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ㅡ잉 "

깊은 새벽,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자취방에 정적을 깨고 핸드폰이 울린다.

옆에서 자던 나는 반사적으로 튕기듯 일어나 떡진머리를 긁고 핸드폰의 잠금을 푼뒤 진동의 원인을 확인한다.

[ 대장님! 마을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 ]

그럼 그렇지. 나의 멋진 9홀배치에 어떤 겁없는놈이 쳐들어온것이다.

자기전까지 파밍을 끝내고 레벨11의 골드창고와 엘릭서 저장고, 그리고 다크엘릭서저장고를 꽉채우고 자는날 일때면

방심을 할 수가 없다.  상대는 몇홀인지는 모르지만 겨우 끌고온다는게 벌룬과 미니언이였다.

할테면 해보라지, 8홀이나 9홀 초반대에나 쓰는 저딴 조합을 내가 막아내지 못할리는없다.

내가 이 게임에 쏟은 돈만 얼만데, 게다가 난 프로 콬갤러라고. 이딴놈한테 내 배치가 털릴리없잖아? 암. 그렇지.

코웃음치며 싱크대로 간 뒤 물을 마시려고했다. 정수기 렌트할 돈으로 CoC의 보석을 사는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함의 결과다.

물론 불만은 없다. 덕분에 한달에 45000어원 여치의 보석이 내것이 되니까.

그런데 꼭지를 올려도 별 반응이 없다.

경쾌한 물소리를 내며 쏟아져야할 물줄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왜지?

아, 맞아.. 수도요금을 내지 못했다. 그때도 아마 그돈으로 보석을 샀을터..

" 이런.. 젠장.. "

복잡한 생각은 하기싫었다. 이미 오래전 내팽겨쳐진 EBS 문제집들이 나뒹구는 차가운 바닥을 내딛으며,

다시 내몸뚱이 하나 힘겹게 누울 수있는 침대에 누워 공격의 근황을 보려고 하던 순간이였다.

" ........? "

등골에 싸한,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빚쟁이들이 어머니의 뺨을 때렸을때 느끼는 감정따위와는 달랐다.

홀을 밖으로 빼놓고 일명 홀낚시를 할 셈이였으나 이미 나의 뇌전탑은 부서진지 오래된듯 보였고,

상대의 벌룬과 미니언, 그리고 지원병력으로 온거같은 3렙 드래곤 한마리는 이미 내 본진을 탈탈 털어버린 뒤였고,

혹시나 해서 둔 맵끝끝의 장인의 집을 불사르러 유유히 가고있었던 것이다.

가슴한쪽에 깊게 사무친 뜨거운 무언가가 내 목구멍과 콧잔등을 핑 돌았다.

그 순간, 이성을 잃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버린 노트4를 딱딱한 바닥에 내던지고 소리쳤다.

" 이 개새끼가아ㅡㅡㅡㅡ!!!!!!!!! "

난 그순간 말그대로 금수(禽獸)였다.

벽을 발로차고 80kg의 몸뚱이가 이리 저리 날뜀에 그에 따라 머리의 비듬이 봄의 서울대공원 벛꽃거리마냥 휘날린다.

반 시간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 계십니까- " 라고 약간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핑 도는 눈물을 닦고 애써 씩씩거리던 숨을 진정시키고 문을 연 뒤 말했다.

" 네-, 누구신ㄱ "

문을 열며 반자동적인 멘트를 하려던 순간, 형광색의 조끼와 파란 명찰에 쓰인 POLICE가 나의 말을 끊고 말았다.

경찰인 것이다.

순간 새하얗던 머리는 갑자기 돌아가기 시작하고, 이내 1초도 안돼는 시간에 몇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 뭐지? 환불? 아냐 콬갤럼들이 안걸린뎄는데, 아청? 아냐 프록시로 봤는데 아니면 수도요금? 뭐지? )

경찰 두 명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서있다가, 앞에 있던 한명이 말을 꺼냈다.

" 한 두번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협조해주시죠. "

그리고 내가 잠시 경직한사이 경찰은 나를 반강제적으로 경찰서로 끌고간다.

젠장.. 복수........ 그자식 복수해야하는데...

차가운 도시 아래, 난 그렇게 파출소로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