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마영강과 진소아의 사이로 화려한 음식상이 차려졌다. 그녀가 꿈에서도 보지 못한 귀한 음식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진소아는 내심 그렇게 나쁜 결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마영강은 웃는 낯으로 술병을 내밀었다.

"자, 한잔 받아."

"감사합니다."

진소아는 예의 바르게 술을 받았다. 과연, 명주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주향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천도복숭아의 향기가 이러할 것인가? 투명한 액체에서 뿜어져나왔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농후한 주향. 진소아는 기대로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와는 별개로 예의 바르게 마영강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언제고 다시 만날 날을 위해 미리 건배를 하지."

"마영강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바랍니다."

"하하! 좋아좋아! 먹고 마시자구!"

마영강은 호쾌하게 검남춘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쯤은 남자다운 구석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영강이 확실하게 술을 목구멍으로 넘긴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도 술잔을 살짝 기울였다. 아무래도 술에 몹쓸 짓을 해 놓진 않은 듯 했다.

엄청난 도수. 화끈한 주정이 심장을 두들겼다. 그 충격도 잠시, 오로지 곡물과 누룩으로 빚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드는 꽃향기와 과일내음이 입과 코를 가득 채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검남춘인가? 진소아는 한계를 넘은 행복감으로 잠시 표정이 확 풀렸다. 그 미모는 마영강의 기쁨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자! 이제 음식이 식기 전에 들도록 하지. 오늘은 닭고기가 제법 괜찮아 보이는군. 내 요리사의 실력은 알아주니까 맘에 들거야."

그렇게 말하며 음식을 먹는 마영강. 이것저것 집어먹는 걸 보니 그나마 생겼던 호감도 뚝 떨어졌다. 대체 운제국군은 뭐가 좋다고 이런 자에게 우장군이라는 고위직을 내어 준 것일까? 최근 운제국의 국운이 상당히 기울었다더니 망조가 드는 걸지도 모른다.

"자네도 어서 들어. 식기 전에 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럼 맛있게 먹겠습니다."

마영강이 이것저것 집어먹는 걸 보니 음식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의 기쁨조 또한 같은 술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으니 이제 긴장을 좀 풀어도 될 지 모르겠다. 진소아는 간만에 마음껏 먹고 마셨다. 사막에서 구하기 어려운 얼음물도 있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나락으로 빠드렸다.

시작은 약한 현기증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독하디독한 검남춘을 독째로 비우고 있었으니 아무리 진소아라 한들 취기가 올라올 수 밖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기증은 이상한 감각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주정의 뜨거움과는 다른 열기가 몸을 채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것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춘약!"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취기와 약기운이 그녀의 발을 얽메었다.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진 진소아. 마영강은 흡족하게 웃으며 진소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고수는 고수로군. 특제 춘약에도 그렇게 오래 버티는 걸 보면 말이야."

"대…… 대체 무슨 수를 쓴거지……? 분명 음식과 술은 다 같이 먹었는데!"

"하지만 아직 눈치는 조금 모자라군. 나는 분명히 단 한가지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네?"

"……!"

마영강의 말마따나 그가 손대지 않은 단 하나의 음식이 있었다. 얼음물. 마영강의 앞에 놓인 물잔 안의 얼음은 이미 녹아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보통은 두가지 약을 섞어먹으면 효과가 나오는 약을 최상으로 치지. 하지만 이 약은 무려 세 가지를 섞어먹을 수 있게 되어있어. 아주 어렵게 구한 약이네. 그 값은 자네가 치뤄줘야겠군. 흐흐……."

"이…… 이 파렴치한! 제국의 장군씩이나 되는 자가 이런 더러운 수를 쓰는가!"

"말은 바로하게. 더러운 수를 썼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나. 하하……. 자네의 본성을 보니 더욱 맘에 드는군. 부디 그 몸뚱이도 내 맘에 들길 바라네."

마영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짜리몽땅한 신체가 이상하게 거대해보였다. 진소아는 몸을 떨며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지만 이미 손쓸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