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자해하며 하닐없이 신림동 고시촌 골목을 어슬렁 거리는걸 하루일과인양 삼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서른살의 여느날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막내 뒷바라지 하시겠다며 시골에서 부모님이 힘들게 버신 돈중 대부분을 내밑으로 닦아넣고 계셨지만, 정작 나도 사는건 고달팠다. 관짝만한 고시원방에 몸을 뉘기 위해 들어가는 월삯에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삼천원 남짓한 고시식당 식권을 하루한장꼴 계산해서 먹어야 겨우 계산이 들이 맞는 서글픈 처지였지만 무슨 오기였는지 오늘은 사치를 누려보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먹고 저어기 골목에서 풍겨오는 닭튀김냄새을 좇아 가게안으로 들어갔다.

\'팔천원이요. 십분정도 걸려요.\'

초벌로 튀겨놓은 닭들의 고소한 기름냄새에 혼이나간채로 계산을 마치고 가게 구석진 자리에 앉아 조금이라도 빨리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티비음악채널에는 더이상 누군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요즈음의 최고인기가수라며 팔리고 있었고, 건넛편 단체석 자리엔 앳띈얼굴의 여자아이들 여럿이서 티비를 보며 그 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있었다.

문득 \'지금 인기있는 가수나 노래가 뭔지 모르면 그때 넌 아재가 된거다\' 라는 언젠가 보았던 누군가의 실없는 농짓거리가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내가 떠나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난 아재가 되어 있었다.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괜시리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애당초에 다른사람들 시선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스스로 수치스러움에 어쩔줄 몰라 대가리만 수풀에 쳐박은 장끼새끼처럼 군것이 아니었던가?

부스럭거리는 비닐의 마찰음에 정신을 차리고 계산대를 보니 주문한 닭튀김이 때마침 포장이 끝난 참이었다. 비닐봉지를 들고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와 고시원으로 향했다. 서글픈 내 기분과는 상관없다는듯 치킨은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