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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키르기스스탄 여행기
갑가지 키르기스스탄 모스크 절 교회 글이 많이 보이길래 23년도에 다녀온 썰 푼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로 이동하는 버스임 버스번호 701 옆에 알마티(ы는 의 발음이다 따라서 사실은 알마틔) 라고 써있음 수도 비슈케크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대도시였는데 여기도 대도시다 동유럽 느낌이 물씬 나는데 사람들 얼굴은 우리랑 비슷하지만 눈동자 색깔이 다르다 버스에 탄 여자애가 얼굴은 악뮤 김수현인데 눈빛이 ㄹㅇ 구라 안치고 회색이어서 엄청 오묘했다 수도 비슈케크의 광장 나는 사쿠라 호스텔이란 곳에 묵었고 거기 근처에 여행자들이 모이는 인터네셔널 바에서 한 3일 놀았다 주한미군 출신 아재한테 나도 한국인이다 장교출신이다 하니까 엄청 좋아하시면서 술 다 사주셨다 그 아재는 아프간 이라크 참전용사셨는데 한국군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니까 워리어라고 치켜세워주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 할아버지들하고 이식쿨 호수라는 곳을 갔다 교통편이 없어서 난감했는데 러시아인 남자가 자기 짐차 뒷칸에 우리를 공짜로 태워줬다 그리고 집도 초대해줌 맨 앞에 있는 친구가 러시아인 친구임 22년 동원령 직전에 키르기스스탄으로 탈출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하면서 푸틴을 엄청나게 싫어함 러시아사람을 죽이는 푸틴은 러시아 사람 아니다! 라고 말하던데 모스크바에서는 IT 프로그래머였고 모스크바 광장에서 버스킹도 하던 친구였는데 여기서는 트럭 운전수함 여기서 귀리죽, 계란프라이, 토마토, 빵, 꿀(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달다)을 얻어먹었는데 이게 러시아식 음식이구나 싶었음 아직도 가끔 연락한다 최근에는 자기가 게임 만들면 나한테 한국어로 번역 좀 해달라고 부탁함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러시아인 친구가 결혼식 공연 부탁 받아서 가게 된 깡촌 풍경이 개씹 예술이다 맨날 보고 살면 좋겠다 양(이었던 것) 양(이었던 것 2) 바로 앞에 쭉 뻗은 이식쿨 호수 소련 시절 대표적인 휴양지인데 정말 커서 수평선이 보인다 물 맛은 짜다 일행들과 헤어지고 폐허를 지났다 나린이라는 남부 도시로 향하기 위해 다시 비슈케크로 가던 길이다 산에 나무가 없고 모두 색이 다르다 물론 나무가 있기도 함 비슈케크는 정말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의외로 많은 유럽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가장 특이한 친구는 독일인인데 여기 와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사람이다 이런게 도로에 있음 총도 팔음 구소련 국가에 가면 뷔페 식당들이 많다 쟁반을 들고 배식 줄을 지나면서 원하는 음식을 고르면 직원들이 바로 뎁혀준다 치킨은 단백질용 맨 위에는 파프리카나 피망에 고기를 채워서 삶은 것 면은 라그만이다 라그만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항상 맛있게 먹었다 내가 면을 좋아해 나는 나라를 방문하면 이런 국기 패치를 모아서 야상에 붙인다 정말 찾기 어려웠는데 군장점에서 겨우 찾았다 비슈케크의 가장 큰 재래시장인데 이름은 까먹었다 바로 바느질 on 가끔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못하거나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배낭 안에는 항상 빵(난 이라고 부른다 우즈벡 타지크에서는 논이라고 발음함 러시아어로는 리뾰쉬카) 경성치즈 건조 소시지 케첩이나 치즈 스프레드를 들고 다녔다 빵은 구수하고 맛있는데 사람 얼굴만한게 500원 정도다 식당에서 빵을 주문하고 남겨도 걍 가방에 넣고 오면 된다 우리야 공기밥 챙기면 미친놈 취급하겠지만 여기는 그게 문화라서 아무도 뭐라 안함 이제 남부의 나린으로 가는 길 톈샨 산맥이 보인다 저 너머는 중국이다 유목민족 스테레오타입 말타고 다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고 양떼가 길을 막는 일도 많았다 양떼가 길막해도 기사는 경적을 안울린다 차분하게 기다린다 근데 양치기가 얼른 달려와서 교통정리 해줌 나린에는 1000년 된 실크로드 상인 케러밴들의 여관 유적이 있다 이거 보려고 달려옴 여기는 인터넷도 물론이고 전화도 안된다 여관 바로 앞에 민가가 있는데 숙박을 겸한다 거기 따님이 영어가 되고 숙박했다 보통 중앙아시아에서는 영어가 안된다 딴에는 공용어니까 나한테 틔 루스케 즈나에쉬?(러시아말 하냐?) 라고 러시아말부터 박어버리는데 ㅋㅋㅋㅋㅋ 내가 어케 알아 쓔바 ㅋㅋㅋㅋ 대충 틔는 너 루스케는 러시아 즈나에쉬는 아냐? 겠지라며 뉘엣뉘엣 거리면 그때부터 구글 번역기로 대화한다 암튼 숙소는 저녁과 아침까지 챙겨주는데 10000원 정도다 유적지 위로 올라왔다 안에는 방이 여러개 있고 딱봐도 화장실인 공간이 있었고 검색 결과 감옥(아마 룰을 어긴 사람들을 위한 곳)도 있었다고 했다 주인장이 키우는 개 주인장한테 캐러밴 여관 안에 들어가보고싶어요 하면 자물쇠로 따줌 문제는 차가 없어서 어떻게 돌아오느냐인데 여기는 유원지 개념이라서 현지인들도 많이 온다 그 사람들은 차를 대절해서 옴 다음날 아침에 괜히 말걸었다가 재키찬!! 이러면서 점심까지 술 존나게 얻어먹고(보드카 한 병은 마신듯) 다시 읍내로 돌아왔다 차에서도 계속 술을 줘서 뒤지는 줄 알았다 팔씨름도 해봤는데 진짜 쨉도 안됨 다들 힘 엄청 쎄다 차에 장식품이 신기해서 찍었다 나린에 돌아왔다 나는 여기서 다시 비슈케크로 돌아와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가는 8시간짜리 버스를 탔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여행하는놈고정닉
한국 최초 은행에 대하여.jpg
1878년, 일본의 제일은행을 비롯한 일본계 금융기관들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경제적 장악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 내에서는 일본 자본의 확장과 그에 따른 자국 경제의 종속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조선의 상공업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자주적인 금융기관의 설립을 통해 민족 자본을 육성하고외세로부터 국내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1894년 조선은행, 제국은행, 한흥은행 등의 근대적 은행들이 설립되었다. 이들 은행은 민족 자본을 바탕으로 조선인의 금융 자율성과 상공업 진흥을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범하였으나경영 기반의 취약함과 자본력 부족, 일본 금융세력의 압박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설립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단명하게 되었다.오늘 알아볼 은행은 조흥은행으로,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설립되어 아직까지 살아있는 은행중 가장 오랜 기간 운영된 은행이라평가받는 조흥은행에 대해단순히 금융기관의 역할을 넘어근대 금융의 기틀을 마련하고 민족 경제를 육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은행에 대해 알아보겠다조흥은행의 전신은 1906년 설립된 ‘한성은행’이다. 이는 당시 대한제국 정부가 민족 자본에 기반한 은행을 육성하고자 설립한 국내 최초의 민족계 상업은행으로, 주로 상업 금융과 외환 업무를 담당했다.
1909년, 한성은행은 이름을 조선상업은행으로 변경했으며1911년 일제에 의해 ‘조선식산은행’과의 기능 분리 후 다시 명칭을 조정이후 1945년 광복 전까지 일본의 금융 식민지 정책 하에서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의 전신)조선식산은행 등과 함께 통제된 역할을 수행했다.한성은행은 조선 최초의 주식회사이기도하다.(아직까지도 형태를 보존하고있는 한성은행 부산지점)https://www.visitbusan.net/index.do?menuCd=DOM_000000201001001000&uc_seq=268&lang_cd=ko&pagingParms=4ca15f3a76a21f554a6e515f5344f50c4f734814d27260977c0eb574b1e0019a33f5a8e2dd587a9efb82cc91cf112987488312a3bc08c3054da8c190c930f6592e7894a7ed3cf42438e40b16135015920aa608ee54ad79feb8b43e0becf2aedf306446a26175f37928b2e64d297ab48f8acfae3743ce2794ef15d99eb793341329c53a76d24a81ef72a11ca917970aac34400ec0365d93e364d7a859d58178e212648c28901350cb20330ec09b4e8c7ee5e2b8287a2a6536a889e832bf7d31f847bff6a467836ed9d75537b39410af399cbcba9ee6702cb39537bf709fc893f16242d2505ff463a634757c4ad1fb5316c17e3c6c881b1202936a9591f574a9b458fe7ada378c8e24a939d38009efceb2f1d2f3d9fb0a84335999d70d74a175a02229fcd269f25ecae09cba47d7fa5b4ca79471889a1020e6226a199377b97ead69d777bcce27c101be7225c1ffeb0036367494277c22e6ec9cff0114e7cadf3a2d867367262d1b5f6a717ace24b4cae0734d3410c3de7cbbe8e8e2de4a08c9f7f2d71419b760deedc85bfd092d20cf83296e62049d974032c50fee7f8aa0e20719104acb04653baae653f6241ef307d9e996ca01c0f8bd82276525403ef8fbcf31d4983f32b1f9177a3efeb477fea6497dae5a33a304e09aaa71e04f0eb3f5d4c28002d6d0e6f2e344b096c13571485e713162dc5a9af3b561377692e22316b61b1ee1170df4e01c4f1d1a0495e864cc323e5570524f4f388deac0573d370a31e245c82131817bfc280919ef34d987bc76bc5524758342f66ad0806eaf0d7ef56640d59a044de449fb7b5435323a73b6d18a05069ba9c39946fff7103292e562fb03c6b34b72feab 명소 | 부산에가면 | Visit Busan 釜山広域市 명소 | 부산에가면 | Visit Busan 釜山広域市www.visitbusan.net한성은행의 설립과 운영설립일: 1897년 2월 28일설립 주체: 조선 정부의 인가를 받아 민간 상인들과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위치: 한성(현재의 서울)자본금: 약 10만 원(당시 기준 상당한 규모)
한성은행은 근대적인 은행 업무를 수행하며어음 할인, 예금 수취, 대출, 송금 업무 등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특히 당시 상인들과 중소 자본가들이 외국계 금융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금을 융통할 수 있게 해주어, 민족 경제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광복 이후, 조선상업은행은 1950년 ‘조흥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대한민국 정부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국내 금융 시장에서 상업은행으로 재출발하게 된다.
조흥은행은 전후 복구 자금 조달, 기업 금융 지원외환 업무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특히 기업금융 및 외환 부문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진 은행으로 성장했다.박정희 정부(1961~1979)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금융을 철저히 통제했다.조흥은행을 포함한 주요 은행들은 국유화되거나 공공 통제 하에 놓였고이를 통해 군사정부는 금융을 산업정책의 도구로 활용하였다.조흥은행은 정부 주도의 대기업 육성과 수출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기업 대출을 담당했다.이 시기 조흥은행은 실질적으로 정부의 산업 자금 공급 창구로 사용되면서 자율성과 독립성은 크게 제한되었다.전두환 정부(1980~1988)전두환 정권 또한 금융에 대한 통제를 유지했으며조흥은행은 여전히 정부 정책에 종속된 공적 금융기관으로 남아 있었다.하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적인 자유화 흐름과도 연관이 있다.조흥은행은 국내 최초로 365일 자동화기기(ATM)를 도입한 선도적인 은행으로특히 명동지점에서 그 혁신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기술 도입은 당시 은행업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고객 편의성 증대와 금융 서비스의 혁신을 상징하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조흥은행은 한국 금융시장에서 굳건한 입지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도 그 명성과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추고 있었다. 이 시기는 조흥은행이 활발한 영업과 다양한 혁신을 통해 금융시장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던 시기로 기억된다.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는 조흥은행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급격한 경제 위기로 인해 자산 부실이 확대되고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 정책의 일환으로 조흥은행에 공적자금을 지원하였다. 조흥은행은 철저한 재무구조 개선 노력으로 2000년대 초반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였으며공적자금을 100% 회수한 유일한 금융기관으로 기록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10월 당시 정부 주도의 금융시장 재편 과정에서 조흥은행은 독자 생존 가능성이 충분히 점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신한은행에 매각시켰다. 이는 금융지주회사 체제 구축과 금융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결정이었다. 특히 매각 시점에 조흥은행은 500억 원대 흑자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경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정부와 금융 당국의 정책 방향에 따라 합병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조흥은행의 매각 및 신한은행과의 합병은 한국 금융 산업의 구조조정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한편, 일부에서는 당시 매각 결정이 조흥은행의 독자 생존 및 경쟁력 강화 가능성을 저해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 합병은 한국 금융산업의 체질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신한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규정씨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막노동으로 번 돈을 100억 원 규모로 조흥은행에 예치했으나조흥은행이 2002년 신한은행에 매각되면서 해당 자산을 상속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 씨는 법적 절차를 통해 자산 반환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신한은행의 손을 들어주었다이 사건은 금융기관의 합병과 관련된 상속 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조흥은행은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금융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활발한 영업활동을 펼쳤고이후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그 역사를 이어갔다. 2006년 합병 완료 후 신한은행은 단순한 금융 서비스 제공을 넘어 다양한 문화 및 스포츠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특히 신한은행은 한국 e스포츠의 대표적인 대회인 ‘스타크래프트 스타리그’에후원사로 참여해 큰 관심을 모았다. 이는 당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성장하던 e스포츠 시장에 금융 브랜드를 알리고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적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스타리그 후원 외에도 신한은행은 다양한 스포츠 및 문화 행사를 지원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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