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은 어부바 사건'과 북 ICBM 개발 성공
지난 2017년 3월 북한 관영 언론 매체들은 일제히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정과 관련해 '초유의 사건'을 보도했다. 동창리 발사장에서 실시된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일명 백두산 엔진) 지상연소시험에 성공하자 김정은이 과학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직접 업고 격려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이다. '최고 존엄'으로 우상화된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누군가를 직접 등에 업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공개 석상에서 누군가를 업어준 적은 없었다.
당시 김정은은 신형 엔진 시험 성공을 '3·18혁명'으로 부르며 흥분했다. 그가 전에 없이 흥분한 이유는 뒤에 드러났다. 북한은 그해 7월 화성-14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11월엔 화성-15형 ICBM 발사에 각각 성공해 미국의 예민한 반응을 초래했다. 이들 ICBM 성공에는 백두산 엔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정은이 업어줬던 과학자 등이 백두산 엔진 개발에 실패했더라면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ICBM 카드는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북 미사일 7차례 실패에도 문책 없어
북한 국방과학기술자들에 대한 김정은의 이례적인 예우는 이뿐 아니다. 북한은 2016년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을 8차례 시험 발사했지만 단 한 차례만 성공하고 7차례나 실패했다. 고사총으로 사살하는 등 잔혹한 숙청과 처벌을 일삼았던 김정은의 전례에 비춰보면 무수단 개발자들은 숙청됐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수단 실패에 따른 숙청이 있었다는 얘기는 현재까지 그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반면 화성-12·14·15형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을 때 김정은은 과학기술자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대규모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등 극진한 보상을 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각별한 과학기술자에 대한 배려가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성공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등에 대응하는 우리 전략무기를 개발하는 총본산은 ADD(국방과학연구소)다. 지난 6일로 창설 50주년을 맞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일방적인 주한미군 철수 등에 대응해 자주국방을 기치로 내걸고 1970년 만들어졌다. 초기엔 소총, 총탄, 박격포 등을 겨우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세계 정상급 전차와 자주포, 경(輕)공격기와 헬기, 잠수함, 이지스함을 비롯한 각종 함정을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국방연구개발비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방연구개발비 규모는 세계 5위, 국방과학기술 수준은 세계 9위로 평가되고 있다. 국방비 대비 국방연구개발비 비율은 7.2%로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다. 영국, 러시아. 이스라엘, 일본, 중국보다도 높다.
하지만 ADD가 북한 핵미사일 및 주변 강국의 위협에 대비한 고슴도치의 '가시'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적지 않다. 우선 연구개발 특성상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연구개발은 항상 실패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것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창설 5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ADD를 방문한 자리에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연구라는 것은 국방과학 연구뿐만 아니고 모든 과학의 연구 또는 기초연구까지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해 가면서 그 실패를 딛고 발전해 가고 드디어 성공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구원들은 "통수권자가 공식적으로 '실패 용인'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라고 반기면서도 "과연 가까운 시일 내 실현될 수 있을까" 하며 반신반의하는 듯한 분위기다. 앞서 방위사업청은 지난 2017년 방위사업법에 '성실한 연구개발 수행의 인정' 조항을 신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연구개발에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이른바 '성실실패' 제도를 도입했다.
푸틴 "북한 핵 포기하지 않을 것"
그럼에도 그해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ADD 연구원들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한다. 당시 ADD가 개발 중이던 차기 군단급 무인기가 연구원의 실수로 추락하자 연구원들이 무인기 가격 67억원을 변상하라고 방사청이 통보했던 것이다. 연구원 1인당 평균 13억4000만원을 물어내라는 얘기였다. 그러자 ADD는 물론 과학기술계에서 "연구개발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연구원들에게 손해배상까지 요구하면 어떻게 소신껏 연구개발을 할 수 있겠느냐"는 강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연구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는 철회되고 징계도 없었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연구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한다.
북한에 호의적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북한은 풀을 뜯어 먹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만큼 북한이 핵을 100%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김정은의 핵 도발을 억제할 이른바 '한국형 비대칭 전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공개된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4~5t 이상 탄두를 가진 '괴물 벙커버스터' 현무-4는 이런 무기의 새 모델이라고 할 만하다. 정경두 국방장관도 언급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비롯, 위성요격무기, 대함(對艦) 탄도미사일, 레이저 및 전자기파 무기, 사이버 무기 등도 한국형 비대칭 무기로 꼽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방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종의 국가 전략자산으로 간주하고 신나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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