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작가의 미생이 히트치며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다시 바둑돌을 쥐는 사람이 생겼고,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미생'이 입단에 실패한 연구생들과 더불어 완생을 꿈꾸는 우리 소시민을 대변해준 탓일지도 모른다.
그럼 진짜 '미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1. 미생은 무엇인가
아직 살아있지 못한 돌을 미생이라 한다. 두 집이 나야 사는 바둑에서 아직 두 집이 안 난 것이다. 입단에 실패한 연구생들 그리고 낙방거사들의 이야기다. 사실 미생이라는 표현은 낭만적이다. 그들의 삶은 결코 낭만적일 수 없는데 말이다.
2. 연구생이란
전국 8도에 바둑 잘 둔다고 하는 애들이 다 모인 곳이 연구생이다. 다들 그 동네에서 신동들이다. 마치 음악이 신동의 무덤인 것 처럼 바둑도 신동의 무덤이다. 일단 지금 초일류들 보면 다들 5살에 바둑을 배웠다. 7~8살에 배우면 초일류는 힘들다고 봐도 될 정도다. 5살에 바둑을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되어야 초일류가 된다는 뜻이다. 남들은 평생 둬도 못 둔다는 1급을 얘네들은 1년 안에 도달해버린다. 기재가 다른 것이다.
재주있는 애들은 동네에서 몇 개월 다니며 본인이 다니는 바둑교실을 평정하고, 1년 정도 지나 지역구가 된다. 그렇게 몇 년 지역을 평정한 후 서울로 올라온다. 다들 자기 동네에서 지존으로 군림하던 터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산이 쪼개지고, 강이 갈라지는 것 같은 자존심이 적어도 바둑에서는 있다. 그런데 바둑도장이라는 곳에서 자기보다 어린 친구한테 힘 한번 못 써보고, 판판이 깨진다. 한 번 붙어서 개싸움 해볼라 치면 요리조리 도망다니면서 혈도를 콕콕 찌른다. 두는 내내 제대로 된 전투도 못 해보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바라만 보다가 바둑이 끝난다. 분명 전투 한 번도 안 하고, 자기가 종횡무진 판을 헤집은 거 같은데 바둑은 항상 10~15집 진다.
이게 바로 정파의 무서움이다. 이렇게 다른 세계를 보고 천외천(天外天 : 하늘 밖의 하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알게 된 아이는 연구생이 되기 위해 도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정파의 비기를 배워 지방에서 올라온 풋내기들에게 정파의 매서운 맛을 보여준다.
연구생은 예전부터 있다 없다를 반복하다 이창호가 1호 입단한 뒤로 정착되었다. 예전 70년대에는 연구생은 화초바둑이라 폄하했다. 한국기원이 정파무림의 중심인 무림맹이고, 항상 천하제일인을 배출하는 곳이었다면 아마 바둑계는 그야말로 강호였다. 어떤 기인 은사들이 숨어있는지 알 수 없는 곳이다. 프로를 선접는 아마추어, 프로보다 접바둑 2점 더 접는 마귀들, 프로기사 수입보다 내기바둑 수입 더 짭짤해서 입단 안 하는 아마추어, 한, 중, 일 기업의 스폰을 받으며 뛰는 지하바둑계의 대부 등 전설같은 일화들이 많다. 이런 마귀들이 보기에 연구생들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검 한 자루 들고 막 강호를 나선 신출내기들인 것이다.
무당파 제자같이 깔끔한 도복에 무당검 한 자루 든 연구생들에게 각종 기형무기와 독공, 암기술을 쓰는 아마고수들은 어려운 상대였다. 그러니 연구생 제도에 대해서도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서 약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나왔다. 그렇게 70년대 연구생 제도가 없어졌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80년대 들어와서 다시 연구생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나왔다. 사파의 무공들이 괴랄하고, 특이하나 절정 고수에 이르면 오히려 기력증진이 방해된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기본기를 다지면 처음에는 시간이 걸리나 절정을 뛰어넘어 초절정까지도 갈 수 있다는 거다. 쉽게 얘기하면 '바둑은 어릴 때 배워야 잘 는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 연구생 제도가 생겼다.
당시 K사범이 연구생 사범이었는데 주로 악역을 많이 했다. 선배기사가 온화하게 덕을 품은 연구생 원장의 이미지라면 K사범은 군기반장이었다. 실제로 연구생들 기합 주고, 빠따를 치기도 했다. 천하의 이창호도 기합을 받았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당시 연구생들이 결국 한국바둑의 주축이 되었으니 연구생 프로젝트는 성공한 것이다. 한국바둑의 황금기를 이끈 게 연구생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생을 우습게 본 지하바둑계의 노괴들도 연구생들의 실력에 모두 무릎 꿇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연구생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3. 연구생 제도의 폐해
사실 무림 정파처럼 얘기했으나 훈련 프로그램은 살수집단에서 살수 길러내듯 했다. 학교도 안 가고 아침부터 밤까지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는 바둑만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하고, 주중에는 도장에서 공부하고 동료들끼리 실전을 하고, 주말에는 연구생 시합을 하는 것이다. 쉬는 날도 없이 이 짓을 반복한다. 지방에서 온 연구생은 명절에만 집에 가고, 그 외 시간은 바둑만 한다. 이러니 바둑이 안 늘겠는가. 더구나 그들이 보는 바둑책은 그야말로 비급이다. 일반 바둑인들은 구할수도 없다. 요새는 일부 시장에 풀리긴 했으나 예전에는 그들만이 보는 책이었다. 일본 바둑서적을 짜집기해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보는거다. 사파의 아마바둑인들은 1권도 구해서 보기 힘든 책을 요점만 뽑아서 보니 게임이 되겠는가.
또한 프로 사범들이 옆에 붙잡아 놓고 가르친다. 아마 바둑인들은 고수 옆에서 밥만 먹어도 바둑이 는다고 하는데, 그 고수가 아예 붙잡아 놓고 혼내면서 바둑가르치니 안 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초,중,고 기간 동안 하면 사람이 바둑 밖에 모르는 바보가 된다. 최소 6년에서 10년 정도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프로가 되면 다행인데, 프로가 못 되는 순간 인생이 꼬이는 것이다. 평생 바둑만 알던 사람이 사회생활을 어찌 하겠는가. 학교 공부를 하기도 쉽지 않고, 더욱이 입단에 대한 집착이 떠나지 않는다. 연구생은 만18세가 되면 쫓겨난다. 만약 성적이 상위권이면 1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그런데도 입단을 못 하면 미치는 거다. 손에 다 들어온 입단, 손에 쥐고 있던 입단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사라지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4. 입단, 왜 이렇게 힘든가
병목현상이다. 입단할 실력은 많은데, 문이 너무 좁은 탓이다. 바둑리그에 참가하는 상위 프로랑 10판 두면 7판은 이겨야 입단 할 수 있다. 프로보다 한참 강해야 입단을 할 수 있는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한다. 그러니 연구생들이 오픈기 전에서 이세돌, 이창호를 이기고도 입단을 못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애들끼리 경쟁하니까, 연구생들이 일류 프로를 이기는 건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가? 현재 프로기사는 대략 300명쯤 된다. 이중 250여명이 남자고, 50여명이 여자다. 남자 250여명의 프로 중에서 연구생보다 못 두는 프로가 수두룩하다. 그런데 한번 입단하면 은퇴를 안하기 때문에 잘 두는 연구생들이 입단을 못 하는 거다. 이게 구단제였을 경우, 실력 떨어지면 탈락시키고, 잘 두는 루키는 구단에서 스카웃할텐데 자격증 제도라서 한 번 입단하면 죽을 때까지 프로인 거다. 예전에 비하면 넓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많이 좁다. 그런데 웃긴 건 자신이 아마일 때는 입단 문호를 넓히자고 하다가, 입단하면 입단 문을 좁혀야 한다고 한다. (갑자기 그 분이 떠오른다. 자신의 말은 자신의 말로 모두 반박 가능한 그 분)
입단 한 후에 시간 지나고 성적 안 나와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뒤에 후배들이 못 올라오는 거다. 그렇다고 그들이 바둑계 발전이나, 바둑실력을 위해 노력하는가. 그런 사람은 정말 소수다. 자신들이 한번도 못 이겼거나 심지어는 둬보지도 못한 (이세돌이랑 이창호 급 되면 사실 대진에서 만나기도 힘들다) 탑랭커를 연구생이 이겨도 입단을 못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바둑이 망가진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 늘어난 연구생 고수들을 제대로 못 거둬들인 탓이 크다.
5. 입단에 실패한 미생들, 그들의 행마는
만19세 넘어 퇴출된 미생들은 이제 무엇을 하는가? 요새 미생 관련 인터뷰 보면 연구생 출신 직장인들이 나와서 연구생 경험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서 '하하호호' 웃고 있다. 그들은 미생이 아니다. 연구생 발가락 정도 담그고 온 이들이 연구생이라며 그땐 괴로웠지만 실패를 바탕으로 바둑에서 배운 점을 잘 활용하며 사회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미생은 개뿔. 입단을 거의 손에 쥔 진짜 미생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렇게 인터뷰하고, 외부에 말할 수 있는 건 아프지 않아서'라고 말이다. 실제로 입단 직전까지 간 사람은 조용히 있는다. 연구생이 지금은 맥마흔 시스템(Macmahun System : 선수간의 개인차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출발점을 달리하는 방식)이라는 걸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리그전이었다. 1군과 2군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때 그때 인원수가 좀 바뀌긴 하지만 심플하게 설명하면 1군 5조, 조당 인원 12명, 2군 5조, 인원 12명, 총 120명이 매주 시합한다. 1조부터 10조까지 있다고 보면 된다.
바둑인들이 인정하는 연구생이란 최소 1군은 되어야 하고, 입단권이란 1~2위 조는 되어야 입단권으로 본다. 그리고 1조 상위멤버는 괴수급으로 프로 상위랭커랑 비슷하다고 본다. 매달 12명 리그에서 4명 승조, 4명 잔류, 4명 강조하고 맨 아래인 10조는 매달 4명씩 퇴출된 후 그 밑에 연구생 선발전을 통해 뽑힌 대기조가 올라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1조 상위멤버로 쭉 있다 입단 못 한 진짜 미생들의 입장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 연구생 2군 정도에서 잠깐 있다가 입단권에도 못 오른 채 바둑 그만두고 다시 공부한 이들이 미생을 자처하며 인터뷰 하니 얼마나 어이 없겠는가. 입단권에 있다가 인터뷰한 미생은 딱 1명 있었다. 회사에서 시켜 마지못해 나왔는데 엄청 쑥스러워 하더라. 연구생 1조와 10조 차이는 2~3점 정도 차이라고 보면 된다. 연구생 5조부터는 프로도 한 칼 맞을 수 있는 레벨이고, 2~3조는 프로랑 둘 만한 레벨, 1조는 프로 상위랭커라 봐도 무방하다. (요새는 예전보다 더 약해진거 같다. 예전처럼 경쟁이 쎄진 않으니까)
6. 만 19세가 넘어 퇴출된 연구생들에게 남은 길은 무엇일까
우선 아마로 빠져서 여전히 입단을 하기 위해 공부한다. 거의 입단 직전까지 간 미생들이 많이 이런다. 군대 계속 미루다가 결국 입단 못하고 연기도 힘들어 군대 갔다오면 거의 서른인데 정말 갑갑하다. 다른 일 하기도 힘들고, 바둑 가르치는 사범이 되거나, 아마대회에 나간다. 보통 낙방거사라 부른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마강자로 군림하던 사람들 중에 이런 유형이 많다. 이 미생들이 무서운 이유가 연구생의 기본기에 야전의 노련함이 섞여서 연구생 시절보다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게 무엇이 문제냐 하면 연구생들이랑 미생들이 같이 입단대회에 나오다보니 연구생들은 자신의 선배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입단연령이 늦어지고 이는 국가경쟁력에서 밀리는 거다. 작년에 32살 미생이 입단했다. 개인적으로 좋겠지만 중국과 한창 경쟁하는 이 판국에 32살 입단이 무슨 의미 있겠는가. 중국은 15세 넘으면 입단을 못 한다. 이렇게 뽑힌 애들이 국가대표 소년바둑단이 되어 맹트레이닝을 하고 10대 후반에 세계대회 우승을 해 초일류의 반열에 든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이 초일류 되는 나이에 애들이 입단을 하고 있다. 당연히 경쟁이 안 된다. 나이먹은 프로들의 병목현상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
바로 아마대회에 나오는 유형도 있다. 비록 입단은 못 했지만 절정고수, 용은 못 되었지만 이무기 아닌가. 아마대회에 나와 분노의 검을 휘두른다. 사파의 고수들을 추풍낙엽처럼 베어버린다. 사파의 괴랄한 초식과 꼼수들은 그들의 무공 앞에 모두 무릎 꿇는다. 연구생 출신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1990년 후반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생 고수에 의해 아마바둑대회는 초토화 되었다. 예전엔 연구생 1명이 등장하면 토너먼트 방식이다 보니 누구든 한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파의 연수 합격진으로 어떻게든 한 명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생 출신이 2~3명씩 늘어나더니 5~6명이 되는 순간 이건 대책이 없는 것이다. 문파의 전멸을 각오하고 떼로 달려가서 1명 겨우 잡았더니 다른 조에서 연구생 출신들이 다 올라와 버린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사파의 고수들이 생각한 묘책이 무엇이냐. 바로 연구생 분리제였다. 그때부터 많은 대회들이 결승까지는 연구생 출신과 아마추어들이 분리해서 대회하다가 결승은 통합으로 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하루에 4~5판 두는 아마대회에서 연구생끼리 치고받고 올라오면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런데 아마추어 진영은 그런 소모전 없이(아무래도 바둑을 대충 빨리빨리 두는 경향이 강하다)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피곤에 지칠대로 지쳐, 결승을 치르면 아무래도 한 칼 맞을 확률이 높아진 거다. 하여튼 바둑 두는 사람들이 머리는 좋다.
그리고 나이 제한과 연구생 제한등의 다양한 '제한'이 있다. 일부 아마대회들은 만 30세 이하 출전 금지, 연구생 출신 출전금지, 충암중,고 출신 출전 금지, 명지대 바둑학과 출전 금지를 걸어버린다. 어릴 때 바둑을 전문적으로 하는 순간, 저 조항 중에 하나는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 제한이라는 게 매년 연구생 출신이 나이먹듯 매년 1년 씩 올라간다. 연구생 출신 한 후배가 얘기하기를 나중에는 만 60세 이하 출전 금지가 나올 것 같다 한다. 자기 나이 올라가는 만큼 어떻게 매년 1년 씩 올라가냐며 분통을 터트린다. 그래서 요새 미생들은 아마대회 나와도 예전 초창기처럼 상금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7. 명지대 바둑학과 진학, 혹은 보급활동
이것 저것 관심많은 미생들은 명지대 바둑학과에 진학한다. 바둑학과에 대해 말은 많지만, 어쨌든 프로들이랑 연구생들을 바둑으로 대학엘 가게 해주지 않는가. 물론 배우는 건 별로 없다. 기술적인 부분은 이미 교수들보다 미생들이 잘 안다. 그 외 전공에서 별로 배울 건 없는데 그 이유는 프로들이 교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학을 하는 사람이 교수를 해야하는데, 바둑 두는 쪽 중에 그나마 학교 공부한 사람들이 교수하니 문제다. 학위는 대학교수하면서 따기도 한다.
바둑학과 들어가는 게 그리 만만치는 않다. 기본적으로 수능을 어느 정도 봐야 하기때문이다. 학교 타이틀 때문에 바둑을 좀 배워봤던 경험이 있던 일반 학생들이 제법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학과라는 게 미생들에게는 바둑 잘 둔다고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대학은 수능점수가 더 중요하니까.
보급활동이 가장 무난하다. 도장에서 애들을 가르치거나 방과후 수업, 바둑교실 등을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바둑 배울 때 '니들 입단 못 하면 저렇게 된다.' 라며 아마사범들 예를 들었는데 진짜 그렇게 된다. 현실에 적응하는 미생들도 있고, 괴로워하며 지내는 미생들도 있다.
8. 아예 딴 일하는 미생들
다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다. 그리고 하루종일 바둑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만큼 집중력도 좋다. 그래서 공부로 선회하면 다들 대학 간다. 고1 올라갈 때 바둑그만 두면 연고대, 고등학교 중에 그만 두면 재수를 하더라도 다들 인서울은 가는 거 같더라. 문제는 고3까지 하고 1년 연장했는데도 입단 못 한 미생들은 문제다. 일단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데 그래서 다른 일하기 쉽지 않다. 집이 잘 사는 경우는 별 걱정없이 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장그래의 케이스를 보자. 보통 바둑을 두면 그래도 사회적으로 지위있는 분들을 만나기 쉽다. 이런 분들이 일자리 소개해줘서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장그래 같은 경우는 잘 풀린 케이스지만 보통 바둑만 알던 사람이 다른 직종에서 인정받고 안착하기란 쉽지 않다. 중,고등 학교 다니면서 단체생활을 안 해본 탓에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바둑 두던 사람들이 영업이나 서비스직에는 약하다. 프로들은 더 말 할 필요도 없다. 바둑 둘 때 창의적인 수와 틀에 안 박힌 스타일의 미생들은 다른 직종에서도 잘 해내는 경향이 있는데 계산적이고 보수적인 기풍은 좀 힘든 것 같다.
9. 미생에서 완생으로? 판을 엎어라!
미생이라는 말은 굉장히 낭만적이다. 사실 평생 바둑만 보고 살다가 입단을 못 한 미생들의 삶은 괴롭다. 또한 바둑이라는 세계에서만 살다가 다른 세계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바둑일을 계속하는 순간 프로와 비교당하며, 아마도 아닌 아마가 된다. 프로의 세계도 못 들어가고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순수 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 당한다. (아마대회를 보면 연구생 출전 금지 대회들이 많이 있다) 또한 자신이 실력으로 두면 이기는 프로들인데도 순수 아마팬들은 "프로한테 몇 점 깔고 두느냐?" 이런 질문들을 하곤 한다. 프로들 역시 연구생을 배척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밥벌이하고 관계가 있다. 어쨌든 프로가 아니면 아마인 것이고 아마는 아마추어로서 동호인인데 왜 바둑으로 돈 벌려고 하느냐, 이런 논리다. 아마추어들은 연구생들을 보고 '니네들은 어릴 적 부터 바둑만 공부한 전문가들 아니냐. 전문가들이 왜 아마쪽에서 놀려고 하느냐.' 이러면서 배척한다.
세미프로 제도에 대해 말이 나온 적이 있다. 연구생들이 일반 아마는 아니지 않느냐. 프로는 아니지만 세미프로, 레슨프로 자격을 주어 바둑 보급에 힘쓰게 하자. 한 분야에 10년 이상 매진한 사람들 아니냐. 이런 의견이 있어 실제로 규정도 어느 정도 만들어 놨다. 그러나 프로기사들의 반발로 세미프로 제도는 무산되었다. '프로가 들어가면 바둑 팬들이 헷갈려 한다.' '프로들의 밥그릇이 줄어든다.' 는 이유였다.
이 과정을 통해 프로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킨 것처럼 보였지만 이게 얼마나 근시안적인 생각인지는 곧 드러났다. 소수 프로들이나 상금으로 돈 벌어서 생활하지 대부분 남을 가르치는 레슨으로 돈을 번다. 그런데 바둑 입단을 못 하는 순간 인생이 꼬여버리고, 입단 한다고 한들 성적을 못 내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바둑을 누가 시키겠는가? 결국 바둑에 재능이 있어도 중학교 진학할 때쯤이면 공부로 진로를 바꾼다. 왜냐하면 다들 머리가 좋아서 학교성적도 좋으니 어느 부모가 바둑시키겠는가. 입단 못 해도 레슨프로 등 다른 대안이 있으면 모르는데 이건 모 아니면 도, 아니 걸 아니면 빽도인 상황 아닌가.
결국 점점 프로지망생이 줄어들었다. 바둑을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보다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학생들이 돈을 많이 낼(투자)테니 프로들의 수입도 점점 줄어든 것이다. 또 바둑을 늦은 나이에 배웠지만 세미프로가 목표인 바둑팬들도 있지 않는가. 프로는 하늘에 별따기라 힘들지만 세미프로는 가능하다. 골프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프로들이 기를 쓰고 반대한다. 혹자들은 반대의 주체가 한국기원이라고도 하는데 '한국기원=프로기사' 라고 보면 된다.(프로기사들은 한국기원의 주인은 프로들이라고 하면서 정작 한국기원이 프로기사에게 해주는 게 없다고 불평을 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자주 쓴다.)
미생들은 세미프로, 레슨프로 제도가 없음에도 바둑에 미련을 못 버린다. 어차피 많은 나이에 퇴출되거나, 행여 입단 한다 한들 성적 못 내는 건 본인도 안다. 하지만 바둑에 쏟은 시간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거다. 입단을 못 하는 순간 아무리 잘 둬도 결국 그냥 아마 아닌가. 동네기원에서 내기바둑 두는 아저씨랑 바둑에 일생을 바친 자신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아마 레슨프로든 세미프로든 자격증을 받으면 바둑보급을 하든 다른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에, 다른 길이 없기에, 더욱 입단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바둑에 상처입은 미생들이 뭐 하겠는가. 결국 어느 회사에 취업을 하고, 운이 좋다면 어느 조직의 중추가 되고, 또 운이 좋다면 의사결정권자가 될 것이다. 이럴 때 이들이 바둑에 도움을 주겠는가. 바둑이라는 게 결국 스폰서가 없으면 대회유지가 안 되는 구조 아닌가. 얼마 전 대기업 다니고 있는 한 미생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렇게 얘기하더라. "사범님.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재벌되면 바둑 망하게 할 거에요." 술김에 한 말이지만 섬뜩했다.
미생들 보고 '니들이 바둑 못 둬서 입단 못 한 거 아니냐.' '입단 못 하면 어떻게 될 지 몰랐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니들이 공부 안 하고 게을러서 못 사는 거 아니냐?' 이런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미생들은 실력이 낮아 입단을 못 한 것이 아니다. 한 번 입단하면 죽을 때까지 은퇴는 물론, 바둑계에 기여 안 하는 철밥통 때문에 입단을 못 한 것이다.
미생 얘기는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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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펌 원문링크 : http://www.ddanzi.com/ddanziNews/2384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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