했다는 건지, 그런 이름을 지은 배경 이야기가 훌륭했다는 건지 약간 모호) -아하하하
-밴드는 당신에게 정말 중요했던 거 같아요. 성과는 둘째치고 당신을 변화시켰잖아요. -맞아요. 그때 히로시 나카지마도 있었어요. 지금 저를 (밴드 멤버로서) 도와주는.
-그도 Ofrogue의 전 멤버였나요? -맞아요, 맞아요.
-아 그 Ofrogue 말씀이시군요. -[웃음] 아 그만하죠.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나요? 이미 재밌는 경험을 해봤으니, 아 이제 별거 없네.. 했나요?
-무지 힘들었어요. 학교에 잘 가지도 않았어요. 연필통에 여태가지 몇번 띵겼는지 표시해놓고 “앞으로 몇번 더 띵길수 있겠구나” 계산하곤 했어요. 그래서 공부도 안하고, 항상 음악만 만들었어요.
-집에서요?
-네.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중에는 노트북에 가사를 썼어요.
-그래서 음악을 만들면서 무엇을 발견했나요? 밴드를 시작하면서 바로 음악도 만들기 시작 했는데, 음악을 만 드는 것이 (밴드보다) 더 중요했죠?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우러러 보는 것은 밴드들이었기에 밴드 결성이 먼저 이루어졌지만, 진짜 목적 은 무언가 만드는 것이었어요 - 노래 만들고, 가사 쓰고, 멜로디 가져다 붙이고, 코드도 집어넣고.. 그런것들이 가장 중요했어요. 그래서 콘서트도 딱히 즐기지 않았던 거예요. 제 보컬 톤이나 역량 부족도 문제였고요. 근데 그때는 제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아서? 혹은 노래를 안불러 봐서?) 제가 뭘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거예요. 그래서항상(제가할수있는것에대해)의구심이있었어요.그러다가고2인가고3때,니코니 코 동화를 발견했고, 화일을 업로드하면 사람들이 그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 음악이 그냥 (집에서) 혼자 만든 음악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밴드 없이) 혼자 모든걸 다 했어요.

-타이밍이 좋았네요. 그때 그걸 몰랐으면 아무리 음악 만드는 것이 좋아도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꽤 힘들었을 테니까요.

 -네. 2학년 즈음에 밴드는 해체 됐어요. 그래도 나카지마는 저에게 “No” 라고 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와 직접 확인해 본적은 없지만, 제 음악이 좋아서 저와 함께 했다기 보다, 단순히 저에게 한번도 “No” 라고 한 적이 없었어요. 제가 어떤 제의를 하던간에요. 다른 멤버들은 뚜렷히 추구하는 방향이 있어서 그냥 떠났어 요.베이시스트는고등학교가자마자비주얼카이(화장진하게하고음악하는장르?)에눈을떠서 그런류의음 악을 하기 위해 떠났고, 밴드 결성을 함께했던 기타리스트도 다른 류의 음악을 하기 위해 떠났고, 드러머는 입 시준비 학교에 가서 럭비를 했어요. 그렇게 다들 떠났을때 나카지마는 (저와 함께) 남아주었어요. 그 후, 기타 파 트 필요한 노래가 있으면 나카지마에게 부탁해서 녹음하고 니코니코 동화에 올렸어요. 그런 식으로 한동안 함 께 했어요.
-그 시점에서는 이제 그냥 이름뿐인 밴드였네요. 제 말이 맞아요? 약간 불분명한것은, 그때 노래를 만들면서 훗 날 밴드에서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었나요?
-맞아요. 밴드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사카로 떠났어요. 도시로 최대한 가깝게 가면 거기에서 밴드 멤버들 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 했어요.
-그건 니코니코 동화에 투고하기 시작한 이후인가요? -네
-곡을 투고해보고 나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그냥 아무일 없었나요?
-조회수 4천 정도 받았어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고 해주었어요. 그리고 몇사람은 제 블로그 에 와서 제 노래가 좋다고 코멘트 달아주어서 메세지 주고 받았어요. 그게 다예요. 그냥 별 일도 아니었네요.
-하지만 밴드도 해체되고, 고등학교 생활도 즐겁지 않던 상황에서 자신이 만든 곡에 대해 그런 반응을 얻고 지 지를 받는 것은 꽤...
-아, 네, 물론 너무 좋았죠. (곡을 만드는 것이) 제가 했던 전부였어요. 하루에 15시간씩 곡을 만들곤 했어요. 한 달에 세곡씩 투고해 가면서요. 기본적으로 곡 쓰는 것 외에 하는 것이라곤, 먹는 것과 자는 것 뿐이었어요. 아마 부모님들이 꽤나 심란해 했을 거예요.
-그러게요.
-저와 상의도 없이 개인강사를 붙여주기도 했어요.
-왜요? 학교를 가지 않아서요?
-[웃음] 그분께 “그냥 가세요. 그리고 다신 오지 마세요.” 했어요.
-전형적인 삐딱한 고등학생이었네요. 하지만 그전부터 “여기가(인터넷과 니코니코??) 내가 있을 곳이야. 그러니 까 괜찮아. (내버려둬)”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네, 중고등학교때 아마 좀 기고만장 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했죠. 훌륭한 음악들을 아무것도 아닌양 쉽게 만들어낸다고요. 언젠가 제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저같은 사람은 세상으로 빨리 나가야 된다고 믿으면서 쉴새 없이 음악을 만들었어요. 부모님에게도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괜찮을 거예요. 음악도 만들수 있고, 그림도 그릴수 있어. 밥줄 걱정은 평생 안할거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

 어.” ...네, 맞습니다. 완전 바보였죠. “나는 재능이 많아. 이게 내가 필요한 전부야”라는 미스테리한 자신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질주했어요. 그래서 지금 가끔 그때를 생각해보면 약간 무서워요. 아찔해요. [웃음]
-[웃음] 그렇네요. 그래서 언젠가 직업을 구한다던지 일반적안 사회생활을 한다던지 하는 것은 전혀 고려해 보 지 않았나요?
-직장을 다닐 계획은 단 일도 없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떻게든 오사카로 떠나는 것이 었어요. 그래서 오사카에 있는 미술 학교에 지원을 했는데,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다 받아주는 곳이었어요.
-부모님은 “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그런식이었나요?
-아마 제가 터무니 없는 꿈을 꾼다고 생각했겠죠. 그들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미술학교를 다니고 선생님 자격증까지 얻었지만 도쿠시마로 돌아와서 그냥 일반 회사를 다녔어요. 그래서 아마 저를 더 잘 이해해 주었을거예요. “네가 하고 싶으면 가서 해봐”라고 말해주었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아버지와는 당연히 그런 대화가 전혀 없었겠군요? (서로 냉랭한 관계를 고려해 봤을 때) -전혀 없었죠 [웃음]
-하하하, 어쩌면 아버지는 정말 현명해서 이미 큰 그림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전혀 알 수 없죠. 제가 12살때쯤, 외조부모님 집에 갈때 아버지도 함께 가곤 했어요. 거기에는 다른 친척들도 있었는데 밤에 술을 마시면서 아버지가 이야기 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어봤어요. 물론 저한테 얘기하는 건 아니 었지만.
-[웃음] 그 정도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나요?
-분명 말은 친척들한테 하고 있었는데 왠지 저에게 하는 이야기로 들려졌어요. 원래 선원이 되고 싶었는데 망 막 분리증 때문에 시력이 나빠져서 배에 오를 수 없었던 이야기 라던가, 직장 인터뷰 볼때 계속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어서 합격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요.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사람일 수 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최소한 내가 생각한 만큼 구제불능은 아니라고.

분명히 당신에게 간접적으로 얘기하는 거였다고 보여지네요. -아버지를 싫어하는건 아니예요. 그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당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의식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에 대한 의식보다 좀 더 강하고 유별 난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그럴지도요.
-그래서 밴드를 결성하겠다는 희망으로 오사카를 향한 후 어떻게 되었나요?
-오사카에 있는 학교에서 밴드 비스무리 한것을 하긴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근데 그무렵 어차피 보카로이드에 몰두하고 있어서 (상관 없었죠). 보카로이드에 너무 광적이었던 나머지 데이트 하던 여자친구도 소홀히 했어요. “쥐었다 폈다 나찰과 송장”을 투고 했을 때 “우와, 이거 진짜 뜨고 있잖아” 하는 순간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 어요. [웃음]

 -여자친구로서는 자포자기 했겠죠.
-곡이 뜨니까 저는 행복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노 프라블럼” 하고 (헤어졌죠). 나중에 조금 후회하긴 했지만요. [웃음]
-그냥 철저하게 그 당시에만 몰두했던건가요? 미래에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싶다는 의식(이나 계획) 없이? -맞아요. 내가 만든 곡이 그렇게 많이 퍼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린다는 게 무척 신기 했어요.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기만하고 있었죠. “아, 당연하지.”하면서요. 그렇게 그냥 그런 분위기 타고 2-3년 동안 (음악 만드는 것 외에는) 다른건 아무것도 안했어요.
-(그런 상태로 지내기에는) 꽤 긴 시간인데, 좋은 점도 있었겠지만 부정적인 면은 없었나요?
-후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좋게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시야가(관점이) 좁혀져 갔다고. 아니 그냥 처음부터 좁았는지도. 니코니코 동화라는 세계는 저에게 전부 였어요. 그곳에서 나왔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모 든 정보와 방법론은 저에게 전부 였어요. 그래서 오직 그런 측면에 맞추어서 (오직 니코니코 동화를 위해) 무엇을 만들까 밖에 생각을 안했어요. 다시 말해, 엄청나게 집중은 할 수 있었지만 시야의 범위가 점점 작아졌어요.
-그렇지만 그 당시 그 세계는(그렇게 집중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았나요?
-맞아요. 주위를 둘러보면 보카로이드는 오타쿠다..라는 선입견 같은게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왜 들어옴

벌레컷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지금 결혼하면 스타 하객 많이 올 것 같은 '인맥왕' 스타는? 운영자 24/10/28 - -
2450697 부산 사는 만붕이 있냐? [7] 벚꽃축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54 0
2450694 아기 아빠한테 그냥 말해버리고 그냥 뒤져버릴까... ㅇㅇ(118.235) 06.27 39 0
2450693 우우 만삐 또 출근해 저그런사람아니에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25 0
2450692 이렇게 보니까 봇치가 캐릭터를 아주 잘뽑았구나 [2] 만갤러(222.114) 06.27 35 0
2450691 띵동~~누구세요? 슬로우왜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23 0
2450690 동의보감에도 실린 보추의 효능....txt [1] ㅇㅇ(175.201) 06.27 66 0
2450688 7시잉데 아직도 환하네 머잊ㄷㄷㄷㄷㄷ pond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29 0
2450687 요즘 만화를 얕보는 녀석들이 너무 많다 [3] 어니부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60 0
2450686 걸밴크 빠는 애들 봇치 빠는 애들 다 같은 놈들인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73 0
2450683 뉴럴클라우드 콜라보 개잘했네 시키와시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40 0
2450681 편의점 다녀왔는데 킹받네 ㅇㅇ(211.176) 06.27 32 0
2450680 주술회전 도대체 언제 나오는데 [3] 순수파인애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152 0
2450679 카페에서의 빙수의 딜레마 [2] 토시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52 2
2450678 ㄴ애미의 눈물이 보이면 개추.... [1] ㅇㅇ(221.140) 06.27 31 0
2450677 니지카 줍짤...jpg [1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169 0
2450676 흑인 버튜버 피지컬 에밀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56 0
2450675 스파팸 남주로 살면 피곤할듯 [2] 만갤러(119.194) 06.27 48 0
2450674 안베의 진심 만력 [9] 자이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71 0
2450672 데즈카는 이때도 도망다니고있었구나 ㅇㅇ(118.32) 06.27 35 1
2450671 '서..서방님.. 저녁 내왔어요..' [10] ㅇㅇ(116.212) 06.27 232 5
2450670 조센징<<독립 왜 했노 대체 [4] ㅇㅇ(106.101) 06.27 63 0
2450669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이즈츠미.jpg [2] ㅇㅇ(118.235) 06.27 93 0
2450668 퇴근하고 갑자기 한쪽눈이 10분정도 안보엿는데 [10] ㅇㅇ(223.39) 06.27 116 0
2450667 상담사 누나도 만빙이 같은 나쁜 아이는 싫어하겟지 ㅇㅇ(163.152) 06.27 40 0
2450666 노인들 상대하는 직업이 존나 빡센거같음 [4] ㅇㅇ(112.150) 06.27 54 0
2450665 나 밥 차려줄 사람? [1] 벚꽃축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43 0
2450664 최근 원피스 만력 떡상했다고 빠는 놈들 저능아 같더라 [1] 만갤러(121.133) 06.27 59 2
2450663 살왜안빠지는것임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34 0
2450662 걸밴 2기 걍 쫑났노 [3] ㅇㅇ(39.7) 06.27 111 0
2450661 의외로 암컷타락을 하지 않은놈 [1] ㅇㅇ(49.175) 06.27 79 0
2450658 자바리를 자바머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51 0
2450657 오늘의 우메모모도 컵꿀잼!! ㅋㅋㅋㅋ [10] M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98 0
2450656 휴대폰번호보호서비스 << 이거 질문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199 0
2450655 똥퍼) 불사신이 죽을때까지 보벼.manhwa [1] 자제곧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106 0
2450653 망해버린 에밀리아 근황....jpg [2] Akev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143 0
2450652 난 군대에서 타소대 선임이 전주가 서울 다음이라고 [2] ㅇㅇ(112.150) 06.27 38 0
2450650 스파이 패밀리 남주로살기 vs 10억받기 ㄷㅈㄷㅎ? [3] ㅇㅇ(182.222) 06.27 50 0
2450649 아빠 자지부랄쿠퍼액뜯어먹었어 [1] ㅇㅇ(223.38) 06.27 53 0
2450648 날개잃은 천사라는 노래 좋네 [4] 제3고조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60 0
2450647 우우 만삐.. [4] ㅇㅇ(1.236) 06.27 45 0
2450644 어떤 할머니 허리가 90도로 꺽임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77 0
2450642 누나한테 화내기.manhwa [1] 1244(122.46) 06.27 183 0
2450641 족구도 리그잇던데 저것도 스포츠엿음? ㅇㅇ(61.47) 06.27 23 0
2450640 레딧 <--- 이 새끼들 왤케 착함??? 만갤러(124.50) 06.27 47 0
2450639 담 컴은 걍 내장좋은거사고 무소음 세팅해야겟슴 [2] 삼성키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45 0
2450638 침대에서 음식먹는놈들이랑 상종하면안됨 ㅇㅇ(180.69) 06.27 27 0
2450637 모모 이 미친새끼 자바리 못자바머거 ㅇㅈㄹ.. [6] 씨앗은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7 99 0
2450636 ㄴ붕우유신 만갤러(218.152) 06.27 23 0
2450635 사펑 <--- 지금 해도 안늦냐.. ㅇㅇ(112.150) 06.27 45 0
2450634 나 군생활할때 노잼이고 후임한테 관심 1도없는 [2] ㅇㅇ(211.234) 06.27 61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