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일어나 자정 넘어서 들어오는 생활의 연속이다.
집에 와서는 다음날을 위해 곧바로 자야하지만
힘든 삶에 대한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타이젬에 들어가 몇 판 두드려야 그나마 좀 낫다.
최근엔 승단을 해버려서 이제 패배 확률이 높다.
그럼 뭐 강단 후에 거기서 편하게 두면 된다.
새벽 타이젬이 반복되다보니 몸은 더 피곤해진다.
그래서 얼마전에 케이블을 다 분리해서
피씨를 옷장 안에 넣었다.
내 폰은 2011년산. 모바일 타이젬과 오로가 작동되지 않는다.
2011년산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건 아닐텐데 어쨌든 그렇다.
결국 실전을 안 둔지 꽤 되었는데
내 대가리는 여전히 바둑을 잊지 못했는지 오늘은 바둑 꿈을 꾸었다.
유리한 국면이었는데 어느 순간 판을 보니 미세하여 깜짝 놀랐다.
이게 이렇게까지 될 바둑이 아닌데 나란 놈도 진짜 못 두긴 못 두는구나
그러면서 열심히 끝내기를 하고 있었다.
꽤 득을 봤다고 여겨 이젠 이겼겠지 하고 다시 세어보니 이젠 져 있었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생각해 자세히 보니
19줄로 시작했던 반상이 더 커져 있었다.
판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확장되는 부분은 전부 상대 영토가 되었다.
한수 한수 놓일때마다 반상은 점점 더 넓어지며
상대의 배만 불리고 있었던 것이니
이창호의 끝내기를 가진들 이길 방도는 없던 셈이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외로워졌다. 또 서러워졌다.
이게 요새 한창 말많은 금수저와도 관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난 금수저란 단어를 매우 싫어하는데
그걸 입에 올리는 자들의 저의가
개인의 성공과 출세를 깎아내리려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즉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성취를 이뤘다.
그럼 나오는 반응이 이거다. "걔 금수저니까"
타인의 유능과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기란 그들로서도 힘든 일이다.
자신의 무능을 애써 포장해보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타인의 유능에 흠집을 내고자 한다.
인정. 그렇게 힘든가.
모 프로가 조한승 사범을 평가할 때 그랬다.
"상대를 인정하고 둔다."
그래. 그래서 그런 바둑을 둘 수 있는 거구나.
상대에 대한 인정은 오히려 여유를 가져온다.
초장부터 시원하게 짓밟아버리겠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상대도 나만큼은 수를 볼 줄 안다.
상대도 나만큼의 대국관은 지니고 있다.
무리해서 앞서나가려 하지 않게 된다.
어쨌거나 평소 생각은 이렇게 하고 있던 나였건만
점점 넓어지는 반상을 보며 금수저를 떠올리다니
나도 맘 한구석에는 불만이 있었나보다.
반상이 커지면서 공짜로 얻는 집들이 불로소득으로 보인 걸까.
금수저의 반대쪽엔 힘든 삶이 있다.
이십대들이 왜 자신들의 삶을 팍팍하다 여기는가.
교수 한 분이 강의 중에 말했다.
이 정도 취업난이면 데모가 났어도 열 번은 더 났어야 맞는 시국이라고.
과연 그런가?
그럴수는 없다.
시위 참여는 곧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시위 따위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십대는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시위 참여가 불필요한 계층으로의 이동을 바라며
오늘도 다들 그렇게 공부하는 것일 게다.
내 평소 생각은 꿈 속과는 달랐던 것인데
어느 것이 진짜 나를 대표하는가.
그게 어느 쪽이건 간에 난 겉다르고 속다른 놈이 된다.
하기야 내가 진짜 나를 내보인 적이 있었나.
선 사이에 발만 걸치고 눈치를 살핀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