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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웩우웩 독일 녹색당....흑역사 레전드.....jpg
꺄아아아아아아악!!!!! 당시 선거 홍보 문구 클라스 ㄷㄷㄷㄷ 당시 녹색당 의원의 만행...!! 으아아아아아아악!! 씨이이이바아아아알!!! "어린이도 섹슈얼리티의 권리가 있다!" "어린이들의 해방된 성욕은 독일 사회의 민주화를 이끈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 당시 베를린시와 협력해 고아들을 소아성애자에게 입양..!! 본인도 3명 입양했다고 함..!! 구아아아아아아악!! '오덴발트 학교'에서는 아예 소아성애 전용 성교육도 가르침 ㄷㄷㄷㄷ 결국 2014년에 녹색당 당대표가 과거를 공식적으로 사과....!! 대단하다 게르만!!
작성자 : ㅇㅇ고정닉
키리시탄 동굴 예배당(타케타) 방문기
[시리즈] 힙스터의 힙스팟 방문기 2 · 고오야 종유동(다가와) 방문기 · 오지 온천(오이타) 방문기 · 텐넨지(분고타카다) 방문기 · 센닌유(분고타카다) 방문기 · 슈조오니에(도깨비 축제) 방문기 · 두루미 관측소(이즈미) 방문기 · 히라도 성(히라도) 방문기 · 아카사키 해상 초등학교(츠나기) 방문기 타케타... 오이타에 온 내내 계속 가보고 싶어했던 도시인데, 태풍크리 때문에 못 가고, 운휴한 뒤에 복구하는 데에도 시간을 쓰느라 예정했던 날로부터 3일이 지나서야 가보게 되었다. 호히 본선(구마모토~오이타)에서도 특히 아소산부터 나카한다 사이의 구간은 태풍이 왔다하면 꼭 한 곳은 박살이 나버려서 운휴하는 구간이라 은근 운이 따라야 함. 진짜 기대 엄청했음... 타케타 가는게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지... 참고로 규슈 최고의 낭만 노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함. 잘 박살난다던 '나카한다 ~ 아소' 구간은 빽빽한 숲을 지나고 쿠주 고원의 강변을 구비구비 가는 그 풍경이 진짜 예쁘다. 괜히 아소보이나 큐슈횡단특급이 유명한게 아니라는거~ 뭔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던 분고타케타역. 괜히 역 이름에다 분고를 붙여놔서 분고타카다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라. 기차에서 내리면 건너편 바위 산이 바로 보이는게 역의 특징임. 사진보다 좌측에는 시모기 폭포가 있어서 꽤 구경거리였다고 하는데, 여름+태풍 때문에 폭포가 말라버려서 나는 못 봤음. 여튼 그 폭포 옆에는 이와시타히부스 이나리 신사가 있다. 저기에 먼저 볼일이 있으니 저기부터 가보자. 분고타케타 역. 기차도 별로 안 지나다니는 소도시의 역 치고는 무쟈게 큰 편임. 태풍 때문에 토리이가 넘어져 있었음. 나는 뭔가 절벽이나 동굴에 만든 신사/절이 너무 좋다. 그냥 비밀스럽기도 하고, 어쩌다 찾은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통할 거라 믿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신사에서 바라본 타케타시. 정류장 사진이 기가 막히게 찍히더라. 이제 신사에서 나와 옆의 샛길로 걸어가보자. 시타기 석불이 있다. 사진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왼쪽은 불교의 신 중 하나인 비샤몬텐이고, 오른쪽(사진 중앙)에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은 정체불명의 부처다. 키리시탄 관련으로 왔으니 이것도 직접 보기로 한건데, 부식이 너무 심해서 얼굴만 겨우 보이는 정도;; 왜 관리를 안하고 방치해버렸을까. 지붕만 하나 놔줘도 해결됐을 텐데... 2008년에는 이렇게 뚜렷하게 보였었음(2021년까지도 모양은 보였다). 저게 정체불명의 부처인 이유는; 광배가 묘하게 날개처럼 생겼고, Ω 모양으로 모아 기도하는 손 모양 때문에 부처가 아니라 기독교의 천사라고 주장이 있기 때문. 타케타에는 이렇게 기독교가 민속 신앙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되는 유물들이 곳곳에 있음. 태풍 직후라서 날씨가 걍 미침. 강가라서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38도긴 한데 강 주변은 시원했다. 이때 여기만큼 파릇파릇한 일본은 1번도 겪은 적이 없었다... 타케타 시립 역사문화관에는 오카 성과 조카마치(지금의 타케타 시내)를 엄청 멋지게 그린 병풍회화가 있었는데 사진을 못 찍으니 눈으로만 담아야 했던게 아쉬웠음. 박물관 뒷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타노무라 타케타의 저택이 있다. 타케타시의 주요 관광지인 오카 성, 역사문화관, 타케타 저택, 타케타 온천은 스탬프지로 전부 연계 할인도 된다. 꽤 유용했음. 강렬한 여름(38도) 햇빛을 피하러 왔었다... 에도시대 후기 미술가인 타노무라 타케타. 타케타의 부케야시키도 나름 볼만함. 동네 자체가 평지는 아니다 보니까 부케야시키가 꽤 구불구불하게 구획된 게 특이했음. 여기서 좀 더 구석으로 들어가면 목적지인 '키리시탄 동굴 예배당'이 나온다. 간판도 있어서 찾고자 한다면 지나칠 일은 없다. 찾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 없을 뿐... 아마 그 시절에도 그런 느낌 아니었을까. 간판을 따라 구석에서 또 구석으로 들어가면... 그 구석의 구석에서 비밀 교회를 찾을 수 있다. 전국시대에 오카 성을 다스리던 시가 가문이 키리시탄이었어서 타케타에는 키리시탄이 꽤 많았다고 함. 특이한 점이라면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천주교가 완전히 금지된 뒤에도 시가 가문이 이들의 존재를 탄압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얘기가 전해짐. 나름 유명한 증거가 바로 '산티아고의 종'이라는 유물인데, 키리시탄 금지령이 내려지기 직전에 주조되어 타케타에 선물되었던 종이 메이지 유신 때 오카 성을 허무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 참고로 지금은 앞의 타케타 역사문화관에서 가끔 꺼내서 전시하고 있다. 사실 종을 왜 보관했느냐를 묻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문제인데, 일본의 천주교인들은 타케타의 키리시탄들이 비호받은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잘 숨겨져온 역사 덕분인지, 아니면 우연일 뿐인지, 타케타의 카쿠레키리시탄은 그대로 잘 지내다 대가 끊겨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가 되버렸다. 이 예배당도 다른 용도로 쓰였다기엔 너무나도 교회 같으니깐 예배당으로 추측할 뿐이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원형(동굴을 내부로 삼고 목조로 외관을 지은 걸로 추정)은 어떻게 생겼는지와 같은 원론적인 추측마저도 없는 듯함. 그래도 뭔가 와보고 싶어했던 곳에 와서 성취감은 좋았음. 이제 타케타의 명소인 오카 성터로 향해보자.
작성자 : 엉겅쿤고정닉
北 서울대병원 대학살, 이제야 '학살'로 인정..후속 사업 추진
https://news.nate.com/view/20250331n01053 [단독] 北 6·25때 서울대병원 1000명 총살…진실화해위 이제야 '학살' 인정 : 네이트 뉴스 한눈에 보는 오늘 : 사회 - 뉴스 : 6·25전쟁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북한 인민군이 우리 부상 군인과 민간 환자 1000여 명을 살해한 사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후문에 세워진 위령비.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위령비는 1963년 6월 20일news.nate.com1. 북한군이 서울대병원의 민간인+부상병 1000여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1950년 6월 28~29일에 있었던 사건.2. 당시 학살에는 북한군 뿐만 아니라, 남한내 암약하는 극좌 반한(反韓) 친북 세력도 가담하여 북한의 학살에 부역했다.2. 정부 기구인 진실화해위는 과거에는 이 사건을 외면했다.3. 그러다가 이번에 공식적으로 '북한군에 의한 학살'임을 인정하고4.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 실시, 관련 지원사업 실시, 북한에 의한 사과 및 보상 요구, 국제인권기구에 보고서 제출 등 외교활동 을 추진한다고 함.- 국군·어린이·환자·보호자 1000명 학살… 인민군의 '서울대병원 만행'을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06/23/2022062300136.html오늘 그씨에 나온 기사 내용거물 간첩 송두율 윤석열 대통령 빨리 탄핵하라고 주문 [현장] 국군·어린이·환자·보호자 1000명 학살… 인민군의 '서울대병원 만행'을 아십니까? 1950년 6월28일, 남침 사흘 만에 서울에 진입한 인민군은 곧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인민군은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등 1000여 명을 학살했다. 23일 오전 서울대병원의 충혼탑에서 이들을 추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서울대병원 학살 추념식, 23일 병원 내 충혼탑서 거행 서울대병원학살사건 72주기 추념식이 23일 오전 11시부터 고교연합 여고국 주최로 병원 내 충혼탑 앞에서 열렸다. ...www.newdaily.co.kr1950년 6월28일, 남침 사흘 만에 서울에 진입한 인민군은 곧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인민군은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등 1000여 명을 학살했다. 23일 오전 서울대병원의 충혼탑에서 이들을 추념하는 행사가 열렸다.서울대병원 학살 추념식, 23일 병원 내 충혼탑서 거행서울대병원학살사건 72주기 추념식이 23일 오전 11시부터 고교연합 여고국 주최로 병원 내 충혼탑 앞에서 열렸다. 고교연합여고국·세계어머니연합·간호사회·참바른세상·세계한인애국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 명은 이날 추념식을 통해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추념식 취지와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안정선 고교연합 여고국장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충혼탑을 가리키며 “이 탑은 1963년 7월29일 한국일보가 ‘전국 반공애국유적 부활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안 국장은 “그동안 학살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 주관으로 매년 6월5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열었다. 2014년부터는 행사를 통합해 매년 6월28일 전후로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면서 “무려 1000여 명이 숨진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이 이상하게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서울대병원학살사건… 보도연맹사건 촉발한 6·25 첫 전쟁범죄안 국장에 이어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의 유족이 당시 상황에 관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안 국장의 이야기를 포함해 설명하자면 서울대병원학살사건은 6·25전쟁 과정에서 처음 발생한 학살이자 전쟁범죄였다.인민군은 남침 사흘 뒤인 28일 서울에 진입했다. 인민군은 이날 미아리고개를 넘어 서울로 진입한 뒤 종로구에 있던 서울대병원으로 쳐들어갔다. 오전 8시 무렵이었다. 당시 병원 점령에 나선 것은 ‘서울 근위 류경수105땅크사단’의 전신인 제9땅크여단이었다.인민군이 병원을 점령하려 하자 병원 경비를 맡았던 국군 1개 소대와 부상병 가운데 총을 들 수 있는 사람 80여 명이 병원 뒷산으로 가서 저항했다. 국군 소대는 남모 소위, 부상병은 민모 중사가 지휘했다. 하지만 이들은 중과부적으로 모두 사살당했다. 이후 인민군은 병원으로 들어와 국군 부상병을 무차별 학살했다.당시 서울대병원에는 서부전선에서 부상당한 국군 장병 수백 명이 치료받고 있었다. 인민군은 처음에는 병실을 돌며 국군 부상자를 확인한 뒤 총으로 먼저 쏘고 총검으로 확인사살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번거롭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에는 국군 부상병을 병실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무차별 사격해 살해했다.인민군은 이것마저 귀찮다고 여겼는지 나중에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죽였다. 정신병동 입원 환자와 소아과 병동의 어린이, 그리고 보호자들까지 살해했다. 인민군은 이후 병원을 샅샅이 뒤져 숨어 있던 환자 등을 끌어내 10여t의 석탄더미 속에 생매장했다.증언 내용 가운데 충격적인 대목은 당시 인민군 앞잡이들이 전쟁 전 월북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민군 군의관이 돼 병원으로 들어와 국군 부상자, 반공 성향의 의사와 간호사, 직원 등을 분류해 주며 학살을 도왔다고 한다.자신의 이모로부터 서울대병원학살사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최롱 씨는 “당시 (서울대병원) 의료진 40%가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이었다고 한다”며 “이들은 인민군이 쳐들어온 뒤 완장을 차고 다른 의료진에게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전했다.“같은 해 9월 서울이 수복된 뒤 미군이 서울대병원 학살 현장을 정리했는데 당시 수습한 유골만 1000여 구였다”고 소개한 최씨는 “이 가운데 국군은 적어도 400~500명은 되지 않았겠나 하는 것이 이모님의 추측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남로당 의료진은 다른 의료진에게 “서울대병원 학살에 관해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는 협박도 했다. 인민군은 학살을 숨기려 했는지 6·25 발발 직후 병원 환자 명단과 진료기록을 모조리 없애버렸다고 한다.보도연맹사건 촉발한 서울대병원 학살과 서울 시내 학살당시 우리 정부는 서울대병원학살사건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에 진입한 인민군이 좌익세력의 도움으로 군인·경찰· 공무원·교사와 그 가족을 찾아내 집단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에 정부는 당시 관리 중이던 ‘보도연맹’ 조직원들을 제거했다. 인민군이 우리 국민을 무차별 학살하지 않았다면 ‘보도연맹사건’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작성자 : JackFED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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