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 전>

우리들 전문기사의 생활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는 퍽 다르다.

우리들 사이에서 '큰 대국'이라고 불리는 본인방전이라든가 명인전 등은 보통 한 주일이나 열흘쯤 건너 두게 되는데

그 기간엔 특히 집에 들어앉아 쉬는 때가 많고 외출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잡다한 일도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면 면장에 서명한다든가 묘수풀이를 만든다든가 하는 일이다.

앞서의 대국의 피로가 풀리지 않고 다음 대국의 일 등이 마음에 걸려 침착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좀 신경질적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집사람이 이에 배려한다면서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은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오기 쉽다.

보통 때와 같이 대해 주는 것이 제일 좋다.

일이 없으면 쉬운 책을 읽는다는지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든가 한다.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바둑판을 앞에 하고 정좌해서 선인들의 기보를 늘어 놓으며 연구하는 것과 같은 일은 대국전에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대국이 백번인가 흑번인가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경우라면 포석의 작전을 세워보기도 한다.

그것도 기껏 5, 6수 정도의 것이다.

오히려 작전보다는 대국당일의 건강에 신경을 쓴다.

집사람도 이런 일에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것 같다.

본래 나는 늦잠꾸러기인데 이 버릇은 좀처럼 고쳐질 것 같지 않다.

대국은 보통 아침 9시경에 시작되므로 까딱하면 수면부족이 되기 쉬워 여기에 곤란을 느낄 때가 많다.

수면제는 자신이 없어 피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수면부족인 채 바둑판에 마주 앉지 않을 수 없는 때도 있지만 

그런데도 내 바둑이 괜찮게 되는 것은, 반상의 싸움에 몰두하고 있으면 어느 사이엔가 수면부족 같은 것은 어디론지 싹 가시고 말기 때문이다.

<잠 못 이루는 밤>

지금의 큰 대국의 제한시간은 대개 10시간으로, 상대방 것과 합쳐서 20시간, 이를 이틀에 나누어서 두게 되어 있다.

첫째 날의 봉수 때는 형세가 아직 분명치 않은 것이 보통이어서 이런 경우에 양 대국자는 자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혹은 실제 이상으로 지나치게 낙관한다든가 반대로 지나치게 비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떻든 대국자는 봉수할 때의 형세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해서 이튿날의 대국에 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어느 때의 대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첫째날 밤에 나는 방에 들어가 바로 이불속으로 향했다.

적당히 술을 마셨기 때문에 곧 깊은 잠에 들 수가 있었다.

한밤중에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여기서 또 잠을 청한다면 아침까지 자고 말 것이 뻔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어제의 국면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러하고 있는데 봉수 때는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던 바둑이 아무래도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다시 상세하게 검토해보니까 봉수 직전에 내가 악수를 두어 형세는 역시 나빴고, 그대로라면 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잠만 자고 있을 수가 없어 어떻게 해서든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실내는 아직 깜깜하지만 뜨락 쪽에서는 새벽 참새가 지저귀기 시작했다.

짓-짓-하는 새소리는 나의 당황하는 꼴을 조롱하며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생각을 계속해서 간신히 약간의 희망을 가졌을 때,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이튿날, 졸음과의 싸움을 하면서 바둑을 어떻게든 이기게 된 것은 전날 밤 잠자리에서의 작전 도움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