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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썰) 한국류 외전 - 전류

(112.149) 2012.11.23 21:16:55
조회 286 추천 1 댓글 3

출처:한게임바둑 박치문의 바둑시론 (<U>http://www.hangame.com/baduk</U>)

 

한국류 외전(外傳) - 전류(田流)‥‥‥‥‥‥‥‥‥‥‥‥‥‥‥‥  2002. 5. 30. 木

 

30여년전의 얘기를 잠시 하고 싶다.


무대는 서울의 불광동과 녹번동.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친구와 함께 녹번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집 앞엔 녹번천(川)이 흐르고 있었고 그 냇물을 건너면 바로 불광동이었다.


천변에는 나즈막하고 녹슨 양철 지붕들과 돌담, 그리고 비툴비툴한 골목이 이어졌고 그곳을 좀더 벗어나 시장 근처에 가면 어떤 허름한 건물의 2층에 동네기원이 있었다. 김희중, 정낙윤, 노영하등을 만난 것은 바로 그시절 그곳에서였다.


전에 잠시 알았던 전영선도 그곳에서 다시 만났고 최욱관과 함께 아마바둑계의 황제로 불렸던 진홍명도 종종 만났다.


당시 고등학생 교복을 막 벗은 김희중과 노영하는 오래 전에 프로9단이 됐고 7단에서 멈춘 전영선은 '이창호의 스승'이란 간판을 뒤로 한채 요즘은 병마와 싸우고 있다.

 

정낙윤은 대단한 강자였지만 한국기원의 사무국장과 한번 크게 싸운 뒤로 다시는 대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욱관은 당시 진홍명에게 선을 접혀야했고 종종 2점까지 올라가곤 했으나 입단대회는 쉽게 통과했고 진홍명은 영영 프로가 되지 못했으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전영선은 아마도 중학생 때부터 내기를 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두부공장 사장하고 내기바둑을 두는 모습을 봤는데 두는 족족 이겼다. 칫수를 바꿔줘도 계속 이겼다.

 

기재(棋才)가 몹시 뛰어난 전영선이었기에 매달 한두급씩 실력이 높아지는 통에 만년5급인 그 사장은 계속 칫수를 고쳐도 당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김희중 전영선 정낙윤 이들 세사람은 당시 아마바둑계에선 떠오르는 신인강자였고 그들은 서울 시내의 기원에서 벌어지는 바둑대회를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당시는 각 기원이 손님들 중심으로 대회를 열었고 지금과 같은 전국대회는 상상이 안가던 시절이었다)


당시 동네기원 대회는 1등에게 금반지나 쌀 한가마를 주는 지금 생각하면 시시한 대회였다.


게다가 모조리 칫수를 접어야하는 대회여서 1급으로 출전하면(당시는 아마 단이 없었기에 1급이 최고였다) 10급을 9점 접고 이겨야했다. 많은 하수들이 소금처럼 짠 급수로 출전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5급이 눈 딱감고 10급으로 나오는 일도 있었다.

 

하다보니 결승전 쯤 가면 평소 4점 접는 바둑을 9점이나 접어야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싸움바둑으로 유명한 전영선은 온갖 맥과 꼼수(?)를 총동원하여 9점을 접고도 이겨내곤 했다.


전영선의 기재와 함께 김희중의 기재도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속사포에 유연하고 기발한 감각을 지닌 김희중은 상대 돌의 머리를 이리 두드리고 저리 두드리며 사석전법을 쓰는 감각이 마술적인 경지였다.

 

상대가 그의 손속에 현혹되어 쫓아다니다 보면 손에 쓰레기만 잡고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희중은 이렇게 한건을 올린 뒤 전영선을 돌아보며 "흐흐흐, 어때 우아하지."하고 웃으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방랑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영선과 김희중은 명 콤비였고 그들은 그렇게 어울려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그래도 불광동이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두사람 다 방내기의 명수였기에 대마잡기에도 명수였고 좁은 곳에서 수를 내는데도 명수였다.

 

감각파라 할 김희중에 비해 전영선은 좀더 실전적이고 치열한 수법들을 즐겨 썼고 암수에도 정통했다.


훗날 바둑계에선 이와같은 전영선의 바둑 스타일을 '전류(田流)'라 불렀다. 그리고 홍종현 8단의 '홍류(洪流)'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田流'는 기세를 중시하는 싸움바둑을 말한다.

 

끊을 곳은 반드시 끊고 무디고 느슨한 수를 두지않는 싸움바둑. 그러나 田流란 단어속엔 능란한 잔수 접전과 상대를 못살게하는 온갖 맥점, 암수와 함정수등의 이미지가 진하게 녹아있다. 내기바둑과 방내기, 뒷골목등을 연상시키는 온갖 수법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洪流'는 포석이 적당히 끝났다 싶으면 싸움할 곳을 찾는게 아니라 착착 젖혀잇고 바로 끝내기로 돌입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경기고 - 서울법대 출신의 홍종현 8단은 계산과 끝내기에 탁월하여 '홍소금'이란 별명도 갖고 있었다.

 

洪流란 단어는 소금같이 짠 끝내기 이미지와 함께 싸움을 피하고 집내기를 중시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생각하면 김희중, 전영선, 홍종현은 모두 술의 대가들이다. 그리고 결사적으로 놀기를 즐긴 이름난 한량들이다.

 

아마도 그들이 술과 더불어 노는 시간을 절반만 줄였더라면 바둑사는 영 달라졌을 것이다.


이창호 9단은 어린 시절 전영선에게서 바둑을 배웠다. 두사람의 실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창호는 전영선의 '독랄한'수법들을 무수히 받아내야 했고 그바람에 잔수능력에다 온갖 수법들에 정통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끔 이창호의 바둑에서 흑도(黑道)의 냄새가 나는 것도 전영선의 영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창호의 바둑은 물론 정통파의 바둑이며 기를 쓰고 싸우기는 커녕 그 반대의 스타일, 즉 '洪流'에 더 가까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가장 예민한 시절 전영선에게서 바둑을 배운 이창호이기에 그의 바둑 깊은 곳엔 전영선의 스타일, 즉 '田流'의 한가닥이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이창호가 묘수를 잘 두고 끝내기의 맥점에 능하고 생사에도 탁월한 점에서도 田流의 흔적을 느끼곤 한다.


전영선은 정법으로 바둑을 익힌 사람은 아니었고 뒷골목에서 바둑을 배운 사람이었기에 수법이 기기묘묘하고 흥미진진했지만 그 역시 한가지 철칙은 있었다.


"시시한 수, 냄새나는 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기려고 몸을 사리는 수는 시시하다. 겁이 나서 끊을 곳을 끊지 못하는 수는 비겁하고 냄새나는 수다. 그런 기백이 없는 수로는 바둑을 이길 수 없다는 얘기였다.


불광동 시절, 나는 전영선 김희중등과 어울려 꽤 많은 날들을 보냈다.

 

하루는 오래 밀린 빨랫거리를 몽땅 싸들고 세탁소를 찾으러 나갔다가 그만 기원부터 들려 밤샘을 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그날 하숙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저녁때 들고 나간 보따리를 새벽에 다시 들고 들어온 나는 도둑 혐의를 쓰고 서대문 경찰서까지 가서 조사를 받아야했다. 30여년전 얘기다.


며칠전 전영선 7단을 한 기원에서 만났다. 중병을 앓고 있는 탓에 그의 얼굴은 전보다 야위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맑았다.

 

바지 뒷주머니에 소주 두병을 차고 다니다가 "내총 받아라."하며 쌍권총을 뽑아들던 전영선의 모습이 영화의 한장면처럼 떠올랐다.

 

그가 때늦게 결혼이란 걸 했을 때 내 낡아빠진 포니 승용차를 부부가 타고 스카이웨이를 돌았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내 얘기 들었지."하고 그는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이번이 세번째야"하며 히죽 웃었다. 죽을 고비를 세번째 넘었다는 얘기인데 그 익살맞은 웃음은 하나도 변한게 없었다.


가난하고 욕심없고 개구쟁이고 익살맞은 전영선. 취권으로 세상을 살았지만 바둑에는 뼈대가 있었던 전영선. 그의 얼굴을 보니 한국의 고추장 냄새 물씬 풍기는 田流가 떠올랐다.

 

세계를 제패한 한국류라고 하는 큰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가면 산기슭 어디 한쪽에 田流라는 독특하고 재미있게 생긴 계곡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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