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옛날엔 피파나 레인보우 식스 스타나 하고 pc방 가서 놀던 흔한 교복충이었다.

바둑은 니미... 돌 하나 따먹는거 그거 하나 알고 있었음.

이것도 변이나 귀에 붙어있는 돌은 어떻게 따먹는지도 모르는 시절.

나한테 바둑은 '저게 무슨 재미가 있나...' 했다.

때는 대학교 입학을 석달 앞두고 집에서 비디오나 보면서 뒹굴뒹굴 하고 있을 때.

형이 나보고 바둑 한 판 두자고 했다.

나는 바둑 둘 줄도 모르는데... 형은 쬐금은 알고 있더라. 지금 생각하면 형 실력은 13급정도 수준이었던듯.

그자리에서 돌 따먹는거 알려주고 집세는거 알려주고 언제 바둑이 끝나고 누가 이기는건지 알려줬음.

그 첫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 돌이 얼마나 따먹혔는지 나중에 계가할 때 내 집을 다 메우고도 한웅큼 내 돌이 형 손에 있었다.

어릴 때 형이랑 장기두면 서로 비슷비슷 했는데 대딩을 눈앞에 두고 처음 둔 바둑은 내가 완전히 쳐발림.

생각보다 졸라 빡치더라... 은근히 개빡침.

그 때 마침 집에 일본사람이 쓰고 한국사람이 번역한 이상한 얇은 바둑책이 있었는데

일단 그걸로 ㅆ발 바둑 기초부터 알아야 형하고 게임이 될꺼 같아서 책 보면서 바둑판에 돌 놓아보고 했다.

며칠 뒤에는 맞바둑으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4점 접바둑으로 뒀다.

그래도 또 짐.

그놈의 옥집이 뭔지 ㅆ발 나는 분명히 내 대마가 2집 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옥집이야 ㅆ발 갰이발...

그렇게 한 달을 계속 쳐발렸다. 며칠마다 한 판 씩 뒀는데 그 때마다 계속 쳐발림.

책에는 분명히 이런 모양은 내 집이라고 되어있는데 형은 막 들어와서 살아버리니 졸라 짜증나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형도 기력이 한 달 간 늘었나 봄.

형을 이기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바둑TV를 보기 시작했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ㅅㅂ...

그래도 중간에 초보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좀 배웠던거 같다.

4점 접바둑에서 내가 이기기 시작했고 대학교 입학할 무렵에는 2점까지 칫수가 올라갔다.

바둑에 조금씩 눈을 떴던거지...

대학교 입학하고 써클(동아리) 가입도 기우회에 가입하고

내가 대학교 다니니까 서로 시간이 없어서 둘 기회가 없었다가 몇 달 후에 호선으로 뒀는데 내가 이김.

개통쾌함. ㅋ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보고 바둑두자는 소리를 안하고 있다. ㅋㅋ

바둑TV에서 무슨 말인지 못알아먹겠던 착수들도 이해가 가는 수들이 많아지고

한 1년 뒤엔 스피드초점국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장 기다려지는 프로그램이 되어있었다.

그 때 내 기력은 6급 정도였던걸로 기억...

이후에는 이리저리 바둑 둘 시간이 없다가 요즘 좀 시간나서 바둑 두곤 하는데 지금 기력은 3~4급 쯤 되는 것 같다.

지금은 타이젬 6단. 예전엔 타이젬 7단이었는데 아이디 까먹어서 새로 만듦. 옛날보다 중국애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승단이 어렵네..

바둑은 자전거 타기랑 비슷한거 같음. 한 번 배워놓으면 웬만해서 안까먹음. 그래서 바둑에 관심 끊고 살다가도 미생이나 응팔로 바둑인기 조금 올라가면

다시 바둑계 소식들이나 중계되는 대국 보면 되고... 재밌음.

가장 안타까운거는 진입장벽이 높아서 신규유입이 잘 없다는거. 이게 참 아쉬움. 웬만한 게임들은 한 석 달 만 파면 실력은 꽤나 고수소리 들을 정도가 되는데

이놈의 바둑은 석 달 갖곤 어림도 없음.

근데 이런 생각도 듦. 스타크래프트나 와우도 진입장벽이 꽤 높은 게임인데 인기끌고 대세가 되니까 신규유입도 많아지고 존나 흥했는데.

바둑도 좀 뭔가 대유행을 타게 할 만한 요소가 필요한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