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도 아직 살아있고
잊을 만 하면 바이크를 타지만

다음 날 바이크를 타려고 계획을 잡은 날의 밤이면
어김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온다

과연 나는 내일 밤에도 무사히 이렇게
아내와 아이 옆에서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오늘 밤이 내 인생의 마지막 밤인게 아닐까

내일 그냥 타지 말까

차가 나를 밀어서 가드레일을 뚫고
20미터 아래 아스팔트로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고속으로 쏘다가 터널 앞 도로에서 미끄러져
터널 옆 벽에 충돌하는 상상을 한다

맞은편에서 오던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내 눈앞으로 달려드는 상상을 한다

그 순간이 되면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덤프트럭의 그릴을 바라보면서
충돌하기까지 약 1초 정도의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상상을 한다

역시 타지 말걸 그랬어
마누라 말을 들을걸
우리 어린 딸은 어쩌지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내가 알던 극소수의
그리고 내가 모르는 더 많은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라이더들 중에
전날 밤 잠자리에 들 때
그날 밤이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 밤이 될 것을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

6년 전 차에 밀려 4미터 굴다리 아래로
바이크와 함께 추락해서 척추가 아작났던 그 사고 때문일까

만약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라이딩을 앞두고 죽음을 생각하는 증상이 없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이런 게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것인가보다

오늘 밤처럼 그냥 존나 시시한 이 밤이
내 인생의 마지막 밤이 되지 않길 빌며

미세먼지도 쩌는데 무슨 바이크냐고
너는 왜 니 명을 더 줄이지 못해 안달이냐며
바가지를 닥닥 긁는 마누라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내일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조심해서 타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