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바둑 존나 못둔다. 젠 6급으로 하고도
무르기 한 번은 써야 이긴다.

그데 내가 마음 먹고 흑 잡으면 젠 120초로 설정하고도
최소한 정선으로 삐까하게 두거나 가끔은 이긴다.

방법?

따라 둔다.

흑 잡고 시작하자마자 센터에 둔다.
그리고 내 흑돌 중심으로 대각 대칭되게 그대로 따라 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렇게 두면
덤만큼 부족하거나 그보다 한 집 정도 부족하게 된다.

그러다가 딱 한 번 싸움이 벌어진다.
센타에서. 처음에 놓은 흑돌을 끼고.
그 한 번의 싸움만 이기면 내가 이긴다.

많은 경우, 돌이 뭉치면서 어느 한쪽이 죽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싸움에서만 이기면 되는 거다. 덤 뽑고도 남는다. 

근데 사람한테는 이게 안 통한다.
따라 두는 걸 알고는 내 대마가 뒤지게 유도를 하더라.
물론 대마가 뒤지기 전에 개매너라고 내가 먼저 뒤진다.

알파고가 과연 따라 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안될 거다. 그냥 백돌과 흑돌일 뿐이지.
따라 두기의 특성 상 수시로 등가교환이 벌어지는데
그거 계산하느라 시퓨 지퓨 존나 돌려댈 뿐이다.

사람은 그저 마지막 한 번의 싸움만 준비하면 된다.

컴의 특성인지 몰라도 내 돌이 덩그러니 있고

그게 당장 판세에 영향이 없으면 별로 신경을 안 쓰더라.

근데 내가 백을 잡고 따라 두면
중앙에서 자리를 잡고 싶은지 중반 조금 지나면 센터를 컴이 처먹는다.
그래서 내가 백일 때는 따라 두기가 안 통한다.

바꿔 말하면 이런 거다.
내가 흑으로 센터에 던져 놓으면
게임 최후반부에 가서야 센터 싸움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200수 훌쩍 넘어간 상황이지.

(따라 두면 판이 워낙 꼬여서 250수 쉽게 넘어간다.)

알파고는 초읽기에 몰린 상태이고
나는 그동안 따라 뒀기 때문에 1시간30분 넘게 남아 있다.
아니, 나는 두 시간 넘도록 오로지 센터만 보면서
하나의 싸움만 기다리고 있는 거다.

매너? 시발 그딴 게 어딨냐.
컴퓨터는 컴퓨터의 일을 하고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하는 거다.
이게 진짜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이지.

나는 최소한 정선으로 알파고에 맞설 수 있다.

그러니까 남은 대국 중 한 판만 내가 두고 대국료 백 만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