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로 기억한다. 10년도 더 된 날이었지만 아직도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나보다 커다란 덩치에 둥그스름한 머리통, 쭉 째진 눈에 턱이며 뺨에 무성한 수염자국...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면 "안녕하세요, 가면라이더입니다. 섹스!" 라고 외쳐준다는 글을 봤었는데 그 인사는 나한테는 안 해주더라. 내심 기대했었는데 서운했다. 먼 곳에서 왔다고 수줍은 듯 이래저래 날 챙겨주고 같이 카페에서 음료수 마시던 모습이 네 첫 인상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네 모습은 많이 달랐다. 온갖 트러블이란 트러블 다 일으키고 다니고 욕도 먹고 하던 바갤에서 비춰지던 모습과는 달리 오프라인에서는 수더분했고, 예의 바르게 나에게 대해줬다. 나도 그런 네가 좋았다. 이유 없이 그냥 너라는 사람이 참 마음에 들었다. 너한테 밥도 해주고, 그 밥 부족해서 같이 네 G5 타고 돼지국밥도 먹으러 가고... 며칠 같이 지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참 잘해줬었다.

여자친구 생겼다는 말에 솔직히 '니가?' 라고 생각도 했었다. 잘나지도 않은 얼굴에 생전 연애도 안 해본 놈이 갑자기 여자친구 생겼다고 했을 때 의아했었다. 그리고 네가 여자친구를 나에게 소개 시켜줬을 때 솔직히 놀랐다. 그분은 그때도 지금도 참 참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너를 배려해주시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너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분을 만나고 결혼까지 했으니 네 인생 최대 업적이자 자랑일 거다. 

네 결혼식 날 많은 사람들이 네 결혼을 축하해주러 왔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결혼식장이 바갤 정모처럼 보였다. 온라인에서의 가면라이더와 오프라인에서의 너는 참 많이 달랐기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 받으면서 결혼했었다. 

9년 전 전국에서 바갤러들 모였을 때 너도 함께 있었다. 다 같이 온천 갔었는데 솔직히 그때는 '이 새끼가 나한테 비누 주우라고 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서웠었다. 그 정모 때 러브젤 들고 온 나도 미친놈이었지만... 그거 들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 잡아서 상의 벗겨줄 때 내심 고마웠다. 너한테 붙잡힌 게 내가 아니어서.

마지막으로 널 만난 게 2년 전 봄이었다. 그 사이 너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됐고, 전날 술에 진탕 취해서 제정신도 아닌 놈 뭐 이쁘다고 시간 내서 만나러 와줘서 참 고마웠다. 나 해장 해야 한다니까 일부러 짬뽕 맛있는 집 소개해주고 같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네 집 앞까지 갔었다. 7개월 된 막내 딸내미를 안고 나온 네 모습이 나한텐 생경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능숙하게 아기를 안고 달래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새 네가 나보다도 어른이 됐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네가 이제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됐다.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해주는 사람 남기고서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간 게 네 인생 최후이자 최악의 죄가 됐다. 온라인에서 키배를 뜨건 섹드립을 치건 마지막으로 야짤을 올리건 이런 건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게 됐다. 사진 속에서 그렇게 활짝 웃는 놈 얼굴 한 번 보고, 힘들게 웃는 얼굴로 조문객들 맞이해주는 제수씨 보니까 네가 참 밉더라. 제수씨랑 애들 남은 평생 힘들도록 만든 게 네가 지은 가장 큰 죄이자 업보다. 

네 장례식 날도 네 결혼식 날처럼 바갤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 사람들 만나면서 네가 참 한결같이 살았다 싶었다. 형 동생들 다 불러다 놓고 밥 먹이면서 겸상도 안 하니 넌 나쁜 놈이다 진짜.

언제가 됐건 다시 볼 테니까 그때까지 좋은데 가있어라. 종종 가족들 꿈에라도 나타나서 달래주고. 여유 있으면 나한테도 한 번 와줘라.

먼 길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