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에 궁금한 질문을 올리면 네티즌들이 답글을 올리는 ‘지식인’이라는 코너가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어려운 질문이 있으면 “지식인에게 물어보라”고 얘기한다. 궁금한 걸 해결해 주는 지식 공유의 장인 셈이다. 한번은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등산하기 가장 힘든 산은 어디인가요?’ 우리나라 산 중에서 가장 등산하기 어려운 산을 알려달라는 조금 모호한 질문이었다. 암벽등반이라면 루트에 따라 난이도가 정해져 있으니 어떤 바위의 어떤 루트가 어렵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워킹산행은 이런 난이도 개념이 없다.
질문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사람들의 답이 쏟아졌다. 아이디 ‘smfqhtiavn’은 설악산이나 관악산처럼 이름에 ‘악’자가 붙은 산이 힘들다고 답했다. 아이디 ‘climber_jin’은 샘이 적은 산, 물이 적은 산이 힘든 산이라 답했다. 아이디 ‘eksdjfe’은 고도가 높은 산은 일단 힘들다고 봐야 한다며 출발지점의 고도와 정상의 고도가 얼마나 차이 나느냐가 난이도에 영향을 준다고 얘기했다. 아이디 ‘awefew’은 설악산 소공원에서 공룡능선을 거쳐 대청봉 가는 길이 가장 힘들다고 꼽았으며, ‘dhls’은 달 없는 밤에 이정표 없는 산을 야간산행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질문자가 최종 선택한 답은 ‘어느 코스인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산을 찍어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계절, 날씨, 코스에 따라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정답이다. 당일산행인지 무박산행인지, 며칠을 이어서 하는 막영산행인지, 눈이 많은 겨울인지, 등산로가 없는 개척산행인지 등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굳이 따지면 봄가을보다 한겨울이나 한여름의 백두대간 연속종주가 어려울 것이고,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덤불 가득한 수풀 속을 개척하며 가야 하는 기맥이나 지맥 일시 종주다.
하지만 산 하나로 한정지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홈페이지에서 코스에 따라 난이도 상-중-하로 구분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환경디자인부 윤상헌씨는 현재의 코스별 난이도는 탐방객과 공단 직원들의 산행 후 반응을 수렴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직접 산행한 사람들의 반응을 토대로 반영된 것이니 나름 타당성이 있다.
국립공원의 등산코스 중에서 5km 이하의 짧은 코스에서 난이도 ‘상’으로 분류된 곳은 7곳이다. 5km도 안 되는 거리임에도 난이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산행이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3km로 가장 짧은 구간은 가야산 만물상 코스다. 다음은 월악산국립공원 상선암마을에서 도락산으로 이어진 제봉과 채운봉 코스이며, 이외에 신륵사~월악산 영봉, 동창교~월악산 영봉, 상천~금수산, 영각통제소~남덕유산 등이 짧은 거리의 난코스로 선정되었다. 총 7곳 중 월악산국립공원 지역이 5곳이며 그중에서도 영봉과 도락산이 각각 2곳 선정되어 짧고 힘든 산행지로 꼽혔다.
월악산 영봉은 산악인 엄홍길 대장도 난코스로 꼽은 적이 있다. 엄 대장은 “동창교에서 출발해 영봉을 오르는데 어찌나 계단이 많은지, 히말라야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더라”고 얘기했다. 난코스로 꼽힌 곳을 보면 만물상이나 도락산 모두 바위능선길이라 위험하고 오르내림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월악산 영봉은 가파른 험로와 바위 구간을 계단으로 길게 이어 상급 코스로 분류되었다.
5~10km 거리의 고난도 코스는 치악산 금대분소~남대봉과 구룡사~사다리병창~비로봉, 월출산 천황사~천황봉 원점회귀와 천황사~천황봉~도갑사 종주, 속리산 쌍곡분소~큰군자산~도마골, 계룡산 신원사~연천봉~관음봉~삼불봉~동학사, 월악산 덕주사와 보덕암에서 출발해 영봉으로 이어진 코스다. 여기서 군자산과 월출산, 계룡산 코스는 당일 풀코스인 반면 치악산과 월악산 구간은 편도 코스로, 같은 ‘상’ 난이도이지만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악산 사다리병창 코스는 힘들어서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등산인들에게 대표적인 난코스로 꼽힌다. 월악산 영봉은 5~10km 구간에 편도만 두 곳을 이름 올리며 계단의 위력을 떨쳤다.
10km 이상에선 설악산, 주왕산, 오대산, 내장산, 속리산, 소백산, 계룡산 등의 꽉 찬 당일산행 코스들이 꼽혔다. 거리가 길면 길이 아무리 좋아도 산행이 힘들 수밖에 없으니 변별력이 떨어진다. 여기선 ‘상’에서도 다시 상중하로 레벨을 나누는 것이 등산인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겠다. 지리산과 설악산 구간들이 포함되지 않은 건 당일산행 기준으로 힘든 곳을 꼽았기 때문이다.
설악산과 지리산도 당일에 정상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국립공원 측에서 권장하지 않는다. 지리산 백무동~장터목~천왕봉~중산리, 설악산 오색~대청봉~비선대~소공원 식의 코스를 당일로 많이 오른다. 그러나 출발지에서 산입구까지 가기 위해 전날 밤에 버스로 미리 출발해 새벽 같이 산에 오르는 무박산행을 해야 하고, 산행 거리나 가파른 오르막길 등 코스가 모두 난이도가 높아 일반적으로 권하기엔 무리다. 버스로 이동하느라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험한 산길을 가는 것은 안전사고의 위험이 따를 수 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누락되었지만 당일산행이 어려운 곳으로 한라산을 빼놓을 수 없다. 한라산은 성판악과 관음사로 오를 수 있는데 위험하거나 가파르다기보다 거리가 워낙 길어 난이도가 높다. 성판악~정상~관음사 코스가 대표적이며 18.3km다. 일반적인 당일산행으로 길고, 완만한 오르막이라 해도 4시간 이상 계속 올라가는 건 어렵다.
국립공원 당일산행 대상지만 놓고 보면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은 월악산 영봉이다. 어느 코스가 가장 어렵다기보다는 어느 길로 올라도 어려운 산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월악산 영봉은 동창교에서 오르는 길, 신륵사에서 오르는 길, 덕주사에서 오르는 길, 보덕암에서 오르는 길 총 4곳이 난이도 ‘상’으로 분류되며 가장 많은 난코스를 배출(?)했다. 정규등산로로 지정된 길 중 어디로 오르더라도 월악산 영봉은 오르기 힘든 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리산이나 설악산처럼 공단에서 1박 이상의 산행을 권하는 진정한 ‘큰 산’은 제외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산은 어디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다. 주관적인 것이고 계절과 날씨, 코스, 길 상태, 당일산행 여부 등에 따라 모두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가장 힘들었던 산이 하나씩 있다. 우연찮게 폭우를 만나 힘들었던 산, 미끄러져 다리를 다쳐 힘들었던 산, 일행과 다퉈 분위기가 나빠 힘들었던 산, 장비를 두고 와서 힘들었던 산 등, 진정으로 오르기 어려운 산은 우리들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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