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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자료 줄 때까지 청문회" vs 방통위 "권한 없어 못 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국회 과방위 차원의 청문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등 주요 증인들이 대거 불참을 통보하면서, 청문회가 사실상 무산됐습니다.과방위는 2차, 3차 청문회를 추가로 열어, 선임 과정의 위법성을 따지기로 했습니다.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오후부터 국회 과방위 현장 검증에 출석한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야당 의원들을 향해 "자료를 줄 권한이 없다", "회의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초장부터 기싸움을 벌였습니다.결국 고성이 오갔고, 삿대질도 이어졌습니다.김 직무대행은 곧바로 사과했지만,회의 속기록 등 자료는 줄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현재 '1인 체제'라서, 절차상 회의록을 공개할지 의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야권은 모레 청문회를 열어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이 적법했는지 따질 예정이었습니다.하지만, 김 직무대행 등이 절차 미비 등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하며 다른 날짜를 요구했고, 과방위는 야권 단독 의결을 통해 오는 14일과 21일 2, 3차 청문회를 추가 개최하기로 했습니다.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직무대행 등 22명이 증인으로 채택된 가운데, 국민의힘은 방통위에 대한 업무 방해라고 반발했고, 민주당은 자료를 받을 때까지 청문회를 계속할 거라고 맞받았습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366448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 사용됐다는 빈 투표용지 양식 말고는 국회의 자료 제출 요청을 모두 거절했습니다.'의결이 필요하다' '비공개 회의자료다', 같은 이유들을 내세웠는데, 이러한 거절엔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인 김태규 부위원장은 회의록과 속기록 등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청에 '의결'이 필요하다며 거절했습니다.방통위 회의 운영에 관한 규칙을 보면, 비공개 회의록 등을 제출할 땐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하지만 방통위 규칙보다 우선 적용되는 국회 증언감정법은 '직무상 비밀일지라도 국회의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그런데도 김태규 부위원장은 석연치 않은 이유를 대며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아예 회의 관련 기록이 없다는 취지의 말까지 했다가, 한발 물러서기도 합니다.특히 김태규 부위원장은 국회 과방위의 현장검증 절차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른바 '청사 관리권'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공영방송 3사의 야권 추천 이사 15명은 이사 선임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습니다.이들은 또 "이사진 선임 과정에 대통령실이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향후 국정조사를 통해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366449
작성자 : 정치마갤용계정고정닉
모든 유럽을 지키려고 한 사람
1940년부터 소련은 본격적으로 발트 3국을 병합할 자세를 보였다. 외무위원장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발트 3국이 소련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와 동시에 소련 정부는 발트 3국에 무제한으로 군대가 주둔할 수 있고, 괴뢰정부을 세우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약소국이였전 발트 3국은 이를 수용했다. 리투아니아는 6월 15일에 수용했고, 불과 8시간뒤 6월 16일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수용했다. 소련은 3일만에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발트 3국을 점령했고 각국의 군대는 무장해제당했다. 이후 현지의 공산주의자들을 설득해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할 계획을 세우고, 7월 14일과 15일 사이에는 합병에 관한 조작된 투표가 이루어지고 소련은 이를 통해 자발적으로 3국이 소련에 합병되는 것을 선택했다고 선전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조작된 투표를 통해 에스토니아를 불법 합병한다명목상으로는 에스토니아가 소련을 원하니 보호한다는 이야기지만 사실상 힘에 의한 지배였다7월 21일에는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된다. 이들은 모두 사실상 소련의 괴뢰 국가였다.당시 미국은 소련의 발트 3국 점령을 비난하였다. 소련에게 정복당한 1940년부터 1941년까지 불과 1년 사이에 1만여명의 무고한 에스토니아인이 소위 '반동분자'로 걸러져 학살을 당했다.8천여명이 반체제 인사와 관계가 없는 노인, 여성, 아이들이었다. 불과 1년이란 기간동안 스탈린 치하의 에스토니아는 피비린내는 고통속에 살아야만 했다그러나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합병한지 1년만에 독일제국은 1941년 6월 22일 볼셰비키들의 확장주의에 반격한다.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한 독일은 소련을 침공했다. 그해 1달만에 볼셰비키 군대를 몰아내고 발트 3국 전체를 해방시켰다 소련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무고한 에스토니아 청년 5만명을 끌고 가 볼셰비키 군대의 총알받이로 사용했다당시 에스토니아의 총 인구는 채 100만이 안됬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소련에 대항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저항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많은 집단들은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전략적인 시설물(철도, 다리, 통신 장비, 식품 및 장비 창고 등)을 통제하고 소련의 잠재적인 사보타주로부터 보호했다. 또한 코나스 지방은 리투아니아 활동가 전선(LAF)에 의해 점령되었다. LAF 지도자인 카지스 스키르파는 적어도 1941년 3월 이후부터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립 운동가들은 리투아니아 독립을 선포하고 6월 23일에 리투아니아 임시 정부를 수립했다. 빌뉴스 지방은 29 리투아니아 군단의 병사들에 의해 점령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붉은 군대에서 탈영한 리투아니아 독립군의 병사들이었다.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를 설립하고 발트 3국 국민들은 해방자 독일군을 환영했다. 볼셰비키들의 저항운동도 있었지만 그들은 리투아니아 사회로부터 나오지 못했다. 1943년에 여러 지하 정치 그룹이 "Vyriausias Lietuvos islaisvinimo komitetas" 또는 "VLIK"(리투아니아 해방 최고 위원회)의 아래에서 통일되었다. 그런데 이 위원회는 리투아니아 국민이 아닌 주로 리투아니아 유대인 이민자들이였다현대의 발트3국에서는 여전히 독일이 해방자이며 소련은 침략자다.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선 옛소련 해체로 독립한 이래 연례행사가 되어온 라트비아 나치군단 퇴역군인들의 시가행진이 벌어졌다. 이들은 볼셰비키에 맞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치 군복을 입고 소련군과 싸웠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국민들은 이들을 영웅으로 대접한다.한 노병은 "나는 소련의 볼셰비즘에 저항하는 전쟁에 참여한 용사였다, 2차대전이 시작되자 러시아는 라트비아를 점령했고, 점령자에 맞서 싸우기 위한 해방전쟁에 참여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에스토니아 특수부대의 마크친위대 제20무장척탄병 사단 마크이 전선의 임무는 더 이상 개별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을 보호하고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독일 군인 여러분! 이제부터 제군은 책임감을 갖고 힘든 전투에 돌입할 것이며. 유럽의 운명, 독일국의 미래, 그리고 우리 국민의 생존이 이제 전적으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하느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몇년 후 미군 장군의 후회 나는 우리가 독일인에 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그들을 무장 해제했지만, 우리는 전쟁에서 졌다고 말하고 싶다.우리는 유럽인들에게 자유를 약속했지만(볼셰비키 점령지의 나라에서)그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불명예 그 자체일 것이다우리는 잘못된 적과 싸웠을지도 모른다.우리가 여기에 있는 동안, 우리는 지금 소련군을 몰아내야 해.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그들과 싸워야 할 테니까.언젠가 우리는 소련군과 싸워야 할 것이며 그땐 6년이 걸리고 6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작성자 : Totenkopf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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