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베 전총리가 산탄총에 맞는 일이 생기고 말았어.
꽤 예전꺼긴 하지만 치안 순위 3위인 나라에서 총격이라니 믿기 어렵지?
전총리가 산탄총 맞고 쓰러지는 나라가 3위라고여?
치안은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대낮에 전총리를 암살하더라도
남미 이런 곳보다 낫기 때문에 3위인거야..
사실 한국과 비교해서 본다면
일본의 치안이 마냥 좋은 건 아니야
야쿠자도 있고
세계 TOP10위안에 드는 환락가도 존재하고
CCTV 설치 갯수도 한국에 비해 현저히 부족해 (수도만 놓고 봤을때 한국은 40위, 일본은 70위)
땅덩어리가 커서 관리도 힘들고, 이래저래 한국보다 치안이 좋을 수 없는 이유지
그렇군요. 근데 한국은 얼마 전에 길거리에서 목에 칼빵 놓던데?
네이놈!!!!!!!
야쿠자가 길거리에서 자동소총 30발을 난사한 나라가 할말이냐?
그, 극히 일부의 사례거든요?
또 쐈네?
또또 쐈네?
또또또 쐈네?
야
...
더 씨부려봐
총기 허용 국가면 총기 사고 좀 날 수 있는거죠..
일본도 사실상 총기 허용 안 하는 나라인데?
이러한 일본인의 총기 사랑은 꽤나 예전부터 이어져왔다
그중 레전드는 도쿄 시부야(渋谷)에서 18세 소년에 의해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소년 라이플마 사건 (少年ライフル魔事件) 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사건이다.
사건은 1965년 7월 29일 오전 11시, 카나가와(神奈川) 현 야마토(大和) 시의 경찰서로
"숲 속에서 어린 아이가 공기총을
쏘면서 놀고 있다" 라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신고는 범인인 당시 18세의 야마모토(가명) 라는 소년이 일부러 경찰을 끌어들이기 위해
허위로 낸 것이었고,
당시 처음으로 출동한 순경의 가슴에 총을 한 발 쏘고는 두부(頭部)를 수차례
개머리판으로 강타하여 살해했다.
처음부터 범인의 목적은 경찰이 가진 리볼버를 뺏는 것이었고,
그 당시 일본에서는 총을 손에 넣기 위해
경찰을 습격하는 사건이 제법 있었던 편이다.
그렇게 범인은 권총 한 정, 실탄 5발, 경찰수첩, 수갑을 획득했고, 제복도 손에 넣으려고 했으나
피 때문에 더러워져서 상의는 포기하고 바지만 빼앗아 갈아입었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온 순경 2명 중 한 명에게 하복부 관통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본래 계획은 일본인의 얼굴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외국인의 차량을 빼앗아 도주하는 것이었으나,
뒤이어 달려온 경찰의 반응이 빨라서 이 부분은 수포로 돌아간 것
그래서 대신 범인은 경찰로 위장하여 사건 현장 근처의 민가로 들어가
당시 34세의 남성에게
"이 근처에 총격사건 때문에 범인이 도주했다. 차량을 징발해서 쫓겠다." 라고 속여 도쿄
마치다(町田)시 인근으로 이동했다.
12시 5분, 물론 범인의 기대와는 달리 경찰이라고 믿은 남자는 범인을 파출소 앞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줬다.
남자가 차에서 내려 총기 사건의 범인에 대해 물어보려고 경찰에게 다가서자 순경은 총을 겨누기 시작했다.
이미 범인이 경찰의 총과 바지, 경찰수첩 등을 강탈해서 이동 중이라는 사실이 전파되었기 때문이었지.
범인은 남성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한참을 대치하다가
마침 교차로에 서 있던 29세의 다른 남성의
차량을 발견하고 그를 협박해서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범인은 이런 식으로 3차례에 걸쳐 차량을 강탈해가며 오후 3시 30분 경, 시부야 방면에 도착했다.
범인이 굳이 다른 도주로가 아닌 시부야를 택한 이유는 범인의 단골 총포상인 로얄 총포화약점을 점거하고
탄약을 보충하기 위해서였지.
로얄 총포상 안에는 65세의 사장(남) 과, 16세 남자 직원,
그리고 21살의 여직원과 여동생(16세)이
있었다.
매대에 있던 여직원이 범인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으나,
범인은 바로 총을 들이밀고 가게에 샘플로 놓여있었던
45구경 S&W 권총탄 1발을 보충한 뒤, 3자루의 라이플을 빼앗았다.
그 시점에서 이미 주위에는 경찰차 50대, 장갑차 10대, 헬기 2대를 포함한 총 580명이 가게를 포위하고 있었다.
대치가 지속되자 안 그래도 번화가인 시부야에 구경꾼들이 몰려 그 수가 약 5000명을 넘었고,
이는
전철, 버스 등이 전면 통제된 탓에 계속 늘어났다.
한편, 범인은 침착하게 인질을 고기 방패로 이용하며 지속적으로 위협사격을 가했다.
당시 경찰은 범인의 라이플 사정거리나 사격 실력을 낮추어보고 반경 100m 까지를 통제선으로
정했으나,
최대 500m 까지 몰려드는 구경꾼이나 경찰이 하나하나 맞기 시작해서 총 1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구경꾼들은 오히려 총소리를 듣고 달아나기는 커녕 더 몰려들었다고 하니...
그저 개좆본....
한편 범인은 직원들에게 탄셔틀을 시키면서 사격을 즐기고 있었고
총격전이 시작된 지 50분 정도, 종업원에게 맥주를 가져오라고 하는 등 침착하게 농성을 하던 범인은
현재 상태를 오래 지속하기 보다는 도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경찰에게 헬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경찰 측도 범인의 사격이 뜸해진 틈을 타서 기동대 일부를 가게 뒷 편으로 우회시키는데 성공했지.
경찰의 계획은 범인의 측면으로 돌아가 창문으로 최루탄을 투척한 뒤 무력화시켜 체포하자는 거였어.
농성 시작 후 약 1시간 정도 경과한 오후 7시 13분,
기동대가 투척한 최루탄에 의해
가게 내에 최루 가스가 발생했지만 범인은 완전히 무력화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경찰이 순순히 헬기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범인은
여직원 자매에게 될 수 있는 한 많은
탄약을 가지고 오게 한 뒤
경찰차를 탈취해 도주할 계획을 세웠지.
그러나 최루 가스와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두 자매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사이
범인은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는다.
범인의 통수를 친 건 바로 인질이었던 총포상 직원.
비록 탄은 없었지만 라이플의 개머리판으로 범인을 때려 눕힌 뒤 남직원은 그대로 도주했다
화가 나서 도주하는 인질을 향해 라이플을 난사하던 중 생각보다 탄약이 금방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리고 여직원 자매에게 다시 재장전을 시키려던 순간.
나랑께?
범인의 뒤에는 이미 우회에 성공한 형사 한 명이 버티고 있었어.
용감하게 범인에게 달려들어 제압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아직 범인에게는 경찰에게서 탈취한
권총이 남아 있었지.
범인은 두 발을 형사에게 발사했고, 1발은 뺨을 스쳤으나, 한 발이 좌측 가슴에 명중하여 중상을
입혔다
범인 체포 직전의 사진
그러나 비장의 카드까지 다 써버린 범인이 더 이상 버틸 여력은 없었고 마지막으로 경찰차를 탈취하려고
도주를 시도했지.
하지만 몇백명이나 되는 경찰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고
결국 오후 7시 20분, 범인은 달려온 체포되었다.
범인이 쏜 것만 총 130여발을 넘는 치열한 인질극이 이렇게 막을 내린 셈이지.
당시 18세 정도의 소년범 사건이 적은 편도 아니었고,
경찰이 총기를 탈취당하는 사건 자체가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시부야 같은 번화가를 무대로 대규모의 경찰과 대치하며 시가전과 같은 상황을 만든 사건은 전무했기 때문에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지.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범인은 이미 5살 때 우산과 폭죽을 조립해서 총기와 비슷한 장난감을
만들어 놀기 시작할 정도였다고 해.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스스로 사전을 찾아가며 미국 총기도감을 읽을 정도였고,
특히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의 거장
오야부 하루히코의 소설 윈체스터 M70 즐겨 읽었어.
진술 조서에도 한 명의 경찰관을 죽이고 몇 명의 경찰에게 부상을 입힌데 대해
"그 때, 2명의 경관을 오야부의 소설 주인공처럼 비정하게 먼저 죽였으면 나았을 것이다.
정을 가지고 도망쳐줬으면 하고 생각한 것이 실패였다."
라고 말하는 등 하드보일드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던 모양이야.
단순히 총을 쏘고 싶다는 이유로 자위대에 지원한 적이 있으나 시험에서 불합격, 이후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막연한 증오심을 가지기 시작했지.
특히 누나 명의로 총기를 구입했다가 후에 자신의 명의로 등록한 뒤 몇 번이고 경찰에게
검문을 받은 것에 대해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사건의 발단 단계에서 경찰을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이러한 경찰에 대한 증오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지.
1967년 4월 13일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고,
이 때 범인은 제발 자신을 사형시켜달라고 하는가 하면
차라리 자신을 베트남 전에 참전시켜달라는 등의 진술을 했어.
당시 재판부는 이런 진술이 "스스로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죄를 뉘우치고 있는 모양이구나" 라고 순진하게
받아들여서 무기징역을 선고했지.
1968년, 2심에서도 이같은 발언이 이어졌고
"총에 대한 매력은 지금도 역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사형시켜줬으면 한다."
라고 강조, 결국 범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어.
범인이 사형해달라고 졸라서 사형이 선고 된거지...
그렇게 1969년 10월 2일 상고가 기각됨으로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1972년 7월 21일 25세의 나이로 범인의 사형이 집행되었어.
훗날 이 사건은 당시 일부러 총격전 현장까지 가서 구경하다가 눈 앞에서 사람이 총에 맞는 걸
목격한 전 도지사 출신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
증오의 저격자에 비교적 상세히
그려져 있어.
여담이지만 이시하라는 범인에게 상당히 매료되어서
"소년이 시가전을 벌인 것은 사회체제에 대한 막연한
불만과 증오를 표현한 순수한 행동이다." 라고 주장하며 실제로 두 차례 정도 법무대신에게 감형을 탄원하기도
했지.
총을 쏘고 사람을 죽였는데 무기 징역때린 법원이나 감형해달라는 일본인이나..
아무튼 이 사건은 패전 이후 일본 최초로 미성년자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진 첫 사건이며, 훗날
나가야마 노리오 연속사살 사건의 범인이
그 당시 현장 가까이에서 일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따금 이 사건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았어.
아 그저 무섭다
총의 민족 킹 갓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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