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증권배 준결승에서 16세 이창호가 조훈현을 이기고, 임해봉이 조치훈을 이겨서 둘이 결승에서 만난 적이 있지.

당시 이창호는 국내에서 9관인가 하던 시절이었고.

당시 주류 일본바둑은 집을 정밀하게 계산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거 같다.

5번기에서 이창호는 임해봉을 상대로 정말 수를 잘 냈는데, 검토실에서는 이창호가 너무 실리를 밝혀서 오히려 두터움에서는 임해봉이 앞선다고 봤지.

당시 일본기사들은 이창호가 세계에서 가장 집에 짜다고 평가했을 정도니까.

결국 중앙공방전에서 임해봉이 앞서게 되지. 

이창호는 패싸움을 걸며 승부수를 날렸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런데 그렇게 정밀하게 집을 계산해 뒤쫒더니 결국 종반에 역전해서 반집을 이겨버리더군.

아무튼 동양증권배에서 그 고생을 한 이후로는 이창호가 선실리 후타개의 치열하게 버티는 기풍에서 두터운 기풍으로 바꾼 거 같다.

마침 그때 이창호가 조훈현에게서 막 독립하던 시기라 기풍이 변한 거 같기도 하고. 

(변상일이 이창호의 두터운 기풍과 침착한 성품에 가장 가까운 편이었지. 지금은 잘 모르겠음...)

이창호가 워낙 두텁게 두다보니 중반도 밀리지 않으면서 결국 전공과목인 끝내기에서 가볍게 반집을 남기는 식으로 이겨버리지. 

신예 중에는 나현의 기풍이 가장 비슷한 거 같은데, 나현은 워낙 낙관파에다 당시엔 없던 바둑리그라는 단체전 변수 때문에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는 거 같다. 

다른 젊은 기사들도 나현의 두터운 기풍을 평가절하하는 측면이 있는데 그건 과거 이창호도 겪던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