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사이트 ‘타이젬’ 유저 deepmind로 활동 의혹

“타이젬의 유저 ‘deepmind’가 ‘알파고’다.”

국내 인터넷 바둑사이트 ‘타이젬’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저 ‘deepmind’가 인공지능 ‘알파고’의 실체라는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처음 알려진 직후 나왔으나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바둑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졌지만, IT·과학계에서 쏟아낸 기사에 묻힌 면도 없지 않다.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가 타이젬을 통해 훈련을 했느냐”는 질문에 “타이젬에 있는 ID는 개발자의 개인적 계정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바둑계 사람들은 적다. 타이젬의 유저 ‘deepmind’가 ‘알파고’일 수밖에 없는 근거들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선 하사비스 CEO가 말하는 개발자는 대만계 영국인 아자황이다.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알파고를 대신해 돌을 놓을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지난달 10월 알파고가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 2단과 겨룰 때도 대신 바둑돌을 놓았다.

그를 잘 아는 한 바둑계 관계자는 “영국 국적의 유저 ‘deepmind’가 처음 타이젬에 접속한 것은 지난 2014년 5월로 당시 그는 5단으로 바둑을 뒀다. 그런데 1년 10개월 만에 9단으로 실력이 높아졌다.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아자황은 “요즘은 내가 두지 않고 홍콩(아니면 영국)의 지인이 둔다”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둑사이트 ‘타이젬’ 초기화면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국내 바둑계 관계자들은 “그럴 수는 있지만, 홍콩이든 영국이든 타이젬 9단들과 승부를 겨뤄 그렇게 좋은 성적을 거둘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내에서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다수의 연구자들은 “‘deepmind’가 둔 수순들 중에는 사람이 둔 수로 보기 어려운 착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초반 예상 밖의 중앙 쪽 포석들에 힘을 못 쓰는 행마나 아무런 수가 나지 않는 곳에서 비비적거리는 엉뚱한 착점들은 ‘일반적인 타이젬 고수’의 모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어떤 패턴(실수)이 반복되는 것도 ‘deepmind’가 기계임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타이젬 측 관계자 역시 “우리는 이전부터 ‘deepmind’가 알파고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뭐라고 말하지 못할 뿐이다”라며 “개인적으로는 알파고라고 확신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아니다”고 에둘러 말했다.

한편 이세돌 9단도 인터넷 바둑사이트들과의 인터뷰에서 “판후이 2단과 알파고의 대결 기보 외에 몇몇 대국의 기보를 봤다. 기보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었다”고 밝힌 적 있어, 이9단 역시 타이젬의 ‘deepmind’를 알파고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말이 사실일 경우, 즉 ‘deepmind’가 알파고일 경우 이번 대결에서 이9단의 우세가 점쳐진다. ‘deepmind’는 타이젬 9단 중에서 대부분 중위권 유저들과 대국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수십판을 둬 60%의 승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젬 9단 중 중위권은 국내 프로기사 가운데 50위권 내외의 실력자로, 그들이 이세돌 9단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deepmind’가 초읽기 20초짜리 초속기로 둔 바둑에서 중위권 프로들을 대상으로 60%의 승률을 거뒀다는 것은 대단한 실력을 입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밀훈련’을 받은 알파고가 제한시간 2시간짜리 바둑에서는 더욱 강력해질 수 있는 만큼 이세돌 9단이 의외로 고전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사비스 CEO 등의 큰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