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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1, 2
[시리즈] 솔져 오브 포춘 : 콩고 - 1 · 솔져 오브 포춘 : 콩고 - 1 https://youtu.be/_7PUPNxsRQ0?si=Jfaa0UhAah7NzHQf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Run Through The Jungle#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is undeniably one of the greatest rock bands of all time, with an instantly recognizable, raw, bayou sound, popularized in ...youtu.be 브금 CCR - Run through the jungle 두 개의 연설, 두 개의 세계 1960년 6월 30일, 아프리카 심장부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벨기에 국왕 보두앵 1세(Baudouin I)가 백색 정장과 반짝이는 훈장을 달고 콩고의 수도 레오폴드빌(현 킨샤사)에 서 있었다.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벨기에는 여러분에게 문명이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국왕의 말에 연단 아래 백인들은 박수를 쳤지만, 콩고의 흑인 신임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땀에 젖었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잠시 후 루뭄바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날카롭게 갈라졌다. "우리는 고문당했고, 굶주렸으며, 끊임없이 착취당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학대에 맞서 싸웠고, 마침내 오늘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 순간 국왕의 얼굴은 굳어졌고, 벨기에 언론은 이 연설을 '국왕에 대한 모욕'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루뭄바는 더 이상 굴복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었다. I. 제국의 유산 – 부유하지만 주인이 없는 땅 벨기에령 콩고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다. 코발트, 구리, 우라늄, 고무, 석유가 넘쳐났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우라늄도 이곳에서 왔다. 그러나 그 자원의 진짜 주인은 없었다. 벨기에는 콩고를 식민지로 다스릴 계획도 없었고, 레오폴드 1세에게 인계 받으면서 현지 엘리트를 키우지 않았다. 학교는 극소수였고, 대학은 전혀 없었다. 군대의 지휘관도, 정부 관리도 모두 벨기에인들이었다. 콩고의 흑인들은 지배자가 아닌, 단지 지배받는 존재였다. 독립은 너무 빨리 찾아왔고, 그 땅은 국가를 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레오폴드빌 (현 킨사샤)의 소요를 진압하는 헌병대) II. 준비되지 않은 독립 – 곧바로 찾아온 혼란 "이러지 마십시오! 저희는 벨기에인이 아닙니다!" 독립 다음 날, 폭발은 시작되었다. 콩고군의 흑인 병사들은 분노로 가득 찼고, 자신들을 억압해온 백인 장교들을 쫓아냈다. 장교들은 두들겨 맞고, 몇몇은 처형됐다. 벨기에인 수천 명은 공포에 떨며 본국으로 급히 도망쳤다. 순식간에 군대는 무너졌다. 정부 기능도 마비됐다. 어제 독립한 국가는 오늘 사라지고 없었다. 벨기에는 떠났고, 남은 것은 혼돈과 분열뿐이었다. III. 찢겨진 나라 – 분리의 불씨, 솜베의 카탕가 콩고는 너무나 거대했다. 백여 개의 민족이 뒤섞였고, 언어와 문화는 서로 달랐다. 그 중에서도 남동부의 광물 부국 카탕가(Katanga)는 이 혼란을 틈타 독립을 선언했다. (모이즈 솜베) 카탕가의 중심엔 자칭 대통령이자 기업가, 군벌이었던 모이즈 솜베(Moise Tshombe)가 있었다. 그는 외쳤다. "카탕가는 이제 독립한다!" 솜베는 벨기에 대기업과 손을 잡았고, 외국 용병을 고용해 자신만의 국가를 세웠다. 카탕가는 국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기업이었고, 그 통치방식은 오로지 돈과 총으로 운영됐다. 이곳의 실질적 지도자는 모이즈 솜베(Moise Tshombe). 벨기에의 기업 자본과 깊게 연결된 인물이었다. 솜베는 반군 진압을 명분으로 콩고 정부에 복귀했고, 그 대가로 자신의 지역 군벌과 외국 용병을 정규군처럼 운영할 권한을 얻었다. 그는 군을 이끌지 않았다. 그는 ‘군대를 빌려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돈 받고 싸우는 군대", 다시 말해 용병이 콩고 땅을 밟기 시작한 시점이. (레오폴드빌 외곽에서 체포된 루뭄바) IV. 제거된 루뭄바 – 국제정치가 지워버린 남자 루뭄바는 혼돈을 수습하기 위해 유엔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엔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루뭄바는 다급한 마음에 모스크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이는 미국과 벨기에에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61년 1월, 그는 정적인 솜베의 군대에 체포됐다. 구타당하고 모욕당한 뒤, 결국 처형됐다. 그의 시신은 토막 난 채 황산에 녹아버렸다. 그의 시신은 흔적도없이 사라져, 확인할수있는건 금니 뿐이었다. 그를 죽인 자는 콩고인이었지만, 암살을 명령한 것은 외부의 그림자들이었다. (모부투 조세프. 훗날 모부투 세세 세코가 된다.) V. 권력 공백, 서방의 그림자들 모부투 조제프. 젊고, 야심만만하고, 무엇보다 CIA의 남자였다. 그는 군부 쿠데타로 루뭄바를 몰아낸 뒤, 정부의 핵심을 장악했다. 겉으로는 총리와 대통령이 있었지만, 실제 결정은 모부투의 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은 모부투에게 돈을 줬고, 벨기에는 그에게 외교를 맡겼다. 하지만 모부투의 군대는 훈련받지 않았고, 지휘 체계는 붕괴되어 있었다. 도심은 군화로 통제했지만, 국토의 80%는 반군의 손에 있었다. 루뭄바가 죽자 권력은 허공에 붕 떴다. 그 공백을 재빠르게 채운 건, 젊은 장교 모부투(Mobutu)였다. 그는 서방 정보기관(CIA)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모부투 뒤에는 더욱 위험한 그림자들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은 기업가였고, 정보요원이었고, 용병 브로커였으며, 냉전의 전략가들이었다. 이들은 땅과 자원의 냄새를 맡고 돈을 쫓았다.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전투기나 탱크가 아니었다. 그들의 무기는 바로 돈을 받고 싸우는 '사람'이었다. 용병들이었다. (사진관에서 포즈를 취하는 심바 반군) VI. 심바 반군, 그리고 세 남자. 1964년, 콩고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번엔 '심바(Simba)'라는 이름의 반군이 무기를 들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외쳤고, 토착 신앙과 주술을 믿으며 도시를 점령하고 대학살을 자행했다. ‘심바(Simba)’는 스와힐리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자처럼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를 점령했고, 공무원을 죽였으며, 백인들을 사냥하듯 찾았다. 마르크스주의와 아프리카 민족주의가 뒤섞인 슬로건을 외치며, 한 손에는 총을, 다른 손에는 부적을 들고 다녔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미친 자들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진정한 해방자라고 불렀다. "심바는 총알로 죽지 않는다." — 반군 병사들이 몸에 바른 진흙을 두고 한 말 실제로, 심바 반군은 종종 총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약을 복용했고, 집단 최면에 가까운 광신 상태로 싸웠다. 이념은 있었지만, 조직은 없었다. 이에 맞서기 위해, 세 명의 외국인 지휘관들이 콩고로 향했다. 지크프리트 '콩고' 뮐러 (Siegfried 'Congo' Müller) 나치 독일 국방군 대위 출신. 동부전선에서 철십자를 받았고, 전쟁이 끝난 후엔 남아공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는 술과 총,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중독된 사내였다. 전투복 가슴팍에 독일군시절 수여받은 철십자훈장을 달고 다녔다. 기자 앞에서 “나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고, 그의 손은 민간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마이크 '매드 마이크' 호어 (Mike 'Mad mike' Hoare) 영국계 아일랜드인. 전직 왕립기갑군단 제 2 정찰대 소령, ‘프로페셔널’의 얼굴을 한 용병 대장. 그는 ‘5 Commando’를 지휘했다. 엄격했고, 냉정했고, 살육을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자기 부대에 사적 복수나 강탈을 금지시켰고, 규율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았다. “나는 병사였고, 병사로서의 명예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곳엔 명예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 호어, 회고록 中 장 '블랙 잭' 슈람 (Jean 'Black jack' Schramme) 벨기에계 콩고인. 전직 플랜테이션 소유주이자 민병대 리더. 그는 자신의 사병으로 무장단체를 만들었고, 그 무력으로 정권과 협상을 시도했다. 그에겐 이념도, 명분도 없었다. 다만, “콩고는 내 땅”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슈람은 외국 용병과 현지 병사를 섞어 작은 왕국을 만들었고, 그 왕국의 법은 총구에서 나왔다. 세 사람 모두 악명 높은 용병대장이었다. 그들은 '돈으로 고용된' 전문 전사였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전투 전문가들이었다. VII. UN – 방관자 혹은 침묵자 국제연합은 있었다. 파란 헬멧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보았고, 무전했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심바가 백인 선교사를 죽이고 정부군이 민간인을 처형할 때, 카탕가에서 벨기에계 기업이 현지인을 쫓아낼 때 — 그들은 기록만 남겼다. 콩고에서, 중립과 권위는 무기였다. 콩고는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벨기에가 급하게 떠나고, 루뭄바가 사라지고, 카탕가가 독립을 선언한 뒤 남은 건 피와 혼란뿐이었다. 독립은 준비되지 않은 채 왔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나 잔혹했고,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아프리카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불릴 전쟁과 비극의 서막이었다. 2편에서 계속-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2 [시리즈]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3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1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2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3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4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5 · 솔저 오브 포츈 : 콩고 - 6(完) https://youtu.be/1v4twH9KbnU?si=HeRkuihj6IORGD94 브금 The four tops - Reach out, Ill be there Reach Out I'll Be There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Reach Out I'll Be There · Four TopsThe Ultimate Collection: Four Tops℗ 1966 Motown Records, a Division of UMG Rec...youtu.be 웃는 남자 1960년대 중반 어느 날, 독일의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 콩고로 향했다. 그들의 목적은 단지 전쟁을 기록하는 게 아니었다. 감독들은 전투가 아닌 한 남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먼 아프리카까지 날아간 것이었다. 그 남자는 인터뷰 내내 웃었다. 자신의 나치 장교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었고, 사람을 고문했던 기억을 회상하면서도 웃었으며, 심지어 감독이 "당신은 무고한 사람도 죽였느냐"고 묻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되물었다. "무고한 사람? 그게 누굴 말하는 거지?" 이 다큐멘터리는 훗날 독일 전역에서 논란과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그 제목은 아주 단순했다. 《Der lachende Mann》 (웃는 남자) I. 나치, 군인, 그리고 방황의 시작 지크프리트 뮐러(Siegfried Müller)는 1920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군인에 대한 동경과 군사적 영웅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독일국방군에 포병 소위로 자원입대했다. 그는 동부전선으로 향했고, 러시아 평원을 전차와 함께 누비며 싸웠다. 그는 빨갱이와 용맹하게 싸웠다는 이유로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의 가장 큰 자부심이자 명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은 패전했고, 뮐러는 미군의 전쟁 포로가 되었다. 그 순간 그가 가진 명예는 철조망 뒤에서 빛을 잃었다. 석방 후, 그는 폐허가 된 독일에서 방황했다. 군인의 명예를 찾을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장 노동자, 일용직, 트럭 운전사까지 전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나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군인의 본능과 욕망을 찾아 남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총을 들었다. II. HEIA SAFARI 1964년, 콩고는 피로 물들고 있었다. 심바(Simba)라는 마르크스주의 반군이 나라를 찢고 있었고, 카탕가와 중앙정부는 급히 외국 용병을 모집했다. 뮐러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콩고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과거 나치 장교였던 그의 이력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콩고에 필요한 건 오직 두 가지였다. 공산주의에 맞서 싸울 반공 전사, 그리고 돈만 있으면 언제든 죽일 준비가 된 용병. 뮐러는 중앙정부 산하의 외국인 용병부대인 '5 Commando'에 배속되어 자신만의 소대를 이끌고 정글 깊숙이 들어갔다. III. 선글라스와 철십자 뮐러는 전쟁터에서도 장교다운 외모를 잃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 검은 선글라스를 썼고, 콩고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옷깃까지 단정히 다린 제복을 입었다. 그리고 그의 왼쪽 가슴에는 항상 나치 독일군 시절의 철십자 훈장이 빛나고 있었다. 기자들이 그 훈장을 지적하면, 뮐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나를 상징하는 것이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야." 뮐러는 자신이 나치 독일군에 부역하였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그렇지만 그는 나치즘을 우상화하거나 하진 않았던 이중적인 인물이다. 콩고에선 그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싸울 의지와 능력뿐이었기 때문이다. IV. 뮐러의 작전 – 공포라는 무기 군사 지휘관으로서 뮐러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그는 포병장교 출신이었고, 군사전략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지형과 병참을 무시했다. 그의 소대원들 사이에서도 그의 전략적 능력은 형편없다는 평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한 가지 면에서는 탁월했다. 바로 '공포를 이용한 민간인 통제'였다. 그는 마을을 점령하면 마을의 어른이나 족장을 끌어내 공개적으로 폭행하거나 사살했고, 주민들에게 그 모습을 직접 보게 했다. 그러면 겁에 질린 주민들은 반군 정보를 알아서 가져왔다. 그는 가끔 기자들 앞에서 직접 고문을 하며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잔혹성은 악명이 높았지만, 뮐러는 개의치 않고 늘 웃고 있었다. 공포는 그의 진짜 무기이자 유일한 언어였다. V. 《웃는 남자》 – 가장 섬뜩한 인터뷰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이 뮐러에게 물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적이 있습니까?" 뮐러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웃으며 답했다. "무고한 사람이라… 대체 그게 누굴 말하는 거지?" 그 직후, 그는 고문하는 방법과 반군 포로에게 거짓 정보를 심는 법, 심지어 반군 내부의 갈등을 조장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심리전 방법까지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카메라는 그의 웃는 얼굴을 클로즈업했고, 감독들은 깨달았다. 이 남자의 웃음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 VI. 전쟁 후의 어둠 – 침묵 속으로 콩고 작전이 끝난 후, 뮐러는 다시 독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독일 언론은 그를 '전범 용병'이라 비난했고, 국제사회 역시 그를 외면했다. 그는 조용히 남아프리카로 돌아가 은둔 생활을 했다. 1970~80년대 남아공 극우 민병대와의 연관성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1983년, 그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비엔 군번도, 훈장도 없었다. 그저 이름만 새겨졌다. VII. 왜 뮐러는 중요했는가 지크프리트 뮐러는 단지 미친 용병이 아니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뒤안길에서 태어난 유령이었다. 나치는 패망했지만, 그들의 전술과 기술, 그리고 무자비한 공포는 살아남아 새로운 전쟁에서 되살아났다. CIA 분석관은 콩고 내전 관련 기록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뮐러는 이유를 묻기 전에 총을 먼저 들었다." 그는 총을 사랑했고, 전쟁을 갈망했으며,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그 느낌을 즐겼던 자였다. 그는 전쟁속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으며, 오직 전쟁 속에서만 살아있을수 있었다. 3편에서 계속 https://youtu.be/NB9gyyVrbxk?si=mtPkhcLxKyAOFN2E Der lachende Mann/The Laughing Man – Bekenntnisse eines Mörders (GDR, 1966 - ENGLISH SUBTITLES)Der lachende Mann – Bekenntnisse eines Mörders (DDR, 1966 - ENGLISH SUBTITLES)The Laughing Man - Confessions of a Murderer (GDR, 1996 - ENGLISH SUBTITLES)(Se...youtu.be 웃는남자 다큐멘터리 전편. ㅡ동독 제작
작성자 : ㅇㅇ고정닉
노잼 시골섬을 왜 감? 쓰시마 2박3일 여행기 (1)
일여갤에서 물어보면 낚시할거 아니면 왜 가냔소리 듣기 좋은 가까운 시골 섬 쓰시마를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왔어쓰시마를 선택한 이유는 2박3일로 여행 가려니 일본 본토는 항공권 가격이 뭔가 아쉽기도 하고 친구가 마침 부산에서 살고 있어서 배타고 가보자 싶었음 ㅋㅋ친구랑 둘이서 다녀왔고 여행 목적은 시골답게 컨텐츠가 부족 하더라도 자연풍경 감상 + 먹고 마시자로 결정하고 감 ㅋㅋ결론적으로 다녀와서 느낀 점은 진짜 너무 만족한 여행이 되었음 생각보다 좋은 여행지라 생각 들어서 소개하고 싶어짐부산~쓰시마는 원래 쓰시마 링크호랑 니나호가 있었는데 올해 2월인가 3월인가 부터 대아고속 씨플라워 호가 새로 취항했다고 해서 이쪽으로 골랐음사실 쓰시마 링크호 예약 하려다가 주말낀 토일월 2박3일 일정 원하는 시간대 맞추기가 어려워서 인지도 적은 씨플라워호 문의 해봤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어역시나 작은 쾌속선 답게 친구는 멀미를 오지게 했고 나는 그냥 푹자고 상쾌하게 도착함 ㅋㅋㅋ히타카츠항에서 내렸는데 진짜 깡촌이라 사실 별거 없긴 했어도 나름 뭔가 정감가는 시골 어촌 마을 느낌이었음친구랑 나는 차 빌려서 바로 이즈하라 먼저 내려가는 계획이었어서 히타카츠는 간단하게 밥만 먹고 떠남대충 끼니 떼우려고 사람들 몰리기 전에 식당 찾아 들어간 <친구야>여러 쓰시마 여행기에서 자전거 렌트 해주는 식당이라 본 곳이라 뭔가 반가워서 들어 갔는데 진짜 사장님이 한글패치 100%라 당황했음 ㅋㅋㅋ내가 돈까스 덮밥 세트 시키니까 정확한 한국어로 세트 음료는 콜라 사이다 아이스커피 주스 있어요 하시길래 놀랬다 ㅋㅋㅋ 나보다 한국어 잘하시는듯시골섬 답게 우리의 렌트카는 22만키로뛴 영감님이 었는데 2박3일동안 큰 신세를 졌음 ㅋㅋㅋ 근데 와 경차의 왕국인것도 있지만 여기는 길이 툭하면 일차선으로 합쳐져서 경차가 ㄹㅇ 필수인듯추후 내가 오키나와 갈 생각도 있어서 일본 운전 연습도 해볼 겸 국제면허 발급받아서 2박3일내내 내가 운전함 ㅠㅠ ㅋㅋ이즈하라 따라 가다 우연히 지나친 작은 어촌 마을인데 그냥 풍경이 이뻐서 찍어놨음 ㅋㅋㅋ죄다 친구나 내가 찍혀잇어서 차에서 찍은거 말곤 건지기가 어려웠는데 실물은 진짜 이뻤어한국인들이 쓰시마 여행 알아볼때 들어본 이즈하라랑 히타카츠 외에도 가는 길 마다 이런 작은 마을들은 꽤 많더라드라이브 하면서 마을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음 의외로 중간 중간 사람 꽤 사는 동네도 많더라이즈하라 내려가는 길에 쓰시마 야생동물 보호소 쪽으로 빠지는 표지가 있어서 그냥 즉흥적으로 차 돌려서 들어갔음 ㅋㅋ여기는 쓰시마의 야생 삵을 알리고 보호하는 곳인데 입장이 무료라고 미리 리뷰도 봤어서 삵 보러 감한국인은 잘안올 것 같은 위치인데도 나름 중간 중간 영상물이나 큼직한 자료는 한국어가 있긴 하더라물론 텍스트량 많은건 대부분 일어만 표기 되어 있어서 파파고 씀엄청 수상한? 삵 친구들이건 벌 ㅈㄴ크길래 신기해서 찍음쓰시마에서 제일 많이본게 저 매랑 독수리햄들인데 바다가에 갈매기는 안보이고 독수리는 나는 거 진짜 자주 봤음바다쪽 공원이나 해변들은 음식물 대놓고 먹으면 독수리가 약탈한다고 경고문 붙여놓은 곳도 많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왜 정작 진짜 삵은 사진이 없어 ㅋㅋ 삵의 스트레스를 방지하고자 촬영 금지라 눈으로 보고 오기만 했음그런데 생각보다 사육 공간이 너무 좁아 보이고 혼자 외롭게 한 마리만 있어서 묘하게 쓸쓸해 보였음...집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어서 아쉽지만 뒤통수만 보고 나왔다 ㅠㅠ일부러 찾아가기엔 외딴 곳이고 컨텐츠도 적은 편이지만 무료 입장에 직원분들도 친절하고 잠깐 둘러보긴 나쁘지 않아서 만족스러웠음그리고 보호 센터를 나와서 내려오는 길에 뜬금없이 주차장이 있길래 주차하고 어느 곳 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길 따라서 가봄ㅋㅋㅋㅋ동백꽃? 인가 길마다 떨어져 있고 사람이라곤 나랑 친구 밖에 없어서 가도 되나 싶긴 했는데 쭉 따라 올라가봄 ㅋㅋ올라가다가 이런 감옥??도 봄 ㅋㅋㅋㅋ 무슨 용도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잠겨 있었어그리고 더 올라가서 열려 있는 곳도 찾음한참 올라가니 중턱 쯤에 이렇게 바다가 보이길래 이뻐서 사진도 남김 ㅋㅋ친구 얼굴 자르긴 그래서 내 사진 자름그리고 길 따라 더 올라감알고보니 쓰시마섬 최북단에 위치한 공원으로 향하는 산책로 였음등대가 보여서 미친 듯이 올라갔음 ㅋㅋㅋ 그리고 등대 밑에 이런 아까 본 감옥 같은 구조물이 있는데 여기는 문짝이 떨어져 나가있어서 찍어봄 무서워서 더 안들어감 ㅋㅋㅋ아까랑 다르게 여긴 옆에 작은 방이 있더라참고로 이후 지갑 잃어버렸다가 한참 뒤에 알고 다시 돌아가서 여기까지 겨우 올라왔는데 딱 여기 입구에 떨궜더라 ㄷㄷ다행히 인적이 드물어서 바로 찾음ㅋㅋㅋ우리 떠날때쯤 어디선가 한 커플이 차타고 올라왔더라...;;우린 ㅈ빠지게 등산했는데공원 풍경을 사진에 다 못 담아서 아쉽지만 진짜 너무 이쁘고 바다 배경으로 탁 트여서 진짜 너무 사진 찍기 좋았다나는 꼬추들끼리 여행이지만 커플 여행으로 온다면 칭찬 받기 딱 좋은 인스타 사진 스팟이니 길 찾아서 차타고 가라 ㅠㅠ 걸어서 올라가니 좀 빡셈나중에 알았는데 여기 이름은 <사오자키 공원> 임그렇게 사오자키 공원을 떠나서 다시 이즈하라 가는 길에 들린 쓰시마 패밀리파크놀이공원이라 하기엔 뭐가 없지만 쓰시마에는 진짜 몇 없는 오락 시설임 ㅋㅋ방문한 날이 토요일이라 놀러온 현지인 가족이 꽤 많았어일본 초딩들 세그웨이인가 그 서서 타는 이륜 킥보드? 엄청 잘타고 돌아 다니더라이 곳을 찾아온 이유인 ㅈㄴ긴 미끄럼틀영상만 남겨서 사진을 못 찍었는데 물류센터 레일 마냥 쇠기둥이 쭈욱 누워있음 친구는 타보고 자기가 택배상자가 된 기분이라 했음 ㅋㅋ내 친구는 내가 알려주기도 전에 먼저 타고 내려가서 엉덩이 다 갈렸는데 깔고 타는 거 있으니까 꼭 챙겨서 타라 ㅋㅋㅋ올라오기가 뒤지게 힘들어서 난 딱 두번만 탓음카트랑 세그웨이는 유료지만 미끄럼틀은 꽁짜니까 체력만 남아돌면 무제한으로 탈 수 있다 ㅋㅋㅋ 그리고 다시 이즈하라 가는 길에 중간 어느 마을에서 위치한 Katsuyuki 스시여기서 파는 장어 덮밥이 맛있다고 해서 꼭 먹고 싶었어알고 보니까 브레이크 타임이더라 우리가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대에 가긴 했어 ㅋㅋ그런데도 사장님이 준비해주신다 하셔서 감사히 먹었다 ㅋㅋ 짧은 한본어와 파파고로 장어덮밥 가능한지 여쭤봤는데 아쉽게도 장어는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스시 세트로 주문함 ㅋㅋ진짜 오마카세? 스타일로 사장님이 즉석에서 숫자 세어가면서 스시 만들어서 올려주셨는데 이것도 맛있었음스시먹고 또 한참 달려서 찾은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를 이어준다는 만제키 다리 직접 내려보니까 왜 패지키 관광 아지매들 필수 코스인지 알았음 실제로 보니 제법 이쁘고 경관이 멋지더라사진 고를 땐 몰랐는데 친구 나와서 걍 친구 얼굴도 캇ㅋㅋㅋ다리 밑 풍경도 진짜 이쁘더라러일전쟁때 일본군 전함이 출동때 이곳으로 다녔다고함 ㅋㅋ 보니까 인위적으로 뚫어둔 것 같긴 하더라고 그 시절에 콘크리트를 이렇게 떄려 박다니이렇게 오만 군데 다들리며 마참내 도착한 쓰시마의 가장 핫한 도시? 읍내? 이즈하라작지만 알차게 관공서나 맛집 관광지 마트 드럭스토어 등등 다 모여있음숙소는 가성비 비즈호 토요코인에 묵었음 ㅋㅋ그리고 아까 못먹은 장어 덮밥이 미련이 남아서 찾아보다 장어 덮밥도 있고 평도 좋은 이자카야 <메시야>로 저녁 먹으러 감아무래도 쓰시마가 패키지 관광 아지매 아저씨들 진상이 잦아서 그런 혐..이슈나 한국인 꺼려한다는 일부 가게가 있다는 평이 있어서 좀 걱정했는데여긴 사장님이나 종업원분들이 너무 친절하셨음나도 친구도 할 줄 아는게 인사말이나 고레 오네가이시마스 수준이어서 한본어랑 파파고를 사용하는데도 최대한 배려해주려고 하시더라그리고 일단 전체는 아니어도 한국어 메뉴판도 있긴 했음 ㅋㅋ캬 장어듭밥 기가 매키더라 진짜 맛있어서 술이 왕창 들어감여기서만 친구랑 둘이서 11000엔 가량 씀ㅋㅋㅋ기린 먹고 싶어서 병맥주도 많이 시키고 대마도 지역 사케랑 하이볼이랑 이것저것 엄청 마셔대서 ㅋㅋㅋ안주로 시킨 뜬금 없는 살라미 피자도 맛있었다그리고 분위기도 정말 좋고 관광객보단 현지인들이 더 많이오는 가게였음친구가 문신충이라 현지인 영감님이 술취해서 화장실가다 내 친구보고 한고쿠 야쿠자냐 농담하셔서 좀 웃겻음 ㅋㅋ이레즈미 까진 아니고 그냥 패션 타투임 ㅠㅠ 농담하신거이미 얼큰하게 취해서간 <잇케이라멘>사실 이전에 2차로 티아라몰에 위치한 야키토리집을 갔는데 관광객 아저씨들 너무 시끄러워서 걍 맥주좀 마시고 바로 나옴 ㅋㅋ 너무 시끄러웟음...뭐 라멘이 라멘맛이고 한국에서도 먹어본것 같은 맛이라 특이할건 없었고 그냥 취해서 해장겸 먹으러감메뉴중에 사이드로 김치가 있어서 시켰는데 의외로 기무치가 아니라 진짜 한국 김치라 좋았다이렇게 첫날은 이즈하라 도착해서 술만 죽어라 마심ㅋㅋ 마지막으로 훼미리마트 들려서 호텔에서 4차까지 술만 마셨다원래 내가 술을 좋아하긴 해도 여행가면 다음날 일정 걱정에 되도록 잘 안마시는 편인데 어쩐지 이날은 술도 잘 들어가고 안주도 다 맛있어서 신나게 달림너무 길어져서 다음날과 마지막날은 2편으로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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