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줄 서고 디스크 거래까지…'포켓몬 가오레' 게임 요지경
최고 '5성 포켓몬' 디스크 20만 원에 거래, 초등생 돈 거래에 사기 피해도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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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한국] “5성 디스크 거래합니다.” 대형마트의 포켓몬 가오레 게임기 앞에 자리를 깔고 앉은 초등학생들이 장사꾼처럼 외쳤다. 30대 여성이 아이의 가방을 메고 달려와 헐레벌떡 줄을 섰다. 뒤따라 온 아이는 “오늘은 사람이 적다”고 좋아하며 엄마 옆에서 가져온 낚시 의자를 펴고 앉았다. ‘포켓몬 가오레’가 만든 요즘 마트의 흔한 풍경이다.
대형마트에 설치된 포켓몬 가오레 게임을 즐기는 초등학생의 모습. 사진=박해나 기자
#부모들이 대신 ‘오픈런’, 게임기 운영사는 업무 마비
포켓몬 가오레 게임의 인기가 뜨겁다. 포켓몬 가오레는 포켓몬스터를 공격해 포획하는 아케이드 게임이다. 2016년 일본에서 출시된 이 게임은 지난해 8월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전국 대형마트와 쇼핑몰, 장난감 판매점 등 200여 곳에 게임기가 설치돼 있다.
게임 속 포켓몬은 1성부터 5성까지 무작위로 등장하는데, 버튼을 빠르게 눌러 공격하며 포획할 수 있다. 포획한 포켓몬은 ‘포켓몬 디스크’로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 특징. 포켓몬 디스크에는 QR코드 기술이 적용돼 있어 게임기에 스캔하면 해당 포켓몬을 꺼내 공격도 가능하다.
게임기 앞에 앉으면 몇만 원을 쓰는 것은 순식간이다. 포켓몬 가오레의 1회 게임비는 1500원이지만 게임 중 여러 차례 만나게 되는 포켓몬을 포획해 디스크로 얻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1500원을 투입해야 한다.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들이 목표로 하는 가장 높은 등급인 5성 포켓몬을 잡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5성 포켓몬은 자주 나타나지 않고, 나타난다고 해도 잡기가 힘들다 보니 장시간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도 한 마트에서 만난 이 아무개 군(12)도 동전교환기에서 1만 원을 교환해 게임기 앞에 앉았다. 이 군은 “오랜만에 포켓몬 가오레 게임을 하러 왔다”며 “일단 1만 원만 교환했다. 가방에 3만 원이 더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도 “한 번 할 때마다 몇 만 원을 쓰는 것은 기본”이라며 “10만 원을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포켓몬 가오레 인기는 올해 초 ‘포켓몬 열풍’이 불면서 급상승했다. 주말이면 게임을 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게임기 앞에 수십 명씩 줄을 서곤 한다. 대기시간이 길다 보니 낚시의자, 캠핑의자 등을 챙겨와 기다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대기시간을 줄여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녀들을 대신해 게임을 하려는 부모들이 아침 일찍 마트 등을 찾는다.
한 게임 이용자는 “아이가 학원에 가야 하는데 게임을 하겠다며 1시간이 넘도록 줄을 서는 것을 보고 대신 서주기로 했다”며 “아이를 등교시킨 뒤 마트로 달려와 게임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켓몬 가오레 열풍에 게임기 운영사는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포켓몬 가오레 기기를 운영하는 장난감 전문 기업 티아츠코리아 관계자는 “포켓몬 가오레 인기가 높아지면서 회사로 관련 문의와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담당 부서는 전화 응대를 하느라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담당자들이 전화를 차단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라며 “밤새 게임을 하고 싶으니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 기기를 설치하라는 항의 전화부터 자녀 대신 게임 관련 문의를 하는 부모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온다”고 털어놨다.
게임 이용자가 늘며 ‘포켓몬 디스크’ 수급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관리자가 일정 기간마다 게임기를 점검하며 기기에 디스크를 채워 놓는데, 디스크 소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며칠씩 기기 운영이 중단될 정도다. 티아츠코리아 관계자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지역을 나눠 기기를 관리하는데 너무 빠르게 디스크가 동나다 보니 수급까지 공백이 생겨 일시적으로 게임기 운영이 중단되기도 한다”며 “최대한 빨리 디스크를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켓몬 가오레 인기가 높아지면서 기기의 디스크 소진 속도가 빨라져 며칠씩 기기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사진=박해나 기자
#청소년 사기 피해도 속출하는데 “이용자끼리 거래 단속 힘들어”
일각에서는 포켓몬 가오레의 과열 양상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청소년 사이에서 게임 디스크를 사고파는 거래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높은 등급의 인기 포켓몬 디스크는 희소성이 높다 보니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디스크를 두고 가격을 흥정하며 돈거래를 일삼는 행태가 늘어나고 있다.
김 아무개 군(11)은 “포켓몬 가오레 게임에 지금까지 20만 원 이상 썼다. 그런데 아직 5성 디스크를 갖지 못해 오늘은 거래하러 나왔다”며 “게임을 하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5성 디스크를 판매하라고 얘기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티아츠코리아 관계자도 “예전에는 장당 4만~5만 원에 거래되던 것이 최근에는 15만~20만 원까지도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사용자는 “게임기 앞에서 ‘몇만 원에 디스크를 판다’고 장사꾼처럼 말하고 거래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요즘에는 디스크 가격이 올라가면서 ‘돈벌이’ 목적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도 많아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디스크 거래가 늘면서 관련 사기도 판치고 있다. 포켓몬 가오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특정 포켓몬 디스크를 사고 싶다는 구매 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디스크를 판매한다고 속여 돈을 가로챈 뒤 잠적하는 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등 연령대가 낮은 학생들이 사기 피해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부에서는 포켓몬 가오레가 사행성이 있다며 청소년 이용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이용자끼리의 거래를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포켓몬 가오레는 전체이용가 등급을 받았다. 게임기나 게임 콘텐츠에 있어 개변조가 있을 경우 등급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이용자끼리의 거래로 인해 게임 등급을 조정하긴 어렵다”며 “이용자끼리의 거래를 모두 단속하기가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2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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